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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씨가 말하는 '계시의 전달 과정'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④
2007년 04월 05일 (목)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요한계시록의실상> 분석① [지난기사보기]
<요한계시록의실상> 분석② [지난기사보기]
<요한계시록의실상> 분석③ [지난기사보기]

한 지인으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요즘 형편이 어려우니 2만원만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20만원도 아닌 2만원! 적다면 적고 크다면 큰 액수의 금액이다. 그렇다고 힘들다고 할 만큼 많은 액수도 아니었다. 그는 “당신의 형편도 어려운 줄 알지만 지금 당장 나에게는 한 푼도 없습니다”며 도와달라고 간곡히 청했다.

필자는 마침 이번 주간이 고난주간이고 또 섬기는 교회에서 한 주간 기도회도 있기에 그를 기도회에 참석도 시킬 겸 저녁 때 교회에서 보자고 말했다. 만나서 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통장으로 입금시켜 달라고 다시 한 번 요청했다. 그래도 교회에서 보자고 두어 번 더 권했지만 그는 그것을 꺼려했다. 교회를 한 동안 잘 다녔던 그에게 기독교인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질 것 같아서 더 이상 종용하지는 않았다.

오후에 시간을 내서 은행에 갔다. 돈을 보내주기 위해서다. 2만원을 무통장으로 보내는데 수수료를 800원씩이나 지불해야 했다. 보내는 액수에 비해 수수료가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송금 후 한 시간쯤 지나자 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당연히 고맙다는 전화라고 생각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2만원 보내주고 큰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 그의 목소리가 다소 격앙되어 있었다. 필자는 처음에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는 필자 외에 다른 지인에게도 2만원만 도와 달라고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지인은 더 이상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며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아마도 도와달라는 자신의 전화를 거부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는 그것으로 기독교 전체를 향해 화를 내고 있는 듯했다.

그 화의 불똥이 필자에게까지 튀었다. ‘돈 2만원 보내주었다고 잘난 체 하지 마라’는 논조였다. 필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순간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었더니...’라는 격언이 뇌리를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그 사람을 향해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같이 목소리를 높여 충고를 해 주자니 그것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수화기를 들고만 있자니 그것도 아닌 듯했다.

그렇게 갈등하고 있는 순간, 그는 이어서 요즘 교회가 아닌 다른 종교 단체에 다니고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알게 모르게 오랫동안 교회에 적을 두며 오갔던 그가 발길을 옮겼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그는 그곳에서 자신을 위해 돈을 주고 쌀도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다음 주엔 그곳에서 행하는 세례식(?)에 참석하기로 했다는 말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는 자신과 같은 연약한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느냐’며 강한 불만을 토로한 채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았다.

슬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에게 기독교에 대한 오해의 책임을 따지기 전에 어찌됐든 그에게 비춰진 기독교의 모습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상대를 바라보기 마련이다. 교회를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필요가 절실한 사람은 교회를 자선 구호 단체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은 교회가 무조건적으로 자신만을 사랑해주기를 또한 기대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의 필요가 만족되지 못하면 그 원인을 교회의 책임으로 돌리곤 한다. 이럴 경우 자신이 만난 목회자나 소속되었던 교회를 향해서만 비난하는 게 아니라 기독교 전체를 향해 그 화살의 방향을 돌리기 일쑤다.

이단 단체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의 상당수도 그와 같은 경우라 생각되어진다. 자신이 소속되었던 교회(또는 목회자)에서 일정 부분 받았던 상처들(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던 아니면 바로 그 교회에 있던 상관없이)로 인해서 교회 전체를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복음의 길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물론 교회는 할 수 있는 대로 선을 행해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손해나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 이유는 복음의 기쁨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대해서 목회자에 대해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 원인의 100%가 정말 교회와 목회자 자신에게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와 목회자에 대해서 실망하고 또한 분노의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실망시킨 일이 있는가?

우리네 삶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것처럼 이단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만희 씨의 사상을 비판하려고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못 드러낸 것에 대해서 바로 교정해 주려고 하는 것이다.

‘전달 과정’이란 무엇인가?

이만희 씨는 요한계시록 해설 서두에 계시의 ‘전달 과정’이 중요하다며 특별히 그 점을 강조했다. 그의 주장을 직접 살펴보자.

“본장(요한계시록 1장을 말함 - 필자 주) 1절에서 8절까지는 요한계시록 전장을 요약한 내용이자 결론이다. 이 결론에서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계시가 전달되는 과정, 계시록 말씀을 읽는 자와 지키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이 되는 것...”(이만희, 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도서출판 신천지, 2005, p.43).

이 씨는 그 동안 한국교회에서 요한계시록을 해석해 오면서 의미를 두지 않았던 ‘전달 과정’이라는 부분을 독특하게 설정해 냈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이 씨는 요한계시록 해설 중 한 장(chapter)을 할애하기도 했다. 살펴보자.

“4) 계시 전달 과정.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어떤 순서로 종들에게 전달되는가?... 그러므로 본문 1절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하나님, 예수님, 천사, 요한, 종들의 순으로 전달된다”(이 씨의 책, p.47).

과연 이 씨는 한국 교회가 놓치고 있던 또 하나의 신학적인 줄기를 찾는 업적을 남긴 것일까 아니면 불필요한 사족(蛇足)을 다는 행위일까? 만약 그것이 사족이라면 그는 왜 그러한 일을 한 것일까? 단순한 무지의 소치일까 아니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일까?

 

   
 
    ▲ 이 씨의 책 본문
 
이 씨가 주장하는 ‘전달 과정’이란 ‘하나님 - 예수님 - 천사 - 요한 - 종들’이라는 단순 도식으로 정리된다. 이 씨가 언급하고자 하는 바는 ‘계시’가 위의 도식 과정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이 땅의 신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종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인데, 그 종들에게 계시를 전달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요한’임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다. 이만희 씨는 자신의 다른 책인 <계시록의 진상 2>(도서출판 신천지, 1988)을 통해 전달 과정을 해설하면서 ‘요한은 책을 받아먹고...’라는 독특한 문장을 삽입시킨 것도 같은 의미라 여겨진다. 이때 지난 원고의 내용과 같이 비교해서 본다면, 요한은 이미 죽었고 또한 그림자와 같은 단순히 ‘환상계시’만을 본 것일 뿐 진정한 의미의 ‘실상계시’는 이 땅에 살아 있는 요한격의 특정 인물에 의해서 밝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만희 씨가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결국 이만희 씨는 계시의 ‘전달 과정’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다.

과연 그런가. 먼저 성경을 통해 이 씨가 주장한 ‘전달 과정’이란 것을 면밀히 살펴보자. 우리가 흔히 보고 있는 개역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계1:1)라고 기록되어 있다.

최근 보다 원문에 가깝게 번역되었다며 많이 읽히고 있는 다른 번역성경들로 눈길을 돌려보자. 개역성경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쉬운성경은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자기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 이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요한에게 천사를 보내어 이 일을 알게 하셨습니다”라고, 표준새번역성경은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한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계시는 곧 일어나야 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천사를 보내셔서, 자기의 종 요한에게 이것들을 알려 주셨습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영문 번역본을 살펴보자. 많이 애독되고 있는 NIV와 NRSV를 살펴보면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which God gave him...”으로 동일한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표준새번역성경은 계시의 주체자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셨다”는 의미가 부각된 것이다. 그에 비해서 다른 번역본은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의 소유격처럼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과연 계시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는 이만희 씨가 주장하는 전달 과정이라는 것을 성경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Αποκαλυψις)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라는 부분의 소유격 어미(~의)에 대한 이해다. 두 가지로 그 의미를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홍창표, p.121-122). 첫째는 ‘주어적 의미’다. 이는 계시의 목적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종말의 일들로,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것들을 그의 종들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둘째는 ‘목적격의 의미’다. 이는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다는 면이 강조되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의미 중 ‘예수 그리스도의’를 주어적 의미로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준’(έδωκεν) 것이라는 뒤따르는 문장 때문이다. 이때 에도켄(έδωκεν)은 여기에서 계시의 주체자가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시를 주셨고,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계시를 나타내는 주체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Aune David도 그 부분을 잘 지적했다(WBC, p.318). 그 부분의 영문 번역이 ‘from Jesus Christ’(예수 그리스도로부터)로 표현된 것을 언급했다. 다시 말해 요한계시록의 주체자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란 말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전달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요한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자기의 종 요한에게 이것들을 알려 주셨습니다”(표준새번역)의 성경 본문 중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계시를 요한에게 ‘알게 한’(έσημανεν) 장면이 나온다. 이때의 에세마넨(έσημανεν)은 위의 에도켄(έδωκεν)과 동격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그 주체자가 역시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해준다는 의미다. 결코 계시의 주체자가 요한에게 이전됐다는 의미로는 해석될 수 없게 된다. 천사의 역할 역시 수단(δια)에 불과하다. 천사가 계시의 주체자로 자리해야 할 어떠한 근거도 없다.

따라서 계시의 전달 과정이 이 씨가 주장한 ‘하나님 - 예수님 - 천사 - 요한 - 종들’이란 평이한 단순 도식은 이 씨와 같이 성경 이해의 오해를 낳게 한다. 이때의 ‘종들’이란 오늘날의 일반성도들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는 1:3에 나타나 있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라는 문맥의 흐름 때문이다. 이 씨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요한 - 종들’ 사이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는 방식인 ‘요한 - 이만희 - 종들’의 구조라 보인다. 그로 인해 계시의 주도적인 인물로 자신이 부각되기를 바라는 모양새다.

 

   
 
   ▲ 이 씨가 주장하는 계시 전달과정 도표
 
이 씨의 방식이 백번 옳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 처음 이 씨측 단체에 입문한 초신자들은 대부분 이 씨측이 제공해 주는 교육을 받게 된다. 이때 초신자들 대부분은 이 씨가 아닌 이 씨측 강사들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교육을 받게 된다. 초기 교육 과정에서는 이만희 씨가 누구인지 조차 알지 못하고 강의를 받게 된다는 것이 개종자들의 증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씨의 논리대로 계시의 전달 과정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게 된다. ‘하나님 - 예수님 - 천사 - 요한 - 이만희 - 강사 - 종들’이라는 것이다. 한 강사에 의해서 다른 강사가 태어난다는 점까지 생각한다면 그 전달 과정은 매우 길게 늘어지게 된다. 그리고 초신자 교육생 입장에서 그 계시의 최종 전달 주체자는 자신을 가르쳐 준 강사가 된다.

 

성경은 그러한 단순한 전달 과정 도식을 말하고 있지 않다. 어떠한 과정을 거치든지 계시의 주체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성경 어느 곳을 해석하려고 할지라도 그 중심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몇몇 이단자들이 그 중심에 은근히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으려고 하고 있다.

원고를 마감하려고 하는 중에 또 다른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종종 만나서 교제를 나누고 있는 외국인이다. 그는 한국에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멀리서 온 유학생이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그는 사실 급히 15만원이 필요하다며 빌려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을 해왔다. 어찌된 일일까. 갑자기 비슷한 일이 한꺼번에 발생한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나에게 어떠한 은혜를 주시려고 하는 것일까.

15만원은 역시 부담되는 액수였다. 여러 가지 마음이 교차되었지만 결국 미안한 맘으로 거절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요청이 계속 맘에 남았다. 그의 비전과 사역을 위해 종종 기도를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매일 아침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 그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그 유학생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 어떠한 기대를 갖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 자신의 삶을 나누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때 은혜가 임했다. 필자의 말을 들은 한 집사가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적극 나선 것이다. 그 유학생과 아무런 인연도 없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대신 그 유학생이 자신의 간증과 비전을 그 집사의 회사에 와서 동료들에게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외국인의 특별 강연을 통해 복음을 전해 보겠다는 의도였던 것이다. 이것을 일석이조라고 하지 않은가.

그 집사의 삶 중심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그는 무엇을 하든 항상 예수님을 드러내려고 한다. 이번에 얼굴도 모르는 외국인을 위해 헌금을 결정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다.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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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막성전의 후예들’,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4월호
------, ‘이만희 이단성 밀착확인’ ,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5월호
------, ‘이단사이비문제 종합 1’ ,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1월호
------, ‘이단사이비문제 종합 2’,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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