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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존중할 줄 모르는 인간은 불행
2006년 11월 15일 (수)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자존감> 중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 조애나 맥그래스 지음 / 윤종석 옮김 /IVP 펴냄

인간은 구원의 기초, 자신이나 하나님께 용인될 가능성의 기초를 자신의 행위나 성취에 둘 수 없다는 것이 종교개혁을 통해 재발견되었다. 부, 지위, 성취, 타인의 사랑, 혈통 같은 것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가 그 점을 분명히 해준다.

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 예수님은 부의 가치를 깎아 내리시며, 부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한다고 보신다. 돈은 그분이 인간을 평가하시는 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명예.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눅 6:26). 예수님은 인간이 동료 인간에게 얻는 명예가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선포하신다.
소유.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21). 소유를 축적하는 것은 세상 지위를 높여 줄지 모르나 하나님께는 아무 영향이 없다.
지혜.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고전 1:20).세상이 보기에 우리에게 지위를 가져다주는 지혜도 하나님 눈에는 별 가치가 없다.

인지행동 모델은 외적 성취가 자존감을 높여 준다고 본다. 물론 단순히 성취로 사랑이나 인정을 사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잘못된 일이라는 사실을 이런 접근들도 인정하지만, 외적 성공의 지각은 그들에게 여전히 자존감의 필수 요소다. 충분한 역할 수행이 타인들의 수용과 관계가 있다는 점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사회적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급진적인 접근은 이와 같은 성취에 대한 의존을 뒤흔드는데, 사실 그것은 성취에 대한 과잉 투자를 건강치 못한 것으로 보는 일부 세속 심리 치료 접근들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치료법들은 자존감의 거짓 원천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설 것이 무엇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복음은 이 빈자리를 해결한다. 복음은 자존감과 관련하여 인간적인 성취가 하는 역할에 일관된 비판을 가할 뿐 아니라 자존감의 새로운 기초를 제시한다.

이 점에서 ‘행위에 의한 칭의’의 개념이 중요하다. 일부 유태인들은 모세 율법을 엄수함으로써 하나님께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의 많은 치료접근들은 성공과 성취가 자기 수용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용인 가능성-자신에게든 타인들의 눈에든-을 추구하는 것은 그런 용인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충분한 역할 행위-좋은 엄마, 성공한 운동선수, 창의적 예술가, 남들이 우러러볼 만한 사람이 되는 것-에 달려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진행될 때가 많다. 이것은 행위를 통한 칭의가 규정을 준수하거나 시험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미묘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수용-우리 눈에든 하나님 눈에든-이란 인간의 어떤 행위에도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 기독교 은혜 교리의 전체 요지다.

그러하다면 본서 앞부분에서 검토한 연구 결과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자기를 존중할 줄 모르는 것이야말로 다분히 인간 불행의 구심점인 듯 보이며, 그 극단적 표출이 자살과 자멸 행위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경험에서 예외가 아니다. 죄, 죄책감, 소외를 강조하는 성경 말씀에 지나치게 몰두해 자신의 부정적 자존감을 부추기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강단에서 긍정보다는 비판과 훈계에 주력하는 기독교 문화가 부정적 자존감을 강화시킨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앞서 본 것처럼 기독교는 인간의 가치를 경시하는 듯이 보일 수 있는 요인들을 상당히 강조한다. 죄의 실체, 마땅히 ‘자신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할 능력이 인간에게 없다는 것, 회개의 필요성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강조는 기독교가 인간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정서적 고통과 내적 갈등, 그리고 죄책감을 영속시킨다는-심지어 정신 질환까지 부추기면서- 의미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죄의 죄책감 같은 문제들에 대한 기독교의 반응,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십자가에서의 그분의 구속 사역을 곧 살펴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은 죄와 절망과 무력함이라는 인간의 실체와, 그분 자신의 절대적인 도덕적 순결과 거룩함 사이의 외견상의 절대적인 간극을 메우신다. 그분은 우리가 절대 스스로 없앨 수 없는 우리의 죄를 도말해 주신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은 인정받을 수 없는 우리를 인정해 주신다. 정직하고 정확하게 스스로를 볼 때 가치 없는 우리를 그분은 가치 있다고 판정해 주신다. 우리가 그분과 분리된 자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우리의 애착에 대한 기본적 욕구를 채워 주신다.

이것은 자연히 은혜의 교리-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채워 주셨다는 선언-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우리와 하나님의 인격적·도덕적·신체적 분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폐해졌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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