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덕 목사/ 한빛교회

상관(相關)과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가나에 있는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고 참석하셨다. 그곳에는 모친 마리아도 계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계신 그 흥겨운 잔치 집에 문제가 생겼다. 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인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다. 이 문제를  모친 마리아가 발견했다. 그래서 모친은 예수님께 해결을 요청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셨다(요 2:1-11).

 왜! 상관이 없다는 것일까? 그 요청은 모친인 마리아께서 한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응하시지 않았는가? 또한 불과 5절과 6절만 지나면 7절에서 역사 하실 것이면서도, 왜! 4절에서는 거창하게 아직 때가 이르지 못했다고 매정하게 거절하셨을까? 그렇다면 4절까지는 없었던 상관할 이유가 7절에서는 생겼으며, 때가 된 것인가?

 분명히 4절까지는 그토록 단호하게 거절하실 만큼 상관이 없었으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선언이기에 추호도 오차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7절에서 첫 번째 표적이 시작된 것은 그 사이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5절과 6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7절에서 역사하셨을까?

 4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상관이 없으면 응답하시지 않는다. 또한 때가 되지 않으면 역사하시지 않는다. 타 종파에서는 마리아의 기도에 특별한 응답을 기대한다. 하지만 결코 마리아의 요청 때문에 주님께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역사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응답하신 것은 상관하실 관계되었고, 역사하실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친인 마리아가 요청할지라도 상관이 없고 때가 되지 않으면 거절하신다. 응답은 마리아에게 있지 않고 상관과 때에 있다. 그렇기에 기도를 마리아에게 의탁할 것이 아니라 마리아가 한 일을 알고 마리아처럼 하면 주님께서 상관하셔서 응답하시고 역사하신다.

은혜 없는 곳
 주님이 계신 곳이라도 4절까지만 있는 곳에서는 은혜가 없다. 그런 곳은 주님께서 상관이 없다고 하신다. 주님은 5절이 없는 곳에서는 역사하지 않는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자치에 예수님이 계셨고, 또한 모친이 문제해결을 요청하셨음에도 6절까지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예수님과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리아는 요청을 거절당한 뒤에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절)' 고 했다. 그래서 주님의 어떠한 말씀이든지 그대로 할 사람들이 준비됐다. 즉 순종이 준비된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순종을 통해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도록 역사하셨다. 바로 주님께서 기다리는 때는 순종할 때였으며, 그때 상관하셨다. 따라서 순종이 준비되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상관없다 하신다. 그런 곳에서는 역사하시지 않는다. 그런 곳에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신다. 설령 모친인 마리아가 기도하더라도 난감하게 거절당할 뿐이다. 비록 교회일지라도 순종이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는 주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고 역사하지 않으신다. 그런 교회는 주님과 상관이 없는 교회다. 

 그러나 주인처럼 살펴 주님께 은혜를 요청하는 마리아와 같은 성도가 있고, 무슨 말씀이든지 순종할 하인들과 같은 성도가 있는 곳은 주님께서 상관하시고 응답하신다. 주님은 주방 안에 순종하는 하인이 있는 곳에서 은혜를 베푸시고 역사하신다.

주방의 비밀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가장 행복한 이들이 누구였을까? 애주가들은 할 수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갈리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해서 그 신비한 포도주를 맛보는 것이 소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기에 그 자리에 있던 손님들이 무척이나 부러울 것이다. 그곳에 있던 손님들은 예수님께서 능력으로 만드신 그 포도주를 맛보았다. 더욱이나 그 포도주는 주님께서 행하신 기념적인 첫 번째 표적이었다. 그 맛은 얼마나 특별했을까? 그때 그 포도주를 마셨던 그 잔치의 손님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렇지만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진정 행복한 사람들은 앉아서 대접받아 그 특별한 포도주를 먹은 손님들이 아니다. 주방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표적에 동참한 하인들이다. 하인들은 힘들게 물을 길어 오고, 손님들의 수종을 들며 심부름만 했을 뿐, 혹 그 신비한 포도주는 맛도 보지 못했을지 몰라도 하인들이 더 복되다. 자신들의 손에서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비록 손님들은 그 포도주를 맛보아 애주가들에게는 부러움이 될지라도 그저 그것뿐이다.

손님들은 주방 안에서 일어났던 신비한 일을 몰랐다. 손님석에 앉아서 편안하게 대접을 받은 손님들은 맛있는 포도주만을 맛보았을 뿐이지만, 주방 안에서 순종하여 힘들게 수고한 하인들은 주님의 능력을 맛보았다. 그날 손님석에서 대접을 받은 손님들은 포도주의 비밀을 알지 못했고, 주방 안에 있던 하인들은 주님의 첫 번째 표적이 일어난 주방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됐다.

행복한 성도
 음식점의 주방 안은 냄새와 열기와 습기로 고역스럽다. 그렇지만 손님석에는 난방과 에어컨으로 쾌적하다. 그래서 주방장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종일토록 서서 괴로움을 감내해야 하고, 손님은 손님석에 앉아 주방에서 만들어진 맛있는 음식을 편안하고 즐겁게 먹는다. 주방장은 힘들여 손님을 대접하고 손님은 앉아서 주방장에게 대접받는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목사는 설교의 주방장이며 교인은 말씀을 먹는 손님이다. 많은 목사에게 있어 설교의 준비는 때로 피를 말리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설교로 교인들은 편안하게 은혜를 받는다.

누가 더 행복할까? 혹 세상의 음식점에서는 대접하기 위해서 주방 안에서 고생하는 주방장보다 대접을 받는 손님이 행복할지라도, 교회에서는 설교의 주방 밖에서 듣기만 하는 교인들보다 설교의 주방 안에서 설교를 만들어 교인들을 대접하는 목사가 더 행복하다. 왜냐하면 설교자에게는 비밀스런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 집의 주방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듯이, 설교의 주방에서 목사가 설교를 준비할 때면 신비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

그 혼인잔치집의 주방에서 주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듯이 주님께서는 오늘도 설교의 주방에서 목사의 흔한 물 같은 것으로 말씀의 특별한 포도주를 만드신다. 그러나 교인들은 앉아서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기는 하지만 설교의 주방 안에서 일어난 신비한 역사를 모른다. 그것은 설교의 주방 안에서 영적인 혼신의 수고를 하는 목사만 경험하는 비밀이다. 목사는 설교의 주방에서 설교를 준비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의 특별한 포도주를 만들어주시는 신기하고 오묘한 체험을 한다.

그래서 설교의 주방에서 신비한 체험으로 마음이 설레고, 선포 중의 미묘한 역사에 가슴이 벅차해 하곤 한다. 그렇기에 간혹 설교에 모든 예배자들이 은혜를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목사만은 은혜를 받는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설교라면 은혜가 없을 수 없다. 교우들은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10절) 한다.

 전도 행사가 있었다. 전도 대상자를 방문하여 꽃바구니를 선물했다. 대부분의 꽃바구니를 선물 받은 사람들이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어떤 이들은 처음 받아보는 꽃바구니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한편 선물을 받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한 이웃들은 부러워했었다. 그때 꽃바구니로 온 동네가 떠들썩했었다. 하지만 교인들은 그 꽃바구니를 만들기 위해서 고생을 했다. 몇 날 동안 종일토록 꽃바구니를 만들었기에 허리와 무릎을 아파했으며, 나중에는 팔을 들 수 없을 만큼 힘들어했다.

그러나 교인들은 절대로 불행해 하지 않았다. 그것이 고생이었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꽃바구니를 받고 기뻐했던 전도 대상자들보다 힘들었던 교인들이 더욱 감격했으며 행복해 했다. 자신들은 꽃바구니를 만들기만 할뿐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았고 즐거워만 했다.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교인들은 꽃바구니의 주방 안에서 수고함으로 은혜를 체험한 것이었다.

 참 이상하다. 세상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대접을 받는 것이 좋다. 학교이든지, 직장이든지, 병원이든지, 식당이든지 어떤 곳이든 특별한 대접을 받으면 기분이 유쾌하다. 대접받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교회에서는 대접받는 것보다, 대접하는 것이 은혜가 된다. 주방에는 여름이면 불쾌한 수증기와 열기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앉아서 식사 대접을 받는 교인들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주방 안의 봉사자들이 더욱 은혜를 받는다.

 혼인잔치에서 손님석에 앉아 첫 영광의 포도주를 맛본 손님들보다 주방에서 그 영광의 작업에 참여한 하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설교의 주방과 꽃꽂이 주방과 기타 여러 봉사의 주방에서 수고를 하는 봉사자들이 더욱 은혜를 받는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손님석에 앉아 있다만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런 교인은 유쾌한 손님일 뿐이다. 교인들은 교회에 출석하였으면 봉사의 주방 안까지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주방의 비밀을 맛보아야 한다. 대접받은 손님이 아닌 대접한 하인들이 영광의 맛을 보았다.

행세와 봉사
 마리아 같이 살펴서 기도하는 성도와 하인과 같이 순종하는 성도가 있는 교회는 주님과 상관 있는 교회이며,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교회이다. 그러나 하인이 주인노릇을 하는 교회는 설령 주님이 계시더라도 은혜가 없는 교회다. 어떤 교회에서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교회의 낡은 커튼을 교체하려다가 쫓겨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비록 내가 기증한 소중한 커튼이라도 낡았으면 언제라도 새것으로 바꾸는 것을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설치한 커튼은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한다면, 커튼을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이지 교회를 위해서 커튼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성도는 봉사한 것이 아니라, 주인 행세를 하려고 커튼을 설치한 것이다. 교회에서의 주인 행세는 오직 주님만 하셔야 한다. 봉사하는 성도가 주인 행세하는 교회에서는 주님은 손님일 수밖에 없고, 주님께서 손님으로 있는 교회에서는 주님께서 상관하지 않으시며 역사하지 않으신다. 봉사자는 교회를 주인처럼 살펴야 하지만 하인처럼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로 헌신하는 교우는 교회가 지저분해지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얼마든지 마음껏 사용하세요 내가 다시 깨끗하게 정리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봉사해야 한다. 내가 청소를 했으니 절대로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그는 봉사한 것이 아니라 주인 행세를 한 것이다. 교회에서의 봉사는 잔소리와 불평이 없어야 한다. 내가 기증한 피아노가 망가지거나 좋은 것으로 교체되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헌물은 망가지고 교체되기 위해서 헌납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봉사하지 말고 헌납하지 말아야 한다. 망가지지 않게 하고 바뀌지 않게 하려면 박물관에 기증해야 할 것이다. 내가 교회의 주인이 되는 순간 교회와 나 자신 모두가 불행해 진다.

손님과 하인
 음식점에서는 손님이 주방까지 들어갈 필요가 없다. 금액만큼 편안하게 손님석에서 대접을 받으면 행복하다. 그러나 교회에 출석한 교우들은 손님처럼 앉아 대접만 받으면 안 된다. 손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봉사의 주방 안에서 역사 하시는 신비하고 오묘한 역사를 모른다. 손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제대로 체험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수고하는 봉사의 주방 안까지 들어가야 한다.

오직 봉사의 주방 안에서 순종하는 교우들이 자신들을 통하여 하찮은 물 같은 것이 귀중한 포도주가 되는 역사를 체험한다.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흔한 일이지만, 그 흔한 일이 교회의 주방 안에서 교회를 원활하게 하고 여러 봉사자들이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등으로 교회를 크게 유익되게 한다. 하인 목사, 하인 장로, 하인 그리스도인이 되어 봉사의 주방에서 순종해야 한다. 하인만이 주방 안의 비밀을 안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