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하 목사/ 남부 사랑의교회 담임

 손님이 와서 '아름다운 땅'에 내려갔다. 연이가 활짝 웃으면서 쫓아 왔다.
 "목사님 제가 그린 만화 한 번 보실래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방을 열어서 스케치북을 내 앞으로 쑥 내민다. 스케치북을 열어 보았더니 제법 그림이 좋았다. 나는 연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참 좋다. 아주 근사해! 열심히 그려봐! 굉장한 만화가가 되겠는 걸."

 연이는 무척 많이 자랐다. 키도 키지만 속사람이 많이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우물가에서 인기가 높다. 커피숍 '아름다운 땅'의 오후 주방 담당자가 되었고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즐겁게 만드는지 모른다. 엉뚱한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의 폭소를 터뜨린다. 어디 그뿐인가? 마음에 안 들면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데 연이에겐 그 모습조차 대견하다. 전에는 얼마나 눌려 살았었는지 화를 낼 줄 몰랐다.

 연이는 갈 곳이 없는 자매였다. 어머니는 연이와 연이의 동생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중병에 걸려 오웅진 신부가 책임자로 있는 '꽃동네'에 '오늘 낼' 하면서 살고 있다.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연이 아버지의 생명을 붙잡아 주고 계신다. 아버지조차 없으면 두 자매가 한층 외로워 할까봐 그러시는지도 모르겠다.

 연이가 우물가선교회에 온 것은 5년 전의 일이다. 그녀는 열 살이 조금 넘어 가출을 했다. 연이는 유흥가로 사창가로 떠돌아다니다가 우물가를 찾게 되었다. 그 때 연이는 정서적으로 너무나 불안한 상태였다. 몸은 성병에 걸려 있는 상태였고 도벽 또한 심했다. 무슨 말을 물어도 대답을 못했다. 다행히 그때 우물가에는 '아름다운 집'이라는 홈(Home)이 하나 마련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집'은 1992년 '십자가에 달린 창녀'라는 연극을 통해 마련한 것이었다. 유흥가 자매들이 신앙을 갖게되면 유흥가를 나오고 싶어 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고민하는 자매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숙식을 당분간이라도 도와줘야 했다. 그러자니 돈이 필요했다. 연극을 해서 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힘을 모았다. 배우들이나 스텝들이나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헌신해 주었고 관객들도 기금 마련을 위해 기쁘게 헌금을 해 주었다. 이 지면을 통해 헌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올린다. 마지막 날은 관객이 넘쳤다. 그 큰 본당을 다 채우고도 모자랐고 별관 비디오실까지 채우고도 모자라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났을 때 비디오실은 헌금 바구니가 돌지 않았다며 헌금을 들고 지하 본당으로 달려온 대학생이 있었는가 하면 낡은 금반지를 헌금으로 내놓은 분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아름다운 집'은 만들어졌던 것이다.

 연이는 '아름다운 집'으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집에는 입주자 5-6명 가운데 성숙한 리더가 있었고 리더를 돕는 성숙한 헬퍼(helper)가 둘이 살고 있었다. 이들이 얼마나 연이를 잘 돌봐주는지 모른다. 처음 아름다운 집이 생겼을 때에 급한 김에 리더 하나에다가 유흥가 출신의 자매 4-5명을 함께 살게 했다. 그랬더니 자매들도 바뀌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나빠졌다. 좋지 못한 행동들이 전염되었고 리더는 도무지 감당해 내지를 못했다. 그래서 결국 실패하고 말았던 것인데 이번에는 건강한 자매들 속에 연이를 살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낮에는 '아름다운 땅'에 나와서 주방 일을 배우게 했다. 그랬더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인간에게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하게 된다.
 
 추석에는 나의 사랑하는 프라이드 승용차 뒷자리에 연이를 태우고 꽃동네를 찾아가리라. 연이의 아버지 손을 잡고 이렇게 기도하리라.

 "하나님 연이 아빠가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병을 고쳐 주십시오. 연이의 꿈은 돈을 벌어서 아빠와 동생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런 축복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리고는 아내가 만든 맛있는 음식과 과일을 펴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리라. 아마도 연이는 그 동안 갈고 닦은 그림 솜씨로 아빠의 얼굴을 스케치북에다 그럴듯하게 담으리라. 아마도 가을은 소리내어 웃으리라. 일기는 쾌청! 
(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