최재하 목사/ 남부 사랑의교회 담임

 목사가 절망에 빠질 때가 있다. 목사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목사에게 있어서 가장 절망스러운 때는 더 이상 말씀을 나누어줄 수 없을 때이다. 굶어 죽어 가는 자식을 보면서 젖을 물릴 수 없는 어미의 심정이 바로 그럴 것이다.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은 이삭을 희롱하다가 이삭의 어머니 사라의 노여움을 샀다. 그 결과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메고 광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며칠이나 가겠는가? 이스마엘은 곧 갈증과 배고픔에 죽게 되었다. 이를 지켜 본 어미 하갈은 이스마엘을 가시나무떨기 아래 두고 자식의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여 살 한 바탕쯤 떨어져서 마주 대하여 바라보면서 방성대곡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자식이 죽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차마 곁에서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 내게 온 절망은 바로 그런 류의 것이었다. 우물가의 양들에게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샘물을 퍼 주어야 하는데 우물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었다. 은혜로 그들을 성장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처참한 생각이 들었다.

 마침 우물가가 안성 수양관에서 수련회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마지막 집회 때 솔직하게 우물가 지체들에게 나의 괴로움을 털어놓았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나는 여러분을 위해 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누가복음 11장에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기도가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고 나를 위해 모두들 간절히 부르짖었다. 나도 목이 쉬도록 부르짖었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나에게 어떤 현상이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대하기는 걷잡을 수 없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부어질 것을 기대했으나 실망만 되었다. 나는 기도를 마치기로 하고 집회를 정리했다.

 몹시도 낙담이 되고 실망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외면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부르짖음이 거절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 날부터 나에게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꾸만 말씀을 읽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말씀이 재미있고 달았다. 시간이 나면 쉬고 싶고 신문이나 TV를 켜던 손이 성경을 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성경을 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 형제가 찾아왔다. 그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목사님 수련회 때 회개를 많이 했습니다. 목사님과 우물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그는 요즘 우물가에 나와서 조용히 기도하다가 돌아가곤 한다. 그로부터 또 얼마 후에는 그의 아내가 나의 사무실을 노크했다.

 "목사님 가슴이 아파요. 저에게 하나님께서 우물가를 위한 중보기도의 소망을 주시네요."

 그녀도 그의 남편과 번갈아 가면서 기도하고 있다. 어쩌면 머지 않아 우물가에 은혜의 소나기가 쏟아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 부부의 기도는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사환이 목격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 같은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 지며 큰 비가 내리는 지라"(왕상 18:45)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