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하 목사/ 남부 사랑의교회 담임

홍자매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회 가까운 곳에 있는데 방문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어쩐 일인가 싶기도 하고 또 보고 싶기도 했다. 2년만의 만남이 아닌가?

우물가선교회 사역 초기부터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소위 유흥가에서 남성들에게 이리저리 걷어 채이던 여성이었다. 가정은 괜찮은 편이었으나 신체적인 결함이 있었다. 홍자매는 그 컴플렉스를 극복해 내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탈선했다. 그녀는 자기를 인정해 주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마구 몸을 내맡겼다. 그녀는 어느새 윤락여성이 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서도 형편없이 무너져 있었다. 그녀의 가족들은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정도였다.

3년 전에 그녀는 한 노총각과 동거에 들어갔다고 연락을 해 왔다. 그러나 세 달을 못 넘기고 헤어졌다. 남자의 눈이 의안인데 정이 안 가고 밤에는 의안을 보는 것이 너무나 섬찟하다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전화로 나를 불러냈다. 약속 장소로 나가보니 한 건장한 남자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얼굴을 보니 얼굴에 화상을 입어서 보기가 무척 흉했다. 홍자매는 자기가 데리고 온 남자를 소개했다.
"제 남편될 사람이예요."

그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무척 순진해 보이는 그는 장농을 만드는 기술자라고 했다.
홍자매는 쥬스를 한 병 건네주면서 주례를 부탁했다. 나는 물론 그렇게 해 주겠노라 허락을 했다. 그로부터 얼마후 주례부탁이 취소되었고 그들은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대전으로 내려가 동거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얼마후에 음식점을 개업했노라 알려 왔다. 나는 홍자매에게 남편을 잘 섬기고 성실하게 살 것을 부탁하고 기도를 해 주었다.

나는 그녀의 집에 심방을 가고는 싶었으나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홍자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냐고 물었고 이미 사무실 가까이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사무실로 올라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후에 홍자매가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남자와 함께였고 그 남자의 품에는 아기가 안기어 있었다.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홍자매는 재빠르게 그를 남편이라고 소개했으며 아기도 소개했다. 아기는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해맑은 눈동자는 이슬처럼 빛나고 있었다.

홍자매는 주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남편이 옆에 있는데도 대전의 실패에 대해서 말했다. 대전에서 음식점을 하다가 남편과 성격이 안 맞아 집을 뛰쳐나왔노라고 했다. 장농이며 살림살이는 다 놓아두고 백일이 겨우 넘은 아기만을 안고 나왔는데 면목동에서 방황하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고아출신이며 막노동을 하고 있는데 요즘에는 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이유식을 먹여야 하는데 그럴 만한 돈이 없노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홍자매가 하는 동안 남편은 아기가 귀여운듯 뽀뽀도 하고 얼르기도 하고 볼을 부비기도 했다. 자기 자식이 아닌데도 그는 자기 자식 이상으로 예뻐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고 보기 좋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아기 귀여워요?" 하고 물었더니 그를 대신해서 홍자매가 말했다.
"나 보다 더 예뻐하는 걸요."

나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았다. 나는 선수를 쳐 그들에게 몇 만 원을 쥐어 주면서 말했다.
"돈 가진 게 이것밖에 없네요. 아기에게 우유라도 사먹여요."

한 달쯤 후에 그녀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늦은 밤인데 한 번 심방을 와 달라는 것이다. 문득 무슨 흉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섬찟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사는 곳은 일종의 슬럼가와 같은 곳이었다. 한번은 어떤 자매를 찾으러 그 곳에 들어갔다가 곤혹을 치른 적이 있어서 그 후로는 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심방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가기로 했다. 우물가선교회의 홍집사가 함께 따라 나섰다.

그들이 나를 맞았다. 그리고는 그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길거리에는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좁은 골목을 지나 그들이 사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방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방은 그야말로 손바닥만했고 선반에는 피난민들의 짐을 연상하게 하는 보따리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조그만 텔레비전과 먼지가 앉은 화장품들이 한두 개 눈에 들어왔다. 차가운 방바닥 위에는 밥 그릇들이 널려 있었다. 그래도 아기는 마냥 행복한듯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성경말씀은 예수님의 탄생기사를 읽었다. 예수님께서 탄생한 마굿간이 꼭 이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득 이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희망은 바로 아기였다. 나는 이렇게 설교했다.

"베들레헴은 작은 고을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경은 또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고 기록하고 있다. 베들레헴이 작지 않은 것은 예수님께서 태어난 마을이기 때문이다. 마굿간이 누추하거나 비천하지 않은 것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요람이기 때문이다. 이 가정에도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한 결코 비참하거나 작지 않을 것이다."

예배가 끝났다. 그들은 내게 콜라를 대접했으나 금식중이라 물 한 잔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야기가 한참 무르익어갈 무렵 홍자매는 돈을 빌려달라고 말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친정 어머니가 돈을 부쳐준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갚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약속은 경험상 믿을 만한 것이 못 되었다. 홍자매가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이 밤에 나에게 심방을 요청했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좀 그랬다. 무엇이 옳은가를 생각했다. 돈을 빌려주는 것도 옳은 것 같고, 빌려주지 않는 것도 옳은 것 같았다. 반면 돈을 빌려주는 것도 옳치 않은 것 같았고, 빌려주지 않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때 갑자기 아기가 방긋 웃었다. 

순간 아기의 얼굴 위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들고 절을 올리는 동방박사가 떠올랐다.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일 것인가? 나는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로 결정하고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이 아기가 누추한 곳에 누워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게 하시고, 이 아이가 가는 곳마다 절망과 어둠이 떠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월간 <교회와신앙> 1997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