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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측 규정에 대한 이윤호 목사의 반론
2006년 10월 10일 (화)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예장 통합측(총회장 이광선 목사)은 제91회 총회에서 이윤호 목사의 가계저주론에 대해 “성서의 가르침과 교회의 신앙과 신학에 위배됨이 현저하고 사이비성이 농후하다”고 규정하고 관련 책을 읽거나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이윤호 목사가 반론 글을 보내와 게재한다. <편집자 주>


편파적 해석이 유출한 부분적 진리의 오류와 위험성

들어가는 말

먼저 필자는 ‘가계저주론’은 반대자들이 비판을 위해 임의로 사용한 용어임을 밝히고 싶다. 왜냐하면 ‘가계의 복과 저주’의 말씀의 목적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저주받지 말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복음의 목적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천국에 가는 것이지, 믿지 않음으로써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따라서 공정한 토론을 위해서는 ‘가계저주론’이 아닌 ‘가계치유론’이나 ‘가계축복론’이라는 용어를 써야 할 것이다. 이는 이런 이론의 최초의 주장자로 여겨지는 케네스 맥콜(Kenneth McAll)과 제이 햄쉬(J. Hampsch)의 책 제목이 각각 [가계치유]와 [가계치유 가이드]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계의 복과 저주’는 가계치유의 ‘신학화’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반론은 ‘가계의 복과 저주’에 관해 거시적으로, 이어서 예장 통합측(이하 통합측)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세부적으로 답변하는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필자는 통합측의 주장을 괄호([])로서 직접 인용했는데, 이는 통합측이 명백하게 피력한 견해에 대해서만 필자의 입장을 밝히기 위함이다.

‘가계의 복과 저주’로서의 ‘가계치유’의 정당성

‘가계의 복과 저주’는 한국교회에서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한국 교회는 부모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잘 할 때, 자손들이 (축)복을 받는 것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각 교회는 해마다 추수감사절이면 어김없이 오늘날 미국의 부강을 조상의 신앙덕분이라고 설교한다. 이를 신학화하면, 가계에 흐르는 복, 즉 가계의 (축)복이다. 이와 반대로 부모가 하나님께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범죄할 때, 자손들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 가계에 흐르는 저주, 즉 가계의 저주이다. 따라서 “가계의 복이 존재한다면 가계의 저주도 존재한다”는 명제만으로도 본 토론은 종결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문제는 ‘가계의 (축)복’을 강조하면서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신학적으로 정립하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반면에 한국 교회는 ‘가계의 저주’는 메릴린 히키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한다]라는 책을 통해 ‘가계의 저주’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문제는 복과 저주의 불균형이다. 가계의 복과 저주를 증언하는 말씀에 주목해보자:

● 신 28:2,4,1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4) 네 몸의 소생(the fruit of your womb)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the fruit of your womb)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신 30:9-10; 신 4:40; 시 103:17; 시 37:25; 112:1-3; 잠 20:7; 눅 1:50; 고전 7:14 참조)

● 신 28:15,18,41,5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18) 네 몸의 소생(the fruit of your womb)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32) 자녀(your sons and daughters)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 . . (41) 네가 자녀(sons and daughters)를 낳을찌라도 그들이 포로가 되므로 네게 있지 못할 것이며 (46)이 모든 저주가 너와 네 자손(you and your descendant)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적과 감계가 되리라 (59) 여호와께서 너의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plagues on you and your descendant)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출 20:5; 신 5:9; 민 14:18; 사 65:6-7; 레 26:39; 민 14:33; 사 14:20-21; 단 9:16; 벧전 1:18 참조).

복보다 저주를 더 많이 강조한 말씀을 통해 복과 저주의 불균형을 시정해 보자(6개의 복(신 28:1-14)과 12개의 저주(신 28:16-68); 4개의 복(레 26:1-13)과 7개의 저주(레 26:14-39).

가계의 복과 저주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칼빈은 출애굽기 20장 5절의 말씀을 에스겔 18장 20절 및 예레미야 32장 18절의 말씀과 연관시키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이 너무 엄중해 현세의 범주에 국한시킬 수 없기 때문에 부모의 죄를 후손에게 치르게 한다. . . 하나님의 저주는 죄를 진 가장(家長) 당사자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 모두에게 공정하게 임한다”라고 가계의 저주를 설명했다([기독교강요], 제2권, 332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6장 3항은 또한 “그들은(아담과 이브) 온 인류의 조상이기 때문에, 그들이 범한 이 같은 ‘죄책이 모든 후손에게 전가되었고,’ 죄로 인한 바로 그 사망과 부패한 성품이 ‘통상적인 출생법’에 의하여 그 시조들에게서 후손들에게 ‘유전’되었다”라고 유전을 통해 후손인 전 인류에게 전가된 보편적 저주에 대해 증언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85,88문과 <대요리문답> 제153-154문의 질문과 답변은 (가계의) 저주를 끊는 사역의 정당성을 설명해 준다: “율법을 범함으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율법을 범함으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중보의 혜택을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외적방편(말씀, 성례, 기도)을 부지런히 사용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성경해석공동체가 인정하는 가계의 복과 저주의 진리

가계의 저주는 교회 안에 논쟁적인 주제(in-house debate)로서, 전 세계의 많은 교회가 아직 수용하는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가계의 저주는 전 세계적으로 실제 사역과 연관된 대부분의 신학자, 선교사, 목회자 모두가 인정하는 신학 및 임상이론이다. 예를 들면 피터 와그너, 데렉 프린스, 프랜시스 맥너트, 프레드 디커슨, 피터 호로빈, 신디 제이콥, 샌포드부부, 깁슨부부, 잭 헤이포드 등이다. 특히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는 셀사역 및 G12사역을 수용하는 교회들도 가계의 저주를 인장한다. 예를 들면 세계 최대 셀 교회인 ICM교회(콜롬비아 보고타 소재)는 내적치유 수양회에서 ‘가계저주의 근원을 찾고 차단하는’ 사역을 한다. 셀사역의 대부 랄프 네이버도 짐 에글리가 집필한 [내적치유 수양회(학생용∙리더용)]라는 책을 통해 가계의 저주를 끊는 사역을 지지한다. 한국의 경우, 조엘 오스틴의 책, [긍정의 힘], 순복음 영성훈련원 평신도훈련소, [두란노 아버지 학교], [풍성한 교회(김성곤목사)] 등을 통해 가계의 저주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답변에 앞서, 통합측의 문서상 오류를 지적하고 싶다.

1. 통합측이 필자와 메릴린 히키를 함께 비판한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어떤 이론의 주장자들이든지 세부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많은 부분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2. [모든 문제, 고통, 죄, 질병과 고통을 가계의 저주로 해석하거나, 가계의 저주나 축사사역으로 끊는 것으로]라는 통합측의 비판에 대해 답변하고 싶다. 통합측의 지적은 전형적인 환원주의적 견해로서, 필자가 전혀 주장해 본적이 없는 허수아비를 겨냥한 비판에 불과하다. 또한 [가계저주론은 자신의 잘못을 조상의 탓으로 돌려 운명론을 부추기며. . .], [육신과 혼의 구원은 영의 구원과 다른 방식으로 얻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중구원론]도 필자가 한번도 주장한 적이 없는 통합측이 만들어 낸 억지적 비약에 불과하다.

3. [1997년 이후 <빛과소금>. . . 을 통해 가계저주론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라고 언급했는데, 사실상 1998년 9월호 <빛과소금>은 [세대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여러 필자들의 의견들을 통해 가계저주론을 긍정적으로 다뤘다.

이제 통합측의 비판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해 보자.

1. 신관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하나님의 심판을 저주로 오해하고, 저주를 저주로 끊는 흑주술(黑呪術)을 주장한다]의 통합측의 주장에 대해, 필자는 답변하고 싶다. 저주의 히브리어 알라('alah)는 신성한 맹세의 뜻을 갖는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즉 재난의 도래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심판’으로써의 저주는 ‘진노,’ ‘재앙,’ ‘화,’ 혹은 ‘징계’라는 단어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성경은 아담과 이브가 범죄한 후, 심판대신에 심판과 같은 의미인 ‘저주’를 사용하였다(창 3:14-19). 어떻게 “죄로 인한 저주를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받은 저주로 끊는 것이 흑주술인가?”라고 반문하고 싶다(갈 3:13-14; 마 27:46; 막 15:34; 요 19:30).

2. 기독론 및 구원론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불완전한 영적 구원으로 제한하고 왜곡한다]. 통합측과 필자의 차이는 구원의 과정인 칭의, 성화 및 영화에 대한 강조점의 차이이다. 통합측은 칭의를, 필자는 성화를 강조한 것이다. 구원은 죄로 인해 영, 혼, 육에 임한 모든 손상된 결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치유되고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칭의의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단번에 이루어진다. 반면에 ‘성화의 구원’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죄의 결과로부터의 회복, 즉 저주로부터의 완전한 구속 역시 계속 연속되는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다(계 22:3). 통합측이 인용한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롬 8:1-2)의 두 구절은 칭의와 종말론적 신분을 말하는 것이지, 성화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될 피조물’(롬 8:21)과 죄를 짓고, 병들고, 사망해야 할 우리의 상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계 21:4)? 통합측의 [우리가 이미 영육간에 전적으로 구원을 받았으나], [저 천국의 완전한 구원을 소망함으로서]의 두 문장의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실제로 통합측이 인용한 빌립보서 2장 12절과 로마서 8장 24절은 성화와 영화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필자가 언급한 ‘세상과 사탄의 공격 및 조상의 죄로 인하여 대물림된 저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우리의 혼과 육신’은 성화의 차원에서 설명된 것이다. 메릴 엉거교수 역시 이런 문제를 ‘신분적/법적’ 진리와 ‘경험적/상태적’ 진리로 설명하였다([성도들을 향한 귀신들이 도전], 45-53면).

3. 귀신신앙과 축사기도문의 문제

마크 부벡, 에드 머피, 찰스 크래프트, 닐 앤더슨과 같은 축사사역자의 대부분은 악한 영들이 조상으로부터 후손에게 전래되었다고 주장한다(마 17:14-21; 막 9:7-29; 눅 9:37-43 참조). 프레드 디커슨은 400명의 내담자에게 사역한 경험을 근거로 “만약 위로 삼대나 사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때 조상들이 비술/사술에 참여했거나 귀신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 자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법적 심판에 의해 귀신의 영향을 받거나 귀신의 침입을 받는다”라고 ‘조상 전래의 영향’을 언급한다. 그들의 축사사역 경험을 통해, 친숙한 영, 가계 및 가문 영(혹은 가짜 가정 수호신(false family guardian spirit)의 영들이 존재함을 인정한다.

4. 운명론의 문제

필자는 심리학자 건지부부가 설명한 변환자(transformer)가 갖는 신념과 같이, “가정의 대물림된 문제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줄 뿐,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또한 전술한 바와 같이 [가계저주론은 인간의 모든 질병과 고통 등을 조상의 탓으로 돌리고, 성서가 가르치는 유익한 고통도 부정하는 운명론이다]라고 통합측이 지적한 환원주의적 접근방식을 필자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맺는 말

지면 관계상, 필자는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답변을 시도하였다. 필자의 답변을 마치면서, 1999년에 필자의 모교인 풀러 신학대학원에서 교수 간에 ‘가계의 저주’에 관한 논쟁이 시작됐을 때, 당시 부총장이었던 러스 스핏틀러(Russ Spitler)교수의 견해는 본 토론을 위한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다. "부모와 조상이 후손에게 미친 영향이 영속적이고 미묘하다는 사상은 풀러 신학대학원의 어떤 교리 조항에도 전혀 위배되지 않습니다. . . 우리는 토론이 좋은 의도와 논리적 논쟁이라는 두 가지 전제하에 진행되기를 기대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이 분야에 관한 건설적 토론을 통합측을 포함한 어떤 대상과 장소와 격식에 구애됨이 없이 언제나 환영한다(dream4god@kornet.net). 관심있는 독자들은 ‘가계의 복과 저주’ 변증서인 [가계의 복과 저주전쟁에서 승리하라(베다니)] 및 [축복의 문을 여는 능력진리(베다니)]라는 필자의 두 권의 책과 <목회와 신학> 2001년 6월호에 실린, “가계의 복과 저주의 진리를 성서적/신학적으로 입증한다”는 필자의 글을 일독할 것을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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