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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의 한계가 가져다주는 커다란 위안
2007년 01월 09일 (화)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모자람의 위안> 중에서
도널드 맥컬로우 지음/ 윤종석 옮김/ IVP 펴냄

사람들이 꼽는 훌륭한 덕목 중에 자신감은 꽤 높은 순위 안에 든다. 우리는 도전에 맞서 일을 해내려는 의지를 높이 사며, 밴드에 속한 정도가 아니라 솔로의 재능까지 있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자신감이 구겨져 노트북 컴퓨터보다 납작해지면, 심지어 그 속에 마이크로칩보다도 납작해지면 어떻게 될까? 내 생각에 그런 일은 주로 실패를 통하여,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주관적인 실패를 통하여 벌어진다.

자신감의 한계를 나도 조금은 안다. 내가 배운 교훈 중 하나는, 그 한계가 당신을 아주 위험한 곳에 데려다 놓는다는 것이다. 자신감의 한계는 당신을 두 갈래 길로 데려가, 대단히 의미심장한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당신은 두려움이 깊어지는 길로 갈 수도 있고, 용기가 태동하는 길로 갈 수도 있다.

가장 쉽고 가장 유혹적인 길은 더 이상의 실패를 피하는 것이다. 이는 후퇴와 체념으로 이어진다. 자신감을 잃으면, 더 이상 모험하지 않는 쪽이 한결 안전해 보인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으면, 다시 링으로 돌아가지 않는 쪽이 나아 보인다. 링에 올라가면 두들겨 맞을게 뻔하고, 어쩌면 녹아웃 당할지도 모른다. 자기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워낙 기본적이고 원초적이다 보니, 자신감이 없을 때 이 길을 택하지 않기란 극히 어렵다. 그리고 그 길로 멀리까지 갈수록 다시 돌아오기도 더 힘들다.

다른 길은 더 어려운 반면 그만큼 삶을 새롭게 해준다. 그 두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려는 사람에게는 정말 이 길밖에 없다. 어쨌거나 전진하는 것이다. 자신감이라곤 고작 벼룩의 간 정도일지 모르나 그래도 당신은 다시 나선다. 실패의 모험을 또 무릅쓴다. 두려움이 이 불길한 경고를 발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신도 모르게 당신은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간다. 이렇게 되면, 당신의 삶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자신감에서 용기로 옮겨간다.

이것이 비틀거리는 자신감의 첫 번째 큰 위안이다. 당신은 용감한 사람이 될 기회를 얻는 것이다. 감당할 자신이 없는 힘든 도전, 뱃속이 부글거리고 무릎이 후들거리는 도전을 만날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당신은 허리춤을 바짝 올리거나 넥타이를 바짝 졸라매고 다시 시도한다. 말라붙은 줄 알았던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 상상도 못한 그 무엇을 길어 올린다.

용기는 신기한 덕목이다. 처음에는 저 혼자 움직인다. 당신을 다시 타석으로 몰아내 타구를 기다리게 한다. 당신은 논리와 기대와 모든 본능을 무릅쓰고 덜커덕 올라선다. 두려워 덜덜 떠는 원초적인 용기만이 당신을 움직인다. 그러나 용기는 생각만큼 외톨이가 아니다. 용기는 매우 사교적이어서 동행을 불러들이는 수단이 뛰어나다. 그래서 결국 다양한 동지들이 용기 곁에 꾸역꾸역 모여든다. 새로 얻은 힘, 색다른 시각, 새로운 기술, 그밖에 다른 것들도 합류할 수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은 더 큰 도전에 부딪칠 수 있는 더 큰 사람이 되어 있다.

자신감을 잃은 덕에 당신은 용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테고, 용기는 새로운 기술과 덕을 함께 가져온다. 흔히 자신감의 한계에서 오는 또 다른 위안은 다른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다. 자신감이 결여된 채로 계속 도전에 맞서려면, 더 튼튼한 팔에 의지해야 한다. 자기 능력을 믿을 때 우리는 고립된다. 자급자족이라는 섬으로의 유배를 자초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감을 잃으면, 자기 본위의 삶에서 끌려 나온다. 대개는 원치 않게 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기쁨을 발견한다.

자신감의 한계에 이를 때, 당신은 하나님 품에 안길 수밖에 없다. 그분이 잡아 주시고 안아 주시리라고 바랄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기 능력이 바닥난 것을 아는 사람들, 물위를 걷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문외한인 사람들을 확실히 더 좋아하신다.
인간이 제 목숨이 다해 가는 것을 느낄 때, 자기가 방금 정말 미련한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스스로 자초한 위험한 환경에서 빠져나갈 길이 없음을 알 때, 이전의 자신감을 송두리째 잃었을 때, 자기가 납덩이보다 더 빨리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음을 느낄 때, 그렇게 무섭지 않을 수 있을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기도가 이보다 더 기본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미사여구와 고상한 감정과 정확한 어법을 다 빼고 나면, 기도는 이것 하나로 귀결된다. 도와주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비극에서 승리를 건저 올리시는 하나님이 로마의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을 때, 예수님은 다소의 사울을 자신의 증인으로 택하여 이방인들에게 보내셨다. 그러나 사명의 영광만 아니었다면, 바울은 해변의 안식처로 당장 은퇴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것은 고역일 수 있었다. 아시아에 갔던 한 여행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 힘에 겹도록 심한 고생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사형 선고라면 인간이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밑바닥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철두철미하게 무력하다. 자신감도 별로 없다. 자신을 의지할 수 없기에, 그들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자신감의 한계가 가져다주는 커다란 위안이다. 이 한계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없다. 그분은 스스로 도울 수단이 없는 자들을 즐거이 도우시는 분이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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