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덕 목사/한빛교회

바울의 등장
 바울의 업적은 절대적이다. 사도 바울이 없는 기독교는 생각할 수 없다. 그의 선교가 그러하며, 13권의 성경 저작이 그러하다. 그런데 사도 바울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와 같은 사도가 될 수 있었다. 바울의 역사를 있게 한 주변의 인물들이 있다.

 사도 바울이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곳은 은혜의 장소가 아닌 피의 장소였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현장이었다. 사도 바울은 그곳 스데반 집사의 순교 현장에서 평범한 구경꾼이 아니었다. 그는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죽이는 끔직한 사건의 주도자였다(행 7:8). 사도 바울은 성령과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초대 교회의 기둥인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죽이는 살육의 증인으로 등장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는 핍박의 신호탄이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시작으로 사울은 교회를 잔멸했다(행 8:3).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나 성도들이 각지로 흩어져 버렸다.

 초보 기독교인 중에는 회심전의 사도 바울에 대해서 잘못 아는 이들이 있다. 회심 전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망종이었으며 흉폭한 것으로 인식하곤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회심 전에도 믿음이 있었을 뿐 아니라 경건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열정적이었다. 그의 믿음은 맹렬했으며 성경에 대하여 전문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열정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게 됐다. 그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박해였다.

그의 이러한 모순은 그렇게나 하나님을 존중했지만 정작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던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기독교인들을 하나님을 참람하게 모독하는 무뢰한들로 보았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뜨거울수록 기독교인들을 더욱 박해했다. 그의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던 열심은 하나님의 사람들인 기독교인들을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사울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교회를 잔멸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믿음 때문에 그렇게 했다.

 사울에게는 스데반 집사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흉수였기에 그를 돌로 쳐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것이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울의 눈에는 다메섹에서 더욱 거세게 하나님의 모독이 계속되었다. 따라서 사울의 무지한 믿음의 열정은 다시 한 번 다메섹에서 피의 바람이 절실했다. 그래서 자원하여 다메섹으로 향했다. 그는 살기가 등등했다. 이제 다메섹에 도착하면 기독교를 뿌리 뽑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로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그럼에도 성경전문가인 사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오히려 하나님을 핍박하고 박해했다. 하나님의 교회를 말살하려고 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열심은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 그리스도가 없는 열심은 그리스도를 해롭게 한다. 교회의 일을 헌신적으로 하더라도 그리스도가 없는 일 자체만을 위한 열심일 때 그렇다. 또한 열심히 하다 보면 나 자신을 위한 충성이 될 수 있는데 그것도 그렇다. 그리스도가 중심에 있는, 그리스도를 위한 열심과 봉사와 믿음이 되어야 한다.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기의 발걸음이 두렵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하나님에게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그래서 다메섹을 향하여 용맹스럽고 서슬이 시퍼렇게 돌진하고 있는 사울에게 강한 빛을 비추면서 그의 눈을 멀게 하고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고 책망함으로 그의 발길을 막으셨다.

 그것은 사울에게 있어서 충격이었다. 자신의 행로는 하나님의 행로라고 확신했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무리들을 처단하여 하나님을 존귀케 하는 헌신이었다. 그런데도 좌절되었다. 그리고는 볼품없는 패잔병이 되어 장님으로서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유다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난감하고 당황스런 일을 당한 사울은 기도하기 시작했다. 식음을 전폐하며 기도했다. 환상을 보기까지 기도했다(행 9:11).

첫번째 사람
 그 때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었는데, 사울이 기도하며 환상을 볼 때 아나니아는 하나님께로부터 사울에게 안수하라는 말씀을 받았다. 그러자 제자 아나니아는 사울의 예루살렘에서의 핍박과 현재 다메섹을 오는 목적을 알고 있어서 하나님께 의문을 제기 한다.

그러나 곧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을 듣고 순종하여 그 무서운 박해자 사울을 방문한다. 그리고 단번에 사울을 '형제'라고 불렀다. 스데반 집사님을 순교케 한 원수이고, 예루살렘에서 박해의 바람을 일으키고 교회를 잔멸했던 흉수이며, 그리고 다시 한 번 다메섹의 교회를 쑥밭으로 만들어 교회를 없애려는 핍박자를 형제로 불렀다. 형식적인 호칭이 아닌 가슴으로 받아 들였다. 그리하여 사울은 아나니아의 안수로 시력을 찾았고, 성령 충만케 되었으며(행 9:17), 자신의 사명을 알게 되었다(행 9:6). 바울의 위대한 출발에는 아나니아가 있었다.

 아나니아는 사도 바울의 출발을 있게 했고, 사도 바울은 오늘의 기독교를 있게 했다. 그러므로 아나니아의 수긍할 수 없는 뜻조차 따른 순종과 사랑할 수 없는 박해자까지 사랑한 형제애가 오늘의 기독교를 있게 한 것이다.

 아나니아와 같은 교인이 있는 교회에는 바울과 같은 일꾼이 발견된다. 아나니아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있는 나라에는 바울과 같은 일꾼이 빛을 내어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히 서가며 복음이 전파된다.

두번째 사람
 사울은 아나니아에 의해서 사명을 받은 후에 아라비아에서 3년 간(?) 머문다(갈 1:17). 그의 아라비아에서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그곳에서 기도와 성경묵상, 연구로 매진했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선명히 짐작할 수 있다.

 마침내 아라비아에서 돌아온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자로 다메섹과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활동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중에 누구도 사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회심을 믿지 않았다. 어떻게 믿을 수 있었겠는가? 설령 회심을 믿는다해도 어떻게 형제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런데 마가의 삼촌인 바나바가 있었는데, 바나바는 '왕따'를 당하고 있는 사울을 제자들에게 중재했다. -바나바는 초대교회의 전설과 같은 유무상통이 나타난 사도행전 4장에서 자신의 재산을 교회에 받침으로 등장한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이 크게 많아졌다(행 11:24) - 그 즈음 유대인들이 회심한 사울을 제거하기 위한 결사대를 조직하여 사울은 위험하게 되었고, 이에 제자들은 사울을 그의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로 도피시켰다. 그래서 사울은 고향에서 10여 년 간 머문다.

 그 후에 수리아 땅 안디옥에 있는 교회가 부흥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 총회에서는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로 파송하였다. 그러자 안디옥 교회는 더욱 부흥되었고, 바나바는 10여 년 동안 고향에 머물고 있는 사울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에 있는 사울을 동역자로서 안디옥 교회로 초청하여 함께 1년 간 가르쳤다. 그리하여 안디옥 교회는 더 한층 부흥하였다. 그때 안디옥 교인들은 바나바와 사울의 가르침으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란 칭호를 받게 되어, 그리스도인이란 호칭이 탄생했다.

사울과 바울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 교회였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가르침대로 사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함으로 드디어 유명한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이 시작됐다. 그러나 사울이 회심하여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되기까지 그의 이름은 여전히 사울로 성경에 기록되고 있다. 그러다가 첫 선교지인 구브로섬 선교 중에 비로소 그의 이름은 바울로 기록된다(행 13:9).

 야곱의 이스라엘이란 개명은 하나님께서, 시몬의 베드로란 개명은 주님께서 직접 하셨다. 그러나 바울 그렇지 않다.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다음과 같다. 그는 본래 이국 땅에서 태어난 교포이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이 있었을 것이며, 또한 이국 땅에서 선교활동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국제 통용어인 로마식의 이름이 유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로마식의 이름인 바울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바나바 없는 바울은 없다. 바나바가 있기에 현재의 사도 바울이 있다. 바나바가 아니었다면 사울은 다만 회심한 훌륭한 기독교인이었을 뿐일 것이다. 바나바가 아니었다면 선교사 바울이 아닌 고향으로 사라진 평범한 사울이었을 뿐일 것이다. 바나바는 바울의 속사람을 알아 10여 년 간 잊혀진 바울을 동역자로 초빙하였다. 또한 함께 역사적인 선교여행을 했다. 바나바는 하나님의 묻혀 있는 보석을 캐서 빛나게 한 것이다. 그것은 교회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다. 바나바가 아니었다면 그 유명한 선교여행은 없을 것이며, 사도행전과 13권의 성경도 없었을 것이다.

아나니아와 바나바가 없는 곳
 흔히들 우리 나라를 비판할 때, 사회풍토가 인재를 양성하지 않고 오히려 싹을 잘라 버린다고 한다. 교회는 어떨까? 교계는 어떨까? 유능한 일꾼을 키우고 인재를 발견, 양성하기보다는 키워진 인재만 의존하는 것은 아닐까? '호랑이는 가죽이요, 나무는 그늘이요, 사람은 이름이라'하여 이름만 중요시하고, 이름 없는 보석을 흙 속에 묻혀 두는 것은 아닐까?

 아나니아와 바나바 같은 이가 없는 교회는 바울과 같은 일꾼이 흙 속에 묻혀 사라질 뿐이다. 아나니아와 바나바 같은 지도자가 없는 교계에는 바울과 같은 일꾼이 빛을 내지 못한다. 바울과 같은 보석은 아나니아와 바나바 같은 이들이 있는 곳에만 빛을 낸다.

한사람, 두 사람
 한 사람 바울이 회심하고 기도와 말씀에 매진하여 사명을 받고 충성했다. 그리고 두 사람 아나니아와 바나바는 그런 바울을 빛나게 했다. 그리하여 이 한 사람과 두 사람으로 인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며,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히 서갔다. 또한 복음과 교회가 체계적이 됐으며, 영광스런 그리스도인이란 칭호가 탄생했다. 그리고 사도행전과 13권의 성경을 얻게 되었다.

 교회들이 부흥과 성장을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으며,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이 개발되었다. 그래서 성공한 사례들도 많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성공사례를 기억해야 한다. 초대교회는 사울의 회심과 사명과 충성이 있었으며 그러한 바울을 받아들이고 등용한 아나니아와 바나바가 있었기에 교회의 체계가 서고 부흥 성장되며 복음이 전파되었다. 이 땅에 초대교회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바울과 같은 일꾼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더 아나니아와 바나바 같은 이들이 필요하다. 그리하면 오늘에도 다시 한 번 바울의 역사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다.

 만약 바울이 회심하고 헌신했다 하더라도 아나니아와 바나바 같은 이들이 없었다면, 그의 고향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바울이 위대하지만 위대한 바울이 있게 한 아나니아와 바나바의 공로도 작다 할 수 없다.

 우리에게 바울과 같은 사도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한 개인이 바울과 같이 회심하고 사명을 받으며 헌신해야 한다. 그러나 아니니아와 바나바와 같은 이들이 더욱 있어야 한다. 아나니아와 바나바가 우리에게 있다면 바울의 찬란한 교회사(敎會史)가 오늘에 다시 한 번 쓰여질 것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