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덕 목사/  한빛교회 

 아이들이 어릴 때 친구 목사들과 함께 바닷가에 갔었다. 그곳에서 큰 아이는 또래와 함께 어린이용 고무보트를 타고 놀았다. 나는 안전을 위해서 아이들보다 더 깊은 곳에 서서 지켜보았다. 헌데 작은 아이는 따로 놀고 있었기에 번갈아 지켜보아야 했다. 어느 순간 작은 아이를 살펴보고 큰 아이의 보트로 눈길을 향했는데 아이들이 타고 있는 보트가 보이지 않았다. 불안해하며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금방 아이들이 타고 있는 고무보트를 발견했다. 그런데 고무보트가 안전 경계선을 이미 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은 겁을 먹고 울고 있었다. 아주 잠깐 사이였는데도 그곳의 물살이 급해서 멀리 가버린 것이다. 그 사이에도 보트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멀어져 갔다.

 그 보트와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은 나였다. 그래서 급히 아이들을 향해서 헤엄을 쳤다. 그러나 곧 멈추었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다. 수영을 할 줄 알긴 아는데 그 수영실력이라는 것이 목욕탕에서 텀벙거린 것뿐이었다. 도무지 아이들에게까지 갈 수 있다고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발이 땅에 닫지 않는 곳에서 수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까짓 것 아이들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고무보트를 붙잡기만 하면 그 다음 돌아오는 것은 고무보트를 잡은 상태이므로 서투른 수영실력이라도 문제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곳까지 미치지 못하여 물에 빠진다면, 그리고 나까지 살려달라고 허우적댄다면…… 아이쿠! 상황은 복잡해진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갈등을 했다. 그렇게 주저하는 사이에도 아이들이 타고 있는 고무보트는 점점 멀어져 갔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서 꺼내 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그래서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나는 아이의 아버지가 아닌가! 그러므로 가지 않기로 했다. 무모한 짓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하고는 곧 소리쳐 도움을 요청했다.

 그곳에는 구조대원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누구도 달려들지 않았다. 인명구조요원들이 모두 풋내기들이었는지 간단한 구조였는데도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잠시 후에 한 친구 목사가 이 상황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아이들에게 쏜살같이 수영을 했다. 친구들은 모두 수영을 잘했던 것이다. 마침내 아이들은 무사히 구조되었고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모여서 웅성거렸다. 그러나 나는 마치 부모가 아닌 것처럼 그곳에서 슬쩍 벗어났다. 아비로서 아들의 위급한 상황을 보고도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으니 얼마나 창피한 노릇인가?

 그쯤 구조대원들은 상급자로부터 무지하게 혼나고 있었다. 내가 봐도 그들은 기합을 받아야 할만큼 어설펐다. 아무튼 아이들은 무사했고, 잠시 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모두 해수욕을 즐겼다. 아이도 나도 우리도 그곳의 모든 사람들도.

 창피한 일이다. 자식이 위험한 지경에 처했는데도 나의 안전을 우선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용기 있는 현명한 결정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어차피 아이들에게 당장 위험이 닥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줍잖은 수영실력으로 무모하게 아이들에게 갔다가 나까지 물에 빠지게 된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익사라도 하면 그것은 온 가족에게 더욱 큰 불행이다. 나는 냉철하게 결단을 잘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러한 결정은 차라리 용기가 아닐까?

 지푸라기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들이 무섭다고 섣불리 보트에서 뛰어 내리지 않은 것이다. 그때 비록 아이들은 겁에 질려 울고 있었지만 구해주기를 기다렸었다. 만약 구조를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바다로 뛰어 들었더라면 정말 큰일이 났을 것이다. 때로는 위기의 상황에서 그저 기다려야 생명을 구하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이 속담에는 허와 실이 있다. 이 속담의 본질은 사람의 본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를 붙잡으면 살 수 없다. 지푸라기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물에 빠진 사람은 침착함을 잃기에 지푸라기를 한번 붙잡으면 놓지 않는다. 지푸라기를 놓고 생명줄을 잡아야 하건만 지푸라기만 붙잡고 발버둥치게 마련이다. 결국 생명줄을 잡지 않아 사망에 이른다. 그러므로 물에 빠진 사람은 절대로 지푸라기를 붙잡아서는 안 된다. 물에 빠진 사람은 인내와 침착함으로 구조대원이나 생명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 후에 구조대원에게 몸을 맡기든지, 생명줄을 잡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위험에 처하면 구조대원으로 오시는 하나님을 때로는 조용하고 침착하게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성급히 세상으로 뛰어 내리면 하나님께 구조 받지 못할 수 있다. 또한 지푸라기를 잡지 말고 오직 생명줄인 하나님만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나 믿음이 적은 사람은 한낱 지푸라기를 붙잡고 그것이 생명줄인 줄 알고 하나님의 생명줄을 놓쳐 환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구조대원이신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고 세상으로 뛰어내리는 것이요, 지푸라기를 붙잡는 것이다.

 지푸라기를 잡은 사나이

 사기 도박꾼들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는 본성을 철저히 이용한다. 일반적으로 도둑이나 강도는 있어 보이는 집이나 사람을 털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사기 도박꾼들은 때로는 빈털터리를 대상으로 정하기도 한다. 이미 도박으로 많은 재산을 날린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만회하겠다는 욕구가 강하다. 그렇기에 사기 도박꾼들이 만회하게 해 주겠다며 자금을 마련하라고 하면, 그들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주위의 사람들과 일가친척에게 있는 힘을 다해 돈을 빌린다. 그러면 사기 도박꾼들은 그렇게 마련된 돈을 앗아간다. 도박이란 철저히 지푸라기를 잡는 것이다. 오늘도 정선의 산골짜기에는 지푸라기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는 복권과 같은 '대박'이 사회전반에서 유행한다. 개인, 기업, 경제관료, 정치인들은 한 건을 터뜨려 만회하거나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대박'은 지푸라기다. 지푸라기는 생명줄이 아니라 멸망줄이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긴 하지만 그 지혜로 자신과 나라를 망치기도 했다. 결국 솔로몬의 실패와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그 아들 르호보암 때 남왕국(유다)과 북왕국(이스라엘)으로 분열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는 보잘 것 없게 두 개 지파(유다와 벤냐민)만 남겨 두셨다. 그리고 나머지 열 개의 지파는 북왕국에 속하게 하셨고, 여로보암을 북왕국의 왕으로 임명하셨다. 그는 백성의 고통을 대변하는 반정부세력이었다. 여로보암은 다윗처럼 하나님께 임명받은 왕이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왕이다.

 하나님께 여로보암에게 아이야 선지자를 파송하셔서 기름을 부으실 때 견고한 왕국을 약속하셨다(왕상 11:26-40). 단, '네가 만일 내가 명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의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이라는 조건을 붙이셨다. 그 조건은 예전에 다윗에게 기름을 부을 때 제시한 것과 일반이다. 그렇게 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다. 이제 여로보암은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왕가를 견고케 하실 것이다.

 그런데 여로보암 왕은 곧 어려움에 봉착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느 곳에서 살든지 정해진 절기에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 따라서 북왕국의 백성들도 절기에 따라 남왕국으로 왕래하곤 했다. 여로보암은 이것이 불안했다. 자신의 권력이 흔들릴 것 같아 염려했다. 왕은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백성들이 남왕국으로 왕래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북쪽에도 벧엘과 단 두 곳에 성전을 건설했다. 그리고는 금송아지를 섬기게 했다. 또한 여러 곳에 산당을 짓고 레위지파가 아닌 일반 백성을 제사장으로 세웠으며 마음대로 절기를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제사를 드리게 했다. 그렇게 하여 백성들이 남왕국에 가지 않도록 했다. 여로보암은 그렇게 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어 자신의 권력이 안정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지푸라기였다. 여로보암은 이 지푸라기 때문에 그 자신이 망할 뿐만 아니라 집안까지 멸절된다. 또한 이 지푸라기로 인해 여로보암이란 이름은 악과 저주의 대명사이며 기준이 되었다. 즉 성경에서 누구를 칭할 때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거나 '여로보암의 죄'를 좇았다거나 '여로보암의 집'을 본 받았다고 하면 악하다는 의미이며, '여로보암의 집'처럼 된다고 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의미다.

 여로보암 왕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그가 붙잡아야 했던 것은 말씀의 순종이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명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길로 행하며 하나님의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다윗의 행함 같이 율례와 명령을 지켜야 했다.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든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신과 불순종의 지푸라기를 잡았기에 멸망해 버렸다.

 생명을 줄을 잡은 청년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인도에서 아프리카까지 정복하여 대제국을 이뤘다. 왕은 자신의 업적을 기념하려고 꿈에서 본대로 무려 27m짜리 금 신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관료를 집합시켜서 낙성식을 거행했다. 모두가 일제히 경배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의 영광에 문제가 생겼다. 누군가 신상에 경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곧 붙잡혀 왔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였다. 그들은 멸망한 이스라엘의 백성들인데 포로로 끌려왔다가 인재로 등용되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학문과 재주에 명철했기에 시기하는 정적들이 많았다. 정적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발하여 세 사람을 왕 앞에까지 끌려오게 한 것이다.

 왕은 그들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아끼기까지 했다. 왕은 그들을 회유를 했다.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어떤 신도 구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도 곁들였다. 그러나 세 사람은 왕의 제의를 거절했다. "하나님께서 구해 주실 것이다"라는 것이다. 또한 "설령 하나님께서 구해 주시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단호히 왕이 제공한 기회를 거부했다. 왕은 진노했다. 느부갓네살에게는 그들이 버러지만도 못한 존재가 아닌가? 화형에 처할 불을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겁게 했다. 그리고는 그들은 결박하여 불 속에 던져 넣었다. 그 불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그들을 불 속에 던져 넣던 군인들이 타 죽고 말았다.

 그런데 왕은 신기한 것을 보게 되었다. 불 속에 들어간 그들이 걷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불 속에서 전혀 상한 것 같지 않았다. 더욱이나 분명히 세 사람을 불 속에 던졌는데 네 사람이 거닐었다. 그 한 사람은 마치 신과 같았다. 왕이 그들을 불러냈다. 드디어 세 사람은 불 속에서 나왔다. 이 놀라운 광경에 모든 사람들이 다가와서 살펴봤다. 전혀 불에 그슬린 흔적조차도 없었다. 마치 산책하고 온 사람들 같았다. 그러자 왕은 선포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무례)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 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그리고 그들을 더욱 높은 직책에 올렸다.

 만약 그들이 왕이 준 기회를 잡았다면 그들은 그 지푸라기 때문에 오히려 멸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위기가 닥친 본질은 신상 때문이 아니라 정적(政敵) 때문이었다. 따라서 정적이 있는 이상 혹 이번의 위기를 넘긴다고 해도 다음 번에는 더 큰 위기들이 계속 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거부했다면 어디서 구원이 오겠는가? 그들은 지푸라기를 잡지 않고 생명줄을 잡았기에 다니엘서는 그들의 승리로 끝난다.

 지푸라기를 잡을 사람은 절대로 물에 빠져서는 안 된다. 물에 빠지지 않으면 지푸라기를 잡든, 생명줄을 잡든 상관이 없다. 또한 평생에 한번도 물에 빠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 위기의 물에는 누구든지 반드시 빠지게 된다. 지옥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구조대원이신 하나님을 침착히 기다리거나 하나님의 생명 줄을 기다리는 사람은 염려할 것 없다. 오히려 믿음을 지키고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위기의 물에 빠진 뒤에는 더 큰복이 있다. 때로는 말씀에 순종하여 불 속에 들어가는 것이 생명줄이기도 하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