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하 목사/ 남부 사랑의교회 담임

 토요일 5시. 아름다운 땅. 우물가 예배. 늘 그랬던 것처럼 맨 앞자리에 승희가 앉아 있다.
 승희가 우물가의 문을 노크한 것은 7년 전 쯤으로 기억된다. 나는 그녀가 우물가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장애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만큼 승희의 장애는 표시가 났다.

 승희는 힘겹게 말했다.
 "봉사하고...싶어서...왔어요."
 "잘 왔어요."
 나는 반갑게 승낙했다.
 나는 이미 여러 번 경험하고 있었다. 사람 눈에는 '저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훌륭하게 사용했다. 교통사고 때문에 바보(?)가 된 성수를 배우로 훌륭하게 사용했고, 어려서 보약을 잘 못 먹는 바람에 지능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 자매 또한 연극에서 멋있게 사용하셨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 있는 민석은 뼈마디가 녹는 장애자였으나 영감 있는 찬양 인도자로 사용하셨다. 그가 찬양을 인도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은혜에 감격해서 울었다.

 그날부터 승희는 열심히 우물가를 섬겼다. 처음에는 편지로 선교사를 맡았다. 교도소에 편지를 보내고 책을 발송하는 그런 직무였다. 승희는 최선을 다했다. 우물가에 오면 자주 그녀를 볼 수가 있었다. 1995년에는 우물가 전도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나는 전도학교 졸업생들이 중심이 되어 준비한 열린 전도집회를 잊을 수가 없다. 사랑의 교회 본당에서 열렸는데 승희는 간증을 맡았다. 그녀의 간증은 2백자 원고지 2장 정도가 될까말까한 짧은 것이었다. 내용도 특별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자신이 밉고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사랑한다'는 내용이었다. 읽는 것도 띄엄띄엄 어눌했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던 것이다.

 승희는 전도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드라마 전도단원이 되었고 간사로서 중보기도팀장을 맡았다. 승희는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전도단의 일원으로서 국내외를 뛰어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우물가 사역이 있는 곳에 승희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승희에게 시련이 왔다. 간사들의 모임인 정오 기도 시간에 히스테리칼한 반응을 나타냈던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은 퇴행성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공격적으로 돌변하여 덤벼들기도 했다. 나는 승희의 문제가 영적인 것으로 일단 진단하고 대적하는 기도를 했다. 그러나 승희는 이렇다하게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고 상계 백병원의 최영민 교수에게 도움을 구했다. 최교수는 승희에게 짐이 버거웠던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여러 주간 치료를 받은 결과 승희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깨달은 것이 많다. 하나님께서 승희를 통해 역사하시는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승희는 약한 지체라는 것이다.

 초기에는 잠수부들이 잠수함에 토끼를 들고 들어갔었다. 산소가 희박해지면 예민한 토끼가 즉시 헐덕거리며 반응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토끼는 경보 장치인 셈이다. 하나님은 승희를 통해 우물가에 사역은 있지만 연약한 지체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것을 경고했던 것이다.
 
 은혜로운 예배가 끝나가고 있었다. 서로를 축복하는 시간.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당신을 향한 계획 있었죠..."
 나는 승희에게 다가갔다.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거칠었다. 나의 소중한 동역자, 변함없는 동역자. 뜨거운 눈물이 가슴을 적시며 올라왔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