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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 격의 목자'란게 왜 필요할까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⑤
2007년 04월 19일 (목)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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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웃에 사는 조카가 어제 놀러왔다. 초등학교 6학년생인 그는 사실 필자에게 질문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다. 4월 24일 중간시험을 앞두고 국어 문제 하나를 도와 달라며 문제집까지 직접 손에 들고 왔다. 제법 공부를 잘 하는 그가 필자의 도움을 필요했다는 점에서 사뭇 그 문제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 무엇인지 한 번 보자”며 필자는 그 아이가 가져온 문제집을 펼쳤다.

‘질문: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 보시오’
처음엔 그 아이가 문제집을 잘못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을 이리저리 뒤져보고 살펴보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위 질문은 초등학교 6학년 국어 문제가 맞았다. 필자도 조금은 당황했다. 질문 자체에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그 질문이 이 아이에게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 초등학교 6학년 국어 문제
 

 

위 질문은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한 번쯤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만희 씨는 위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필자가 분석하고 있는 그의 책(이만희, 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도서출판 신천지, 2005)을 통해서 살펴보자.

사도 요한과 같은 목자(?)의 출현

이만희 씨는 요한계시록 1장 2절을 해설한다고 하면서 느닷없이 ‘사도 요한과 같은 목자’라는 특별한 자의 출현을 언급했다. 그러한 자가 이 세상에 나타나야 한다는 말이다. 직접 들어보자.

“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계시록 성취 때에는 모든 계시록의 예언의 실상을 사도 요한과 같은 목자가 출현하여 증거한다는 사실이다”(이 씨의 책, p.49).

 

   
 
   ▲ '사도 요한과 닮은 목자 출현'을 주장하는 이 씨의 글
 
이 씨는 계속해서 ‘요한계시록의 저자 요한은 환상을 본 것일 뿐 실상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거듭 언급하며 특별한 존재의 등장을 또다시 주장했다. ‘사도 요한과 같은 목자’라는 용어와 함께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오는 목자’라는 표현도 번갈아 사용하면서 말이다. 그는 특별한 존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구약을 예수님에게 먼저 보여주신 것처럼, 요한계시록도 사도 요한과 같은 목자에게 먼저 보여주었다’는 희한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이 씨의 주장이 그가 말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1장 2절의 해설로 올바른 것인가?

 

성경 계 1:2을 살펴보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개역성경).
“나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언하신 것, 곧 내가 본 모든 것을 그대로 증언합니다”(공동번역).
“요한은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진리의 말씀, 즉 하나님의 계시입니다”(쉬운성경).
“who testifies to everything he saw-that is, the word of God and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NIV)
“who testified to the word of God and to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even to all that he saw”(NRSV)

몇 가지 번역 성경을 대조하면서 살펴보았다. 신교와 구교가 합동으로 현대어의 표현법에 맞게 번역한 <공동번역>에서부터 원어의 문자적 의미를 강조한 <NRSV>, 그리고 그 둘을 적절히 사용해 역동적인 번역 원칙을 따른 <NIV>나 <쉬운성경> 등을 예로 들었다. 필자는 앞으로 이와 같은 방식을 자주 사용하려고 한다. 성경 본문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살펴보려고 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필요하다면 헬라어 본문도 사용할 것이다.

모든 번역 성경들은 ‘요한이 증거하였다’는 기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공동번역>은 ‘나 요한’이라고 표현함으로 증거한 이가 바로 요함임을 강조하고 있다. <쉬운성경>은 전체를 두 문장으로 나누어서 본문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요한은 증언하였다’는 기본 골격을 먼저 언급한 후, 그 증언의 내용을 다음 문장에서 설명해주고 있다. 영어성경은 모두 ‘who’라는 연결사를 사용해서 그 앞에 ‘John’이라는 사람을 지시하는 구조로 설명을 하고 있다.

어느 성경을 보아도 이만희 씨가 주장한 ‘사도 요한과 같은 목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또 그렇게 해석되어야 할 만한 내용도 찾을 수 없다. <NRSV>는 ‘그(요한)가 본 모든 것조차도(전부 증언하였다)’(even to all that he saw)는 부분을 의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행여 요한이 증언할 때 빠뜨린 것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것을 채워야 한다는 염려까지도 없애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요한은 본문 문장 맨 첫 단어를 ‘증거합니다’(εμαρτύρησεν)라는 능동적인 동사로 사용했다. 이는 요한이 직접 증거하고 있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요한의 증거가 부족하다거나 틀렸다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요한 외에 다른 사람이 또 다른 증거를 해야 한다는 것을 결코 말해주고 있지 않다.

요한계시록 1장 2절을 해설한다고 하면서 특별한 존재의 출현을 언급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차라리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로 기록된 두 표현의 관계, 예를 들어 그 두 용어는 같은 의미일까, 다른 의미일까 하는 것 등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성경의 올바른 뜻을 찾으려고 하는 훨씬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쉬운성경>은 그 부분에 대해서 같은 의미인 동격으로 보다 잘 표현해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요한계시록(헬라어성경)
 
‘성령에 감동하여’의 의미는?

‘성령에 감동하여’의 의미는?

 

이만희 씨가 주장하는 특별한 존재, 즉 ‘사도 요한과 같은 목자’란 앞선 필자의 글에서 언급한 대로 결국 이만희 자신을 말하고 있다. 그는 요한계시록을 해설한다고 하면서 성경 자체의 의미보다 자신을 드러내려는 것에 치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 씨는 상대적으로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요한의 존재와 역할의 의미를 낮추려고 하고 있다. 성경을 성경의 방식대로 읽고 연구하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1장 1절 해설 중 이 씨는 중요한 한 부분을 언급했다. 바로 ‘성령에 감동하여’라는 부분이다. 이는 계 1:10에 처음 나오는 성경 본문 용어다. 그는 이 용어를 계1:1 본문을 해설한다면서 의미있게 사용했다. ‘환상계시와 실상계시’라는 자신만의 비성경적인 교리를 설명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정작 이 씨는 해당 본문인 계 1:10을 해설하면서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성령에 감동하여’라는 성경 구절의 의미를 이 씨는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다음과 같다.

“당시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환상으로 예수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했지만 그 예언이 언제 이루어지는지, 실체가 무엇인지는 몰랐다”(이 씨의 책, p.45).

무슨 뜻인가? 이 씨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의 저자 요한이 성령으로 감동되어 환상을 보았지만 결국 그 뜻은 몰랐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 뜻을 알려주기 위해서 사도 요한과 같은 입장의 특별한 자, 즉 이만희 씨가 등장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이 씨는 해당 본문(계1:10) 해설을 하면서 사도 바울의 예를 들면서 그것을 강조했다. 고린도후서 12장 2~3절의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라는 본문을 인용하면서 ‘성령의 감동된 것=자신이 받은 환상과 계시의 의미를 모른다’는 뜻으로 사용하려고 하고 있다. 이 씨는 다른 성경 본문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주장이 확실함을 강조하려고 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성령에 감동된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는 의미일까? 마치 술에 만취되어서 소위 ‘필름이 끊겼다’는 식으로 말이다.

‘성령에 감동하여’(εν πνευματι)라는 말은 요한계시록에 네 번 나타난다(1:10, 4:2, 17:3, 21:10). 성령에 대한 다른 언급들도 요한계시록에서 10번 나타난다(2:7, 2:11, 2:17, 2:29, 3:6, 3:13, 3:22, 14:13, 19:10, 22:17). 역시 성령을 의미하는 ‘일곱 영’의 표현도 네 번 언급(1:4, 3:1, 4:5, 5:6)되고 있다.

본문에서 언급된 ‘성령에 감동하여’(εν πνευματι)는 성령에 의해서 생포(rapture)되는 환상의 경험에 대한 기술적인 용어로 이해할 수 있다(Richard Bauckham, "The Role of the Spirit" The Climax Prophecy. 1993. pp.150~151). 요한은 환상을 보는 중에 자유로운 대리인(agent)으로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이 말은 요한이 경험하고 있는 ‘성령에 감동하여’(εν πνευματι)의 상태는 성령에 의해서 생포되어 황홀한 지경에 빠져있기는 하지만, 요한 자신의 정상적인 감각들이 성령에 의해서 그에게 주어진 시각들과 청각들로 대체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에 의해서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그의 감각은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상태이며 그가 보고 느낀 것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성령에 감동되어서 더욱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술에 만취되어서 횡설수설하듯 감각을 잃어버린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것을 ‘엔 프뉴마티’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에 감동하여’(εν πνευματι)를 ‘영적 고양’(the exaltation)된 상태라고 설명하기도 한다(홍창표, p.199). 이때의 영적 고양 상태는 황홀감(a trance)과 몰아의 경험(ecstatic experience)으로 묘사된다. 홍창표 교수는 본문의 ‘엔 퓨뉴마티’의 상태를 욥바에서 사도 베드로의 경험(행10:10; 11:5)과 예루살렘에서 사도 바울의 체험(행22:17; 고후12:2-4)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홍 교수는 이만희 씨가 자신의 주장을 성경적으로 언급하려고 사용한 고후 12:2~4의 내용도 ‘엔 퓨뉴마티’의 상태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만희 씨가 해설한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고 오히려 정 반대로 ‘더욱 정확히 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 홍창표 교수의 요한계시록 해설집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음을 언급한 이유는 자신의 환상 경험이 당시의 문학적인 매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가 올바르게 전달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만희 씨는 요한의 메시지는 성령에 감동되었기 때문에 그 진실된 의미가 감추어졌다는 식으로 오해를 했던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조카의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자.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속한 단체와 추구하는 사상 속에서 자신의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답을 내리게 될 것이다. 성경 본문의 내용이 어떠한 의미를 품고 있든지 상관없이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이 씨의 대답은 무엇일까?

 

필자는 앞서 언급한 대로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을 요즘 읽고 있는 중이다. 하루에 1장(chapter)씩 읽고 있는데 이제 3일 후면 모두 마치게 된다. 위의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는 데에 그 책이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조카를 옆에 앉히고 결국 설교(?)를 하게 됐다.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그는 “알았어요”라고 대답을 한 후, 방에 들어가 그 문제에 답을 적었다.

얼마 시간이 흘러 조카는 밖에 나가서 조금 놀다오겠다면서 나갔다. 그래서일까. 그가 적은 답이 매우 궁금해졌다. 어지럽혀진 책상 위 한 켠에 그 문제집이 놓여 있었다. 살짝 들춰보았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적어 놓았다. 초등학교 6학년생인 어린이가 자신의 사는 이유에 대해서 그렇게 답을 적어 놓은 것이다. 하하하! 기특한 녀석.

 

   
 
   ▲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초등 6학년생의 답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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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막성전의 후예들’,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4월호
------, ‘이만희 이단성 밀착확인’ ,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5월호
------, ‘이단사이비문제 종합 1’ ,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1월호
------, ‘이단사이비문제 종합 2’,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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