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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아를 주님께 넘기고 중독성 욕망을 버려라
2007년 02월 06일 (화)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어리석은 자는 복이 있나니> 중에서
브레넌 매닝 지음/ 윤종석 옮김/ 복있는사람 펴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아주 솔직히 답해야 할 초미의 질문들이 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에 굶주려 있는가? 기도로 그분과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을 갈망하는가? 그분은 당신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분인가? 기쁜 노래처럼 당신의 영혼을 가득 채우는 이는 그분인가? 아니면 다른 산만한 것들이 그분을 숨막히게 하며, 교만이 그분의 존재를 무색케 하는가? 당신은 그분을 더 알기 위해 간절히 그분의 전기, 그분의 신약을 살피는가? 그분의 성령의 생수에 목마른가? 그분과의 우정을 방해하고 위축시키고 위협하는 것이라면 무엇에 대해서든 날마다 죽고자 애쓰고 있는가?

당신과 주님과의 관계의 실상을 확인하려면, 지난 한 달 동안 무엇이 당신을 슬프게 했는지 돌아 보라. 자신이 예수님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고, 충분히 자주 기도로 그분의 얼굴을 구하지 못하고, 그분의 사람들을 충분히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에 슬펐는가? 아니면 존중받지 못함, 권위적인 인물의 비판, 재정, 친구가 없음, 미래에 대한 두려움, 불룩 나온 뱃살 때문에 우울해졌는가?

반대로, 지난 한 달 동안 당신을 즐겁게 한 일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 당신이 선택되었다는 묵상인가? 천천히 “아바 아버지”라고 말하는 기쁨인가? 복음만을 벗 삼아 남모르게 보낸 오후의 두 시간인가? 이기심을 이긴 작은 승리인가? 아니면 당신의 기쁨의 원천은 새 차, 유명 브랜드 양복, 멋진 데이트, 멋진 섹스, 봉급 인상, 4인치가 줄어든 허리인가?

모든 그리스도인이 내면에 타오르는 성령의 신비로운 불에 복종할 때, 죽음을 통해서만 생명에 이르고 어둠을 지나서만 빛에 이른다는 구원의 진리에 우리가 순종할 때,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하고 요나가 고래 뱃속에 묻혀야만 하고 자아의 옥합이 깨져야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달콤한 향기를 맡을 수 있음을 우리가 인식할 때, “내게 오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응답할 때, 그때 비로소 성령의 무한한 능력은 교회와 세상에 엄청난 위력으로 흘러나올 것이다.

다만 그런 일은 우리가 그 동안 익숙했던 삶, 안전과 쾌락과 권력 욕구에 지배당하는 삶을 버릴 때에만 가능하다. 그런 욕구들 때문에 우리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하다는 진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 욕구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없는 삶의 미세한 잔류물을 벗겨 내지 못한 채 투명함을 잃고 만다.

아주 분명한 의미에서, 안전 도당(徒黨)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제단보다 성공의 제단에 더 자주 예배하는 신자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재권(Lordship)보다 안전의 성역에 더 꾸준히 절하는 신자들로 이루어진다. 안전 신드롬은 금전상의 문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손 안에 단돈 1만 원만 있어도 안심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은행에 1억 원을 두고도 불안해 할 수 있다.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구하는 안전의 종류- 재정적, 관계적, 직업적 등-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안전감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가 부질없는 수고에 쏟아 붓는 시간, 에너지, 생각, 관심의 양이다. 우리의 쇼핑 목록 내용은 꽤 임의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안전 욕구는 집요하기 때문에 이를 데 없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거하시게 하라는 더 높은 소명에서 우리의 생각으로 떠나게 만든다.

보다 덜 분명한 의미에서, 안전에 대한 굶주림은 다분히 본인의 정서적 기제의 문제다. 내 불안감은 반드시 외적인 상황(사업 불황 등)이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의 결과가 아니다. 평정과 안정을 얻는 힘은 내게 달려 있다. 순간적 기분, 변덕, 뜻밖의 외부 요인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내게 불안감을 주는 것은, 항상 채워져야만 하는 중독성 있는 내 정서적 필요다. 현실이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나는 좌절과 분노와 적의와 불안과 원망에 빠진다.

주님은 빛과 진리로 세상을 다니시며 때로 다정하셨고, 때로 노하셨고 항상 의로우셨고 사랑이 많으셨고 능하셨지만, 정서가 불안하신 적은 없었다. 말 한마디, 몸짓 하나, 모래에 쓴 단어 몇 개, “와서 나를 따르라!” 같은 명령 하나로 운명들이 바뀌었고 영들이 거듭났다. 그분은 사마리아인들, 창녀들, 어린아이들과 대화하시며 그들에게 진리와 자비와 용서를 말씀하셨으나, 불안의 그림자로 안색이 어두우신 적은 없었다. 만인의 눈총을 받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실 때도 그분은, 그들에게 자신의 나라를 주시려는 열망이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딱한 안전감에 집착할 때, 투명해질 가능성은 산산이 부서진다. 믿음의 해가 뜨려면 이전의 불신, 틀린 생각들, 잘못되고 제한된 확신들의 해가 져야 하듯이, 신뢰의 동이 트려면 물질적, 영적 표징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 주 예수 안에서 안전을 누린다는 것은 더 이상 대가를 따지거나 계산하니 않는다는 뜻이다.

불안한 그리스도인이 배우지 못한 것은, 가시적 표징이 아무리 귀할지라도 그것으로는 신뢰가 생기거나 유지될 수 없고, 신뢰의 존재도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자율적 자아를 온전한 믿음 가운데 그분께 넘기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그 결단을 내리고 표징에 대한 욕심을 버릴 때에만, 투명함과 확신과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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