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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믿음은 확고하게 연관되어 있다
2006년 11월 03일 (금)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기도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중에서
그레엄 골즈워디 지음/ 정옥배 옮김/ IVP 펴냄

기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경험적 측면임은 분명하다. 경험적이라는 말은 그것이 신자로서 우리의 자의식, 즉 우리의 사고와 습관을 포함하는 경험이라는 의미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 감정에 영향을 줄 것이다. 경험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고 인간적인 것으로, 반드시 일반적이고 객관적이고 신적인 하나님의 말씀 안에 계시된 원리들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혹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드려지는 모든 기도는, 기도가 은혜로 양자된 구속받은 자녀인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 의존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칼뱅이 기도를 믿음의 주요 표현으로 이해한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기도를 기독론과 뗄 수 없게 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믿음은 그 대상, 즉 그리스도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믿음의 대상은 우리 주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구주이시다.

이 책을 통해 분명해진 것은 기도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어떠한 존재로 인식하며,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 우리가 성부와 맺는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목회적으로 말하면, 기도에 대해 이론적이건 신학적이건 갖가지 어려움 들을 겪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 이것을 무엇보다도 믿음의 문제로 다룰 필요가 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라고 묻는 것은 다소 완곡한 질문이다. 하지만 사실상 우리는 바로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떤 식으로 하든 말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믿음에 대한 실제적 질문을 던질 때 주로 개인과 그들이 지닌 믿음의 약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 안에 계시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처럼, 기도의 경우도 그렇다는 것이다.

믿음과 기도는 매우 확고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기도에 대한 질문들은 불가피하게 믿음에 대한 질문들이며 반드시 그렇게 다루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은 기도의 개념을 왜곡시킬 것이다. 그래서 이따금씩 공포에 질려 ‘위에 계신 분’을 향해 곧바로 부르짖는 불신자들은 예수님의 중보적 역할을 전혀 모르며 사실상 자신들이 상상해 낸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사랑의 예수님’에만 집착하느라 기도 생활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역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시도록 자기 아들을 보내신 성부를 잊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물론 마리아나 성자들 같은 가상의 중보자에게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책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성부는 우리가 성자의 중보를 통해 하나님과 이야기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사랑의 예수님’께만 기도한다면,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왜 오셨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 자신에게 기도하지는 않았다는 말은 바보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무의미한 말이 아니다. 우리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주 하나님으로 경배한다. 하지만 그분을 참으로 성부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를 그의 아버지와 교제케 하시는 중보자로서 경배하는 것이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지금까지도 성부와 더불어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유한한 인간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계시된 본성에 반응할 때 느끼는 어려움에 직면한다.

나는 기도에 대한 많은 말과 글들이 문제에 거꾸로 접근한다고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시대정신에 물들어 손쉬운 해결책을 원한다. 우리가 문제를 다룰 때 패스트푸드와 같은 즉각적인 것을 원하는 문화가 사고에 스며든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이 실패하면 제작자의 사용 설명서를 읽어야 한다. 기도를 인간적이고 현상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순전히 문제 지향적인 접근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는 일을 결코 해서는 안 된다거나, 사람들이 기도에 관해 가지고 있을 만한 문제들을 무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감지된 문제들을 넘어 기저에 있는 진짜 문제들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수련회 강의나 설교를 들으면서 영적인 영양제를 한 번 맞고는 강사에 대해 격찬을 하거나 그 강의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외치곤 한다. 우리는 강해의 기치를 판단할 때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 기준에 굴복하기 쉽다. 가치 판단의 진정한 기준은 성경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율법주의가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이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것이 행동 규칙들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며, 우리는 적용되는 성경 원리들을 책임 있게 찾아내기보다는 그런 율법주의를 더 선호한다. 우리는 그런 실제적인 가르침이 지닌 유익들을 격찬하면서도, 동시에 아마도 같은 문제들에 굴복하고 기도 생활을 부흥시킬 다음 강연을 고대하면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제대로 실천하려면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기도 생활에 나타나는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해 염려하기 전에, 기도의 신학, 기독론이 기도에 의미하는 바,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의 의미 등을 생각하는 것이 훨씬 낫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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