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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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신천지 추수꾼' 인정까지 받았던 한 여성도의 개종 간증
2007년 01월 15일 (월) 00:00:00 정윤석 기자 unique44@naver.com


안녕하세요. 부족한 저를 이 자리에 서게 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6년 9월 10일에 신천지에서 개종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김인숙(가명)입니다. 저는 10년 넘게 정통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 말씀도 잘 모르고 여러 교육도 받았지만 믿음이 성장하지 않았고 구원의 확신도 없었습니다.

2003년 여름, 평소 몸이 약했던 저는 갑작스런 허리 디스크 증세로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양말도 스스로 신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남편은 병을 치료하려고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녔지만 크게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친분있는 선생님의 소개로 기치료를 하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치료를 받을 때마다 허리가 좋아졌고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호전되었습니다. 기치료를 받으면서 치료사 부부의 사람 됨됨이에 신뢰를 갖게 되었고, 고마운 마음에 자주 왕래하며 가까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치료해 주신 분의 사모가 제가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을 아시고, 해·달·별이 무엇이고, 우상의 제물이 무엇이며 천국의 문이 몇 개이고 천국은 어떻게 가는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천국은 믿음으로 간다고 대답은 했지만 확신이 없었고,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모가 성경공부를 해 보지 않겠느냐는 권유에 아무 의심없이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기에 치료 받으러 갈 때마다 사모랑 신천지측 전도사와 함께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도사는 처음에 기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인 양 행동을 하였기에 저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성경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교육이 진행되던 중, 미국에서 공부한 유명한 선교사가 성경을 가르쳐 주니 자기들과 함께 심도있게 배우자고 하며 저를 무료성경신학원으로 유인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인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2004년 4월부터 무료성경신학원에 등록하여 선과 악, 비유풀이, 말씀의 짝, 천국의 비밀은 비유로 봉함되었다는 신천지 교리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말씀의 짝, 금식, 우상의 제물 등을 풀이할 때에 기존의 생각과 다른 내용이었습니다만 전혀 의심하지 않고 참진리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고전 15장, 고후 5장 말씀에 육이 신령한 영을 덧입는 마지막 나팔의 비밀을 풀이해 주었을 때엔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6천년 동안 봉함되었던 계시의 말씀을 듣고 14만 4천에 들어야 영육부활, 신인합일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우리 가족은 물론 교우들에게 전하여 신천지 교리를 배우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특히 교주 이만희 씨가 이긴자, 보혜사, 구원자, 약속의 목자라고 배웠습니다.

궁금했던 계시록을 배우기 시작하던 중, 8월에 신천지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여동생이 전북 익산에서 교회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 제 안부를 물어 우리 언니가 성경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니까 요즘 익산에 무료로 성경공부를 시켜준다며 유인하는 이단 종교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얘기를 듣고 남편에게 전했던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은 인터넷을 통해 무료성경신학원이 바로 신천지임을 알고 경악하여 사이비 이단종교이니 절대 다니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고 저는 그때서야 비로소 교주가 이만희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성경적으로 옳고 진리가 거기에 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물러설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화도 내고 회유도 하고 눈물로 하소연도 하였으며, 아이들이 가출을 하는 등 저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평화롭고 행복했던 가정이 한 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는데도 저는 가족들이 신천지의 진리를 배웠으면 하는 생각만 했었습니다. 남편은 딸이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신천지에 가는 것을 중단하고 딸이 돌아오면 같이 신천지에 가서 배우자고 설득을 했습니다. 저는 그러자고 했고, 그러자 가출했던 아이들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아들은 인천으로 딸은 대만으로 갔습니다만 저는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수요 예배는 오후 2시에, 주일 예배는 토요일 오후 3시에 드리면서 몰래 신천지에 계속 다녔습니다.

신천지 사람들은 핍박받으며 힘들게 몰래 다니는 저를 위로하여 주었고, 뻔뻔스럽게도 저는 주일에는 남편과 함께 집 근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이중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신천지에서는 이런 저를 추수꾼으로 인정하여 제적당하지 않게 조치를 취해 주었습니다. 가족들을 속이는 행위가 하나님 나라를 속히 이룩하기 위함이고 우리 가족을 구원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양심의 가책은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2005년 딸이 귀국했지만 여전히 저는 신천지에 몰래 다녔습니다. 남편과 딸과 집 근처에 있는 교회로 주일 예배를 보러 다니는 이중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그해 가을에 저에게 의심을 품게 된 딸과 남편이 가방을 몰래 뒤지고, 핸드폰의 통화 내역을 확인하여 신천지에 계속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 다시 우리 집은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난리가 났습니다. 남편과 싸움이 잦아졌습니다. 남편은 폭음을 하며 괴로워했고, “아예 신천지에 가서 살아라”, “차라리 집을 나가 버리라”고 했습니다.

점점 상황이 심각하게 되자 신천지의 생활이 힘겹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여 십사만사천에 들 수도 없을 뿐더러 가족들의 심한 핍박 때문에 진정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는 복이 있고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을 붙잡으며 인내하였고, 히브리서 6장 4절에 있는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에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에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회개케 할 수 없다”는 말씀이 두려워서 그만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 해 겨울에 가족들과 관계가 더욱 악화되어 남편은 직장 때문에 전주로 이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신천지에 못 나갈까 봐 두려워 이사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결국 봄에 위 수술까지 한 제 건강을 걱정한 딸과 남편이 타협안을 내놓아 저는 경제권과 핸드폰 등 모든 것을 포기하는 대신에 신천지를 전주에 가서도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6년에 전주로 이사를 하였고, 가족들은 이사를 통해 제 마음을 돌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전주에서 신천지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열매가 없어 교적부가 넘어오지 않아 갈 때마다 방명록에 서명하고 아는 사람도 없어 외로웠지만 택함 받았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힘든 상황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신천지 교인 둘을 만나 구역 편성이 되면서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열매가 없는 저는 매일 아침 부녀부 모임에 참석하여 스피치 연습, 딤전 4장16절 말씀을 들으며 더욱 신천지 교리를 다져 나갔습니다.

남편과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며 지내는 어느 날, 남편은 모임에서 가는 해외여행을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저는 예배에 두 번 이상 빠지면 제적당한다는 얘기를 듣고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그 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리며 이혼을 요구하고, 신천지에서 배웠던 책과 노트를 찢고 던져 버렸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온 딸과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남편은 저를 포기해 버렸고, 게다가 이혼한다는 말에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9월 6일 수요 예배를 보고 온 저에게 남편은 교리에 대해서 토론해보자고 제안했던 제자 목사로부터 연락이 왔으니 내일 경기도로 올라가자고 했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도 없고 말주변도 없으니 안 가겠다고 하자 남편은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딸이 아빠가 간절히 원하니 한 번 가보자고 설득하면서 엄마가 이틀만 들어주면 내가 신천지에 가서 들어 보겠다고 달콤한 말을 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우리 가족을 신천지에 인도하고 싶었고 딸이 간다고 하니 드디어 열매가 하나 생기나 싶어 썩 내키진 않았지만, 남편의 뜻에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운명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9월 7일 날 아침 전주역에서 수원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수원역에 도착하자 뜻밖에 남동생과 아들의 모습이 보여 무언가 의심이 들었습니다. 남동생 차로 도착한 곳은 신천지에서 조심하라던 바로 그 상록교회였습니다.

순간 겁이 났고 가족들에게 배신감을 느꼈습니다만 절대로 신천지 교리가 진리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따라 들어갔습니다. 이때까지 저는 진용식 목사님이 신천지에서 배도하고 나와 따로 교회를 세운 분인 줄 알았습니다. 첫날 상담소 전도사님을 보니 눈빛이 무서웠습니다. 그것은 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잠깐만 듣고 끝나는 줄 알고 상담을 받는다고 했는데 전도사님께서 3일간 마음을 열고 들어야 한다고 했을 때 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을 뿐 아니라 전도사님의 말씀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왜 내가 상담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 가족들에게 듣고 싶지 않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발악을 하였습니다.

상담 마지막 날, 목사님께서 계시록의 실상과 복음에 대해 말씀하시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말이 맞는 것 같았지만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666표를 이마에서 지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3일간의 상담이 지루했고 성경지식이 부족한 저로서는 상담 내용이 들어오지도 않았고, 나를 죽이려고 하는 이곳을 빨리 빠져 나가고만 싶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상담을 들으면서 신천지를 더욱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운명의 일요일이 밝았습니다. 약속대로 집에 내려가 신천지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데, 가족들은 약속을 지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설득을 시켜 상록교회로 데리고 갈까 궁리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집에 갈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자 더욱 화가 나서 동생 집에서 난리를 피웠습니다. 그러자 동생은 나를 꼬드겨 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차는 운전사 마음대로 움직이는 기계라 저를 태우고 상록교회로 와 버렸습니다. 저는 가족들이 제 맘을 몰라주고 다시는 오기 싫은 상록교회에 데려오자 두려움이 밀려왔고, 가족들의 일방적인 행동에 대한 배신감에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면서 소란을 피워 평생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겨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를 버리시지 않고 저를 살리기 위하여 소란을 피우고 있던 승용차 안으로 주 집사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주 집사님은 신천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거부하는 저의 행동을 나무라면서 이미 다른 이단에도 12지파와 비유풀이가 있고, 교리가 신천지와 거의 비슷하다며 설득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제서야 제 마음이 눈 녹듯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계시록 1장 1절 신천지에서 주장하는 계시의 노정에 천사가 진리의 성령이 될 수 없음을 히브리서 1장 14절을 들어 설명해 주시고, 이미 지파 성립이 완성된 가운데에서 14만 4천이 모아진다는 것을 계시록 7장을 들어 얘기해 주셨습니다. 순간 신천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후 후속조치를 받으면서 신천지가 확실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으며 오직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이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게 되었으며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 신천지 생활로 저와 제 가족은 정신적인 고통은 물론 건강을 해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남편이 복음을 듣고 지금은 같이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알아 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이단사역에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하시는 진용식 목사님께 한없는 감사를 드리며 존경합니다. 목사님과 함께 이단사역에 애쓰시는 장영주 전도사님과 상담팀, 그리고 승용차 안에서 저에게 발길로 채이면서도 끝까지 저를 포기하지 않고 붙잡아 주신 주 집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소란을 피운 저를 따뜻하게 대해 주시고 다시 참다운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상록교회 성도님들께도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허물이 많은 죄인을 불러 복음을 듣게 하고 구원받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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