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하 목사/ 남부 사랑의교회 담임

사랑스럽고 귀여운 경주야!
아침에 핸드폰의 음성 사서함을 여니까 이런 메시지가 저장되어 있더구나.
"목사님! 경주예요. 잘 계셨죠? 오늘 아침부터 목사님이 생각나서 꼭 전화를 통화하고 싶었는데 집에 늦게 왔어요. 너무 늦어서 전화받으실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못하시는 것 같아 음성 메시지를 남깁니다. 목사님, 목사님. 그냥 사랑하구요. 목사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되고 싶어요. 그냥 작게 나마….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경주야, 사랑하는 경주야. 이미 너는 나에게 기쁨이 되었다. 너의 친근한 목소리, 너의 고운 마음이 무척 나를 반갑게 하는구나! 경주야! 기억하고 있니? 나는 너를 처음 만나던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신흥 주공 아파트를 나와서 나의 작은 프라이드를 몰고 교회로 향하고 있었지. 난 그 날도 마음속으로 너무나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단다. "하나님, 오늘도 한 영혼을 주시옵소서. 강남까지 동승할 준비된 영혼을 만나게 해주세요".

기도가 거의 끝날 무렵 나는 신흥 주공 아파트 입구에 있는 버스 스톱에 도달해 있었다. 성남에서는 사람을 태울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인 셈이지. 그런데 그 날 따라 아주 세련되고 어여쁜 아가씨가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 것이 아니겠니? 바로 너였다. 나는 네가 너무나 예쁘고 세련되었기 때문에 좀 위축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창문을 열고 이렇게 말했지. "서울 강남 가시는 분 계시면 타세요." 나는 네가 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가씨들은 경계심을 가지고 있어서 잘 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넌 대담하게 나의 차를 탔다. 나는 혹시라도 네가 불안해 할까봐 곧바로 나의 신분을 밝혔던 것 같다. 그런 다음 조용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너는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숨죽이고 복음을 경청했지. 나는 복음을 전하면서 네가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고 무척 기분이 좋았다. 마침내 양재역에 도달했을 때 나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너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겠느냐고 물었지. 너는 흔쾌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너는 알고 있니?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영접시킬 때의 그 기쁨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란다. 나는 너의 이름과 직업을 물었던 것 같다.

 너는 '장경주입니다. 에니메이션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라고 예쁘게 대답했다. 너는 회사를 향해 골목으로 들어갔고 나는 감사와 감격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강남대로를 달렸다. 그런데 곧 나는 '아차!' 하고 말았다. 너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하나님은 아셨던 것 같다. 저녁에 기도 모임이 있었는데 박은아 자매를 보자 문득 네 생각이 났다. 너의 직장이 에니메이션이라는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박은아에게 네 이야기를 했더니 은아가 까르르 웃으면서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런 일도 있더구나!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너를 만났고 함께 치킨을 먹었지. 이를테면 심방을 간 것이지.

그리고 박은아는 너를 양육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의 믿음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세례를 받고 우물가 선교회 전도 학교를 졸업하고 청년부에 들어가고…. 그러다가 갑자기 우물가를 떠났을 때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너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된 나의 심정은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처럼 허전했었다. 

너는 가끔 살짝 와서 내 방에 꽃꽂이를 해 주곤 했지. 너를 보는 듯하여 오래오래 바라보곤 했단다. 네가 다시 우물가로 돌아와 함께 사역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경주야. 내가 요즘 조금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들은 모양이구나. 사실이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는 말아라. 어머니는 등짐을 지고 언덕을 오를 때마다 나에게 교훈하곤 했었지. "아들아! 이 언덕길처럼 인생은 오르막길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란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너처럼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힘이 솟는구나. 더군다나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시구 말이다. 너의 마지막 인사가 무엇보다도 나를 신나게 만들었다.
"…목사님 평안히 주무세요. 예배 때 뵙겠어요."
(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