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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계시는 뭐고 또 실상계시는 뭔가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③
2007년 03월 23일 (금)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요한계시록의실상> 분석① [지난기사보기]
<요한계시록의실상> 분석② [지난기사보기]

요즘 책 한 권을 꼼꼼히 읽고 있다. <목적이 이끄는 삶>(릭워렌, 도서출판 디모데, 2005)이란 책이다. 이미 베스트 셀러 목록을 지나 꾸준히 인정받고 있다는 스테디 셀러 목록으로 달려가고 있는 책이다. 많이 팔리고 또 많이 읽히고 있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현재까지 1/3 정도 지점인 13장까지 읽었다. 전체 40장(chapter)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루에 1장씩 묵상하며 읽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 책의 의도에 충실히 따라가 보려고 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위 책의 주제 중 하나다. 다시 말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하며 살자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위 책의 저자는 “오늘 예배에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라고 말한다면 진정한 예배에 잘못 접근하는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예배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익을 위한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배를 통해서 내가 기뻐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나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실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의 신앙 관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감명을 받았다.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자리에 나의 유익, 욕심, 물질 등 그 어떠한 것도 대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특정 인물이나 이단 사상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십수 년간 이단 문제를 취급해 왔다. 상당수의 이단 단체를 직접 찾아가 취재를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상을 직간접적으로 분석 보도해 왔다. 그로 인한 에피소드도 많이 가지고 있다. 멋모르고 적진(이단 단체) 깊숙이 들어가 집회 중인 교주의 사진을 대범하게 일어서서 찍고 온 일, 3개월간 잠입 취재 후 기자의 신분을 밝히자 적진에 갇힐 뻔 했던 일 등등.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적지 않은 이단들의 특징 중 대표적인 것은 잘 알려진 것처럼 한 사람의 ‘특정 인물’을 유별나게 부각시킨다는 점이다. 신도들은 그를 직접 신(神)으로 여기기도 하고 또는 신의 특별한 대리인 등으로 여기게 된다. 그 특정 인물이 이 땅에 살아 있는 경우가 많지만 심지어 이미 사망한 경우도 있다. 그래도 조직은 어느 정도 유지된다. 살아 있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사망했을 경우 신도들은 ‘곧 부활할 것이다’며 자신의 맹종의 끈을 쉽게 놓으려 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활에 의심이 가기 시작하면 ‘영으로 부활했다’고 둘러대기가 일쑤다. 아니면 또다시 어느 특정 인물에게 사망한 그 특정인의 ‘신의 능력’이 옮겨졌다고 하는 정도다. 앞선 인물은 부족했거나 실패했고 지금의 인물이 완성하기 위해 왔다는 식이 일반적인 논리다. 여기에 극단적인 시한부 종말 사상이나 치유 등 신비적으로 보여질만한 어떠한 행위가 더해지면 그 단체는 새로운 모습으로 도약(?)하게 된다.

이단의 탄생은 대체로 ‘특정 인물’의 부각에서부터 시작된다. 흔히, 교주 신격화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점에서 이만희 씨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 씨 스스로가 요한계시록 해설을 통해 자신을 특정 인물로 인정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 요한계시록
 

 

누구를 위한 계시인가?

이만희 씨는 성경에 나오는 ‘계시’라는 용어를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계시의 주체, 즉 하나님께서 계시의 말씀을 주셨고 우리는 그 객체로써 그 말씀을 받는다는 일반적인 논리에서 벗어난 듯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요한계시록 1장 1절의 해설을 통해서 희한한 주장을 하고 있는데 직접 살펴보자.

“계시는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장래 이룰 일을 이상으로 미리 보여주는 ‘환상계시’이며 다른 하나는 약속한 예언을 실물로 이루어서 보여주는 ‘실상계시’이다. 환상계시는 이룰 실상에 대해 증거하기 위해 필요한 청사진과 같다”(이 씨의 책, p.45)

이 씨는 ‘계시’에 대해 관심 있게 설명을 했다. 계시란 ‘열어서 보인다’는 뜻이라며 한자적 의미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이 씨는 이때의 계시는 요한계시록 자체만으로 좁혀서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씨는 계시에 대해 설명하는 중에 ‘계시는 두 가지로 구분한다’며 갑자기 엉뚱한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환상계시’와 ‘실상계시’가 그 두 가지라고 한다. 환상계시란 ‘장래 일을 이상으로 미리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며, 실상계시란 ‘약속한 예언을 실물로 이루어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설을 붙여놓기도 했다.

 

   
 
   ▲ 이씨측 신학원 수료식. 가운데 이만희 씨가 있다.
 
이 씨가 요한계시록 1장 1절을 해설한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다. 성경 본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which God gave him... NIV)라고 기록되어 있다. 계시를 둘로 구분한다든가 또는 그러한 의미의 어떠한 용어도 발견할 수 없다. 그것도 ‘환상’과 ‘실상’이라는 개념으로 말이다. 오직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할 뿐이다.

 

물론 반드시 해당 본문(계 1:1)에만 언급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른 성경 본문에서 그러한 개념이 있을 때 그것을 미리 또는 첨언해서 언급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그 차용해 온 성경 본문이 어디인지 또는 그와 같이 타당한 주장을 펼친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 순서다. 그렇다면 이 씨가 주장하는 계시의 두 종류에 대한 사상이 성경에 어디에 나올까. 먼저 이 씨 스스로 그것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자신도 모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증거가 없기 때문인지 그의 해설집은 잠잠하다.

요한계시록에서 ‘계시’라는 용어는 책 제목을 제외하고 본문에 딱 한 번(계 1:1) 나타난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계 1:4)라는 언어유희식 단어를 제외하곤 말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에서 ‘계시’의 직접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요한계시록 1장 1절 본문밖에 없다는 말이다. 요한계시록 1장 1절에서 계시를 이 씨의 주장대로 ‘환상’과 ‘실상’의 두 종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가? 두 가지가 아닌 ‘환상’, ‘실상’, ‘허상’ 등 3가지나 또는 그 이상으로 나누어 생각해도 그것은 그 해설 당사자의 자유이겠으나, 과연 요한계시록 1장 1절의 성경 본문 자체가 그것을 허용하는가 하는 문제다.

다른 성경 본문에서 이 씨의 주장과 비슷한 본문을 굳이 찾아본다면 고린도후서 12장 1절이 가장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 씨가 주장하고자 하는 단어가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고후 12:1).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권면의 서신을 보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환상들과 또한 그것을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계시)들을 언급하고 있다(“I will go on to visions and revelations from the Lord” - NIV).

이만희 씨 입장에서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환상계시’의 성경적인 증거로 이보다 더 좋은 구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바울이 받은 것이 이 씨의 주장과 같은 ‘환상계시’라면 바울은 그것의 ‘실상계시’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록해 놓지 않았을까? 그러나 바울은 이 씨의 주장과 같은 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 오히려 자신이 받은 많은 계시에 의해 자신이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후 12:7). 또한 자신이 받은 환상과 계시가 ‘자기 자랑’처럼 되는 것에 대해 ‘무익하다’고 고백했다(고후 12:1).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 1절을 통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떤 특별한 환상이나 계시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자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기쁨임을 그는 간증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용어는 요한계시록 1장 1절뿐 아니라, 갈라디아 1장 12절에 같은 용어가 또 한 번 등장한다.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2).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용어가 요한계시록만을 지칭한다고 볼 수 없다는 성경 스스로의 증거이기도 하다. ‘계시’라는 용어가 ‘열어서 보여준다’는 한자어 의미처럼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주신다는 보다 폭넓은 의미인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라는 구체적인 신학적인 의미로 더 공부해 볼 수도 있다.

혹자는 갈라디아 1장 12절에 기록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용어도 요한계시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목회와 선교 활동(주후 40년~60년)을 통해 세워진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 중 하나다(장종현, 최갑종, 사도 바울, 천안대학교 출판부, 1999, p.22). 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가 주후 95~96년경 도미시안 황제의 핍박 아래였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박형용, 신약개관, 아가페출판사, 1993, p.194) 사도 바울은 요한계시록의 존재를 알기도 전에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언급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무슨 뜻일까? 혹시 사도 바울이 장차 대한민국에서 등장하게 될 이만희 씨를 통한 ‘실상계시’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염두에 두었을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다른 복음이 있을 수 없다’(갈 1:6~9)는 말로 답을 내리고 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곧 예수님만을 통해서 구원이 있다는 확고한 복음과 연관시키고 있다. 그것이 사도 바울만의 신학일까?

 

   
 
   ▲ '환상계시'와 '실상계시'를 구분한 이 씨의 책
 
이만희 씨의 ‘계시’와 관련된 해설은 상상을 초월한다. 계시를 환상계시와 실상계시라는 자기만의 엉뚱한 해설을 편 이 씨는 요한계시록을 ‘환상계시’라고 자기 방식으로 주장하고 있다. 엉뚱한 주장이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씨는 당시 요한이 계시를 받기는 받았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요한은 로봇처럼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받아 적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환상으로 예수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했지만 그 예언이 언제 이루어지는지, 실체가 무엇인지는 몰랐다. 다만, 예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주신 계시를 기록했을 뿐이다”(이 씨의 책, p.45).

왜 그런 주장을 할까? 왜 요한계시록을 ‘환상계시’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과감히 펼치는 것일까? 이는 ‘실상계시’라는 자신만의 용어와 개념을 도입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의 주장을 계속해서 들어보자.

“그러므로 계시록이 응할 때에는 이미 죽은 지 오래인 사도 요한이 이 땅에 살아나서 자신이 기록한 말씀과 그 실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과 같은 입장의 목자’가 나타나 실상 계시를 보고 듣고 증거하게 된다. 계시록 성취 때 필요한 계시는 계시록 전장에 약속한 말씀대로 나타난 사건을 증거하고 알려주는 실상계시이지 환상계시가 아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성취 때에는 모든 성도가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오는 대언의 목자에게 계시록의 실상을 증거받아야 한다”(이 씨의 책 p.45~46).

요한계시록을 환상계시라고 규정한 이 씨는 그 환상계시의 뜻, 즉 ‘실상’을 알려주기 위한 특별한 한 사람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요한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 뜻을 알려주기 위한 살아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사도 요한과 같은 입장을 취한 자라고 하는 그 특별한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한국 사람일까? 미국 사람일까? 어린아이일까 아니면 노인일까? 성은 김, 이, 박 등 무엇일까? 혹시 이만희 씨 자신을 스스로 가리키는 말은 아닐까?

요즘 청년 세대 사이에 유행하는 용어가 있다. ‘꽥-’이다. ‘대꾸하기 싫다’, ‘엉뚱하다’ 등으로 필자는 그 뜻을 이해하고 있다. 이단 교리를 분석하다 보면 종종 ‘꽥-’하고 소리를 내며 컴퓨터를 덮고 싶다. 이 마음이 어디 필자뿐일까. 이단자도 필자의 글을 읽고 동일한 반응을 보일런지도 모르겠다. ‘꽥-’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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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희 이단성 밀착확인’ ,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5월호
------, ‘이단사이비문제 종합 1’ ,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1월호
------, ‘이단사이비문제 종합 2’,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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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택, 역사의 대 드라마 요한계시록, 성서유니온, 2004.
박형용, 신약개관, 아가페출판사, 1993
심창섭 외, 기독교의 이단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교육부, 1998.
장종현, 최갑종, 사도 바울, 천안대학교 출판부, 1999
정행업,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이단논쟁, 한국장로교출판사, 1999.
최병규, 이단 진단과 대응, 은혜출판사, 2004.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문제상담소, 이단사이비 종합 자료 2004, 한국기독교총연합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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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Smith, Dateline Earth, 이요나 역, <계시록의 숨겨진 비밀>, 이레서원, 1995.
Graeme Goldsworthy, The Gospel in Revelation, 김영철 역, <복음과 요한계시록>, 성서유니온, 1996
Markstrom, Symphony of Scripture, 오광만 역, <성경교향곡>, IVP, 1997
Michael Wilcock, I saw Heaven Opened, 정옥배 옮김, <요한계시록>, 두란노, 1989.
Robert E. Coleman, Songs of Heaven, 석창훈 옮김, <천상의 노래>, 두란노, 2000.
Vern S. Poythress, The Returning King, 유상섭 옮김, <요한계시록 맥 잡기>, 크리스천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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