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덕 목사 / 한빛교회

 이제는 더 이상 꿈속에서도 볼 수 없는 어린 시절이 아름답기만 해 몹시 그립다. 동네의 뒤에는 아차산이 있고 앞으로는 한강이 흐르는 곳이었다. 그때는 겨울이 춥기도 했으며 공해도 없어서 매년 동네 앞의 강물이 트럭이 다닐 수 있을 만큼 꽝꽝 얼어붙곤 했다. 그래서 얼음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겨울이면 강의 어름을 캐서 저장했다가 여름철에 팔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강에서 사시사철 물고기를 잡았다. 겨울에 강이 얼면 강을 가로질러 마을 사람들이 얼음 밑으로 그물을 친다.

그리고 큼직한 통나무들을 들고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강을 가로질러 서서 얼음을 쿵쿵 두드리면서 그물쪽으로 물고기들을 몰아서 잡기도 했다. 어린 나로서는 썰매를 타거나 스케이트를 탈 때 동네 어른들이 그렇게 얼음을 커다란 통나무로 쿵쿵 두드리면 얼음이 깨질까봐 무서웠었다. 간혹 '피융'하는 두려운 소리와 함께 얼음에 금이 가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그것은 오히려 얼음이 단단하게 얼었기 때문이었다.

잉어와 눈더미
 선친께서는 사냥과 낚시를 좋아하셨다. 장마가 지면 흙탕물이 되어 거세게 흐르는 강물에 배를 띄우고 장어 낚시를 하셨는데, 장어를 석쇠에 구우면 기름이 철철 넘쳐흘렀다. 그리고 여름에는 방울 낚시를 하셨으며, 겨울에는 잉어 낚시를 하셨다. 겨울철의 잉어 낚시는 '삼봉'바늘을 사용한다. 얼음에 직사각형의 구멍을 뚫고서 낚시줄을 늘어뜨린 후에 낚시줄을 스치고 지나가는 물고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물고기가 줄을 스치는 순간 삼봉낚시바늘을 낚아채서 잉어는 꿰어 잡는 것이다. 그렇기에 겨울 잉어낚시는 물고기가 줄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을 놓치면 잡을 수 없어 잠시도 한눈을 팔면 안 되었다. 선친께서는 주로 밤낚시를 하셨는데 바람을 막을 수 있게 만들어진 썰매 위에서 쭈그리고 앉아 밤을 지새우곤 하셨다.

 추억 속의 어린 눈 짐작으로 잉어 한 마리의 크기가 50-60cm로 아주 크게 기억된다. 하룻밤에 몇 마리씩 잡기도 했는데, 단 5식구로서는 한 마리의 잉어도 며칠 걸려야 먹을 수 있었다. 따라서 몇 마리씩이 잡히면 그때는 냉장고가 없었거니와 설령 있다고 한들 보관이 어려웠다. 그런데 집에서는 눈이 내리면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마당에 내린 눈을 쓸어서 밖으로 버리지 않고 마당 한 가운데 마치 산처럼 쌓아 놓았었다. 그러면 봄이 되어서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 선친께서는 낚시로 잡은 잉어를 겨우내 그 눈더미에 보관했다. 눈 속 깊이 넣어 두면 자연 냉장고가 되는 것이다. 혹 이웃집에 잔치가 있으면 그것을 선물하기도 했다. 눈 속에 잉어를 파묻어 두었던 그 시절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그런데 만약 그때 마당 한 가운데 눈더미를 쌓아두지 않아서 눈더미가 없었다면, 잉어를 잡아도 보관할 수 없어 버려야 했을 것이다.

은혜와 믿음의 눈더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잉어 같은 풍성한 은혜를 주신다. 따라서 교인들이 교회에 나올 때는 믿음의 눈더미가 있어야 그 잉어 같은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어서 잉어 같은 풍성한 은혜를 받으려면 믿음의 눈더미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 믿음의 눈더미로 인해 믿음의 생활이 아름다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으며, 설령 받아도 흘려 버리게 된다.

 세상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게 돈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담을 그릇을 준비 못해서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담을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줄 터이니 그릇을 내게 가져 오라 하신다.

기름병과 그릇
 이미 구약시대부터 신학교가 있어, 교수인 엘리사 선지자 밑에 제자 생도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한 선지자 생도가 아내에게 두 아들과 빚을 남기고 죽었다. 이제 미망인이 된 생도 사모는 아들들을 채권자에게 종으로 빼앗기게 되었다. 그래서 미망인 사모는 엘리사 선지자에게 이러한 딱한 사정을 하소연했다. 자초지정을 들은 엘리사 선지가가 "너희 집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고, "오직 기름 한 병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엘리사는 "동네에 가서 그릇을 빌리 수 있는 대로 많이 빌려 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릇을 빌려 와서 아들 둘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빈 그릇에 기름을 부어라"고 했다. 그리하여 엘리사 선지자의 지시대로 빌려 온 그릇에 기름을 붓기 시작했는데, 기름병에서 기름이 계속 나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미망인이 아들들에게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 오라"고 했다. 그러자 아들들이 이제는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기름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왕하 4:1-7).

 하나님께서 선지자 생도 가정에 은혜를 베푸셨지만 은혜를 받을 그릇은 주시지 않았다. 은혜를 받을 그릇은 스스로 준비케 하셨다. 그런 후에 준비한 만큼 역사하셨다. 은혜 받을 그릇을 적게 준비하면 적은 은혜밖에 받지 못할 뿐더러, 더욱이나 그릇을 준비하지 않으면 은혜는 없다. 

교회의 건축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교회라는 건물과 모임의 그릇을 통해서 은혜를 주신다. 하지만 교회건물은 성도들이 지어야 한다. 주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셨지만 '빛'이라는 교회는 '빛' 교회의 교인들이 건축한 것이며, '소금' 교회는 '소금' 교회의 교인들이 건축한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이 빨간 벽돌의 교회를 건축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빨간 벽돌의 교회에서 은혜를 주시고, 하얀 대리석 교회를 건축하면 그 하얀 대리석 교회에서 은혜를 주신다. 성도가 봉사의 교회를 만들면 하나님께서는 봉사의 교회에서 은혜를 베푸시고, 성도가 사랑의 교회를 만들면 그 사랑의 교회를 통해서 은혜를 베푸신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건축할 은혜를 주시는데 그 받은 은혜로 교회가 건축된다.

목사의 능력 
 가끔은 필자가 영력이 있는 목사라고 존경하는 교우가 있다. 이상하게도 그 교우의 가정을 심방만 하면 스스로 대견스러울 만큼 은혜를 끼치곤 한다. 그런데 그 은혜의 비밀은 목사의 영적 능력보다도 그 교우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그릇을 준비했기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이다. 원님 덕분에 나팔 부는 것처럼 성도가 은혜의 그릇을 잘 준비했기에 덕분에 은혜를 끼치는 목사가 된 것이다. 은혜를 풍성케 주시는 하나님과 은혜 받을 그릇을 충분히 준비한 교인 사이에 있는 목사는 행복하다. 유별나게 욕심 내서 인도하고 싶은 몇몇의 예배가 있다. 그 예배들은 이상하게도 쉬워서 저절로 은혜를 끼치게 된다. 그것은 그 예배에 참석하는 교우들이 은혜의 그릇을 잘 준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채워주신 것이다.

실패하는 예배 
 반면에 대체적으로 실패하는 예배가 있다. 예배준비가 안 된 뷔페 집에서 드리는 예배가 그렇다. 그런 곳은 소란하며, 예배를 드리지 않는 종업원들과 다른 일행의 손님들이 어울려 있다. 주인된 교우는 하객 접대에만 분주하여 온통 마음이 딴 곳에 있다. 이제 조금 목회에 연륜이 붙어 한 가지 요령이 생겼다. 준비가 안 된 그런 곳에서는 은혜를 끼치려고 하면 오히려 실패한다. 차라리 은혜를 포기하고 그저 간략하게 예배를 인도해야 한다. 그래야 실패하지 않는다.

  교통과 음식 대접 때문에 예식장에서 결혼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혹 교통이 편리하고 손님 접대는 편리할지는 몰라도 은혜스런 결혼 예배는 포기해야 한다. 예식장에서의 예배는 애당초 은혜를 바라고 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객들을 위한 예식일 뿐이다. 그렇기에 좀처럼 은혜가 촉촉이 내리는 예배가 되지 않는다. 하객들이 예배 도중에도 계속 들락거리며, 서슴없이 떠들고, 딴 짓하며, 앞좌석이 텅텅 비어 있어도 뒤에서 마치 권투 경기장에서 관중들이 서 있듯이 늘어서서 잇는다. 하객들이 조금도 예배를 드리려고 하지 않는다.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 예식장은 은혜를 제대로 받기 힘든 그릇이다.

 가정심방 예배 때는 아이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 곧잘 아이들이 예배의 훼방꾼으로 돌변한다. 그러면 어른들은 그러한 아이들에게 자꾸 시선을 던진다. 이쯤 되면 설교자는 더욱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더욱이 예배를 드리는 도중에 어린 아기를 안고서 어르면 목사는 예배를 포기하게 된다. 어떤 이는 담임목사가 오지 않고 부교역자가 왔다고 서운해하며 노골적으로 들락거리면서 예배를 무성의하게 드린다. 은혜의 그릇을 준비하지 않는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

쓰레기 통 그릇 
 그런데 성도 가운데는 은혜의 그릇을 쓰레기 통으로 준비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것만 지적하고, 늘 불평하고 원망한다. 그러면 교회는 그의 공로로 쓰레기가 치워져 깨끗해진다. 그리고 목사는 연단이 되어서 깨끗해 질 수 있다. 쓰레기를 담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채워지는 것은 은혜가 아닌 쓰레기뿐이다. 늘 지적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기에 어떤 말씀도 은혜 스럽게 듣지 못한다. 결코 예배와 교회생활로 기쁨과 은혜가 없다. 그에게 채워지는 것은 온갖 비리와 험악한 것뿐이다. 은혜의 그릇을 쓰레기통으로 준비하는 성도는 교회에게는 유익이지만 자신에게는 해로움뿐이다.

 당황스럽게도 심방만 하면 은혜를 끼치지 못했던 한 가정이 있었다. 결국 안타깝게도 그 가정은 파괴되었고 본인은 이단과 이단으로 전전하게 되었다. 목사의 능력부족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교우는 이단의 그릇으로 준비했었던 것이다. .

은혜의 그릇
 은혜를 받으려면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 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그릇이 없는 것이다.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가 오더라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가 있으며 요나 같은 선지자가 와도 은혜를 받은 이가 있다

 예배를 드릴 때 차라리 은혜 받기를 포기하고, 다만 명령을 받을 준비만 하고, 복종할 말씀만 기대하면, 은혜가 되지 않을 말씀이 없으며, 은혜가 되지 않을 예배가 없다. 은혜를 기대하며 참석하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면 하나님의 음성이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 성도들이 은혜에 대해서 오해로 욕심 내다가 설교를 평가만 하고 은혜 받지 못한다.

 봉사하는 것이 좋다. 헌금하는 것이 좋다. 혹 헌금의 액수가 적으니 더욱 많이 하라고 핀잔을 받으면 더욱 좋다. 그것은 받을 은혜가 크기 때문에 은혜의 그릇을 더욱 크게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이 좋다. 하나님을 위해서 손해보는 것이 좋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좋다. 늘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한다. 그리고 힘써서 피곤하도록 주의 말씀대로 살려고 한다. 이것들이 좋은 은혜의 그릇이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는 이 그릇들에 빈곳이 없도록 가득히 은혜를 채워 주시기 때문이다.

 세상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게 돈이 없는 것처럼, 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은혜 받을 그릇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은혜의 그릇을 준비하지 못하면 은혜가 없으며, 또한 준비한 만큼만 받는다. 선지자 생도의 아내는 그릇을 준비하여 은혜를 받았다(월간 <교회와신앙>1999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