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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지 않으신다
2007년 03월 23일 (금)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소망 있는 기다림> 중에서
맥스 루케이도 지음/ 채대광 옮김/ 좋은씨앗 펴냄

어떻게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지옥에 보낼 수 있는가?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질문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 자체에 몇몇 오해가 숨어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시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하실 뿐입니다. 지옥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참으로 고귀하게 다루심을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시며, 그럼으로써 우리가 지옥을 선택할지라도 그렇게 하십니다.

C. S. 루이스는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두 종류의 사람들만이 남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말하시는 사람들로 말이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 모두는 그들이 선택한 것이다.”

<고통의 문제>에서 루이스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저주받은 자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끝까지 성공적인 저항군이 될 거라고 기꺼이 믿는다. 지옥의 문들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지’ 않으십니다. 또한 그분이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시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 바로 두 번째 오해가 있습니다.

여기에 쓰인 ‘사람들’이란 단어는 중립적이며, 결백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성경 그 어디에서도 결백한 사람이 정죄를 받는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게 아닙니다. 죄인들이 가는 겁니다. 반역하는 자들도 갑니다. 자기 중심적인 자들도 그 행렬에 참여합니다.

어떻게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실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죄인들의 선택을 존중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야기는 놀라운 결론으로 끝을 맞습니다. 부자가 이렇게 간청하지요.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16;27-28).

이것이 무슨 소립니까? 부자가 갑자기 전도의 열정에라도 사로잡힌 걸까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이 이제부터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려는 것일까요? 지옥에 단 한 발짝이라도 들여놓는다면 여러분의 우선 순위가 놀랍도록 변화될 거라는 얘깁니다. 지옥이 얼마나 오싹한 곳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친구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경고하려고 애를 쓸 거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분노의 홍수가 들이닥칠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어떤 희생을 써서라도 그것을 피하라고 우리에게 청하십니다. “만일 내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

이 구절은, 의심할 여지없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우리를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이야깁니다. 이 구절에는 ‘고뇌’ 이나 ‘고통’ ‘괴로움’과 같은 단어들이 즐비합니다. 그리고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들이 나오는데 예를 들어 ‘의식적인 형벌’이나 ‘영구한 추방’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그렇지만 또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극히 중차대한 진리를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바로 이 구절에서 주님은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펼쳐 보이고 계신 것입니다.

“뭐라고?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이봐요. 맥스. 나와 당신이 읽은 본문이 서로 다른 거 아닙니까? 내가 찾은 구절에서는 형벌이나 지옥, 영원한 불행 같은 걸 얘기하는 데요? 그런 게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준다는 거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대신 그곳에 가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건널 수 없는 그 심연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그 구렁텅이를 건너셨습니다. 어째서 일까요? 바로 당신이 그 일을 하지 않게 하려고 그러신 겁니다.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분이 죄가 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

예수님은 죄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신 바로 그 대상. 하나님께서 응징하신 그 싫어버린 바 된 사람이 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주께서 그렇게 하셨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사53;4)실 수 있었습니다. 그 부자가 경험했던 고통을 예수님께서도 느끼셨습니다. 그 고통과 고뇌, 단절감과 외로움을 몸소 겪으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이 이렇게 부르짖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

그렇습니다. 지옥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 지옥의 깊이를 능가합니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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