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덕 목사 /  한빛교회 

 IMF 한파가 고통스럽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염려하지 말고 소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인생의 김치를 잘 담그시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것이 자칫 여자에게는 힘겨울 수 있지만 대부분의 남자에게는 수지맞는 일이다. 아내의 하는 일들을 볼 때 딸의 결혼이 걱정스러울 만큼 여자인 아내가 동정스럽다. 반면에 결혼을 하니 남자인 나 자신에게는 좋은 것 투성이다. 그리고 그 좋은 것 중에는 김치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행복이 있다.

 나는 결혼 전까지는 김치를 마음껏 먹지 못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부터 익은 김치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겉절이 같은 김치는 전혀 먹지 않았다. 내게는 익지 않은 김치는 도무지 맛이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김치를 담그면 나는 그 김치가 익을 때까지 가슴을 조리며 기다린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김치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고, 결코 다른 식구들은 김치가 익을 때까지 무정하게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오히려 겉절이 같은 것을 좋아들 하기에 무자비하게 김치가 익기도 전에 남김없이 먹었버렸다. 그래서 늘 김치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김치는 더 이상 남지 않았다. 다행히도 김장김치는 익지 않은 상태로 무자비한 가족들조차도 다 먹어버릴 수 없기에 내 몫인 익은 김치가 남는다. 그렇기에 어릴 때의 김장김치는 유난히도 맛있었다. 그리고 봄이 가까워 묵은 김치가 되면 그때는 나의 세상이다. 여유 있게 한껏 익은 김치를 즐긴다. 

 그러나 지금은 김장김치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언제나 익은 김치를 먹을 수 있다. 그것은 아내가 김치를 충분히 익힌 후에야 냉장고에 넣고, 항상 익힌 김치만을 내놓기 때문이다. 남자는 꼭 결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익은 김치를 가슴조리며 기다리지 않고 흐뭇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겉절이도 잘먹게 되어 김치 때문에 이래도 저래도 고생을 하지 않게 되었다. 결혼의 행복은 김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지만, 나에게 있어 결혼이 행복한 것은 익은 김치를 늘 먹을 수 있기 때문일 만큼 익은 김치가 맛있다. 김치를 익혀 주는 아내가 고맙다. 그렇기에 감사하며 사랑한다. 만약 아내가 김치를 익혀서 주지 않는다면 나의 결혼생활은 어떠할까? 아내가 내놓는 익은 김치에서 아내의 사랑과 정성을 확인한다. 익은 김치는 아내의 사랑이 증명될 만큼 맛있다.

 김치는 익어야 맛있다(나에게는 많이 익을수록 좋다). 그런데 익는다는 것은 썩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치는 썩어야 맛이 있다. 인생은 김치와 같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생의 김치를 맛있게 잘 담그신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김치가 맛있도록 하기 위해서 인생의 김치를 적당히 익히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복되게 하시려고 썩히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김치를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 익혀야 맛있게 되는지 잘 아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썩는 때와 기간과 방법이 아주 정확하며 시기적절하다. 그리고 이 IMF 한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썩는 기간이며 방법이다. 이 IMF 고통의 시기와 정도는 적절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이다. 혹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하지 않으셨다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한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의 김치는 어느 정도 익어야 맛이 있게 될까? 과연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어느 정도 썩히실까? 우리의 이 힘든 기간은 언제쯤 끝이 날까? 경제적 논리가 아닌 영적 논리는 어떠한가?

 욥이 고난을 당했다. 재산을 잃었으며 가족도 잃었고 남은 것은 고통스런 병이었다. 하나님께서 욥을 익히시려고 썩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김치를 담그신 것이다. 욥의 고난은 1장에서 시작되어 42장에서 끝나고 있다. 42장 동안의 길고 긴 고난 가운데 욥의 인생김치가 맛있게 익었다. 그 맛은 애당초 하나님께서 욥에게서 부족하게 여기셨던 것이며 또한 그러한 결과를 목적으로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 같다.

욥의 고난이 끝나는 42장에서 욥이 고백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42:5, 6). 욥의 믿음이 42장 동안 고통스럽게 썪은 결과 이렇게 맛있게 익은 것이다. 욥의 믿음이 듣는 믿음에서 눈으로 보는 믿음으로 성숙했다. 그때 욥의 고난은 끝난다. 욥기의 마무리는 물질적인 보상이지만, 영적인 마무리는 바로 믿음의 성숙이다.

성경에는 욥이 있고 우리에게는 고통당하는 형제와 자매가 있다. 혹, 욥의 고통보다는 작을지라도 당하는 이에게는 자신의 시련이 가장 크게 느껴진다.

 한 청년이 교회에 등록했다. 교회가 처음이었다. 가족의 기도와 권유로 등록을 했으며, 가족들의 기도와 도움으로 짧은 기간에 좋은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청년은 등록하기 전에 실직을 당했다. 설상가상 보증을 선 것이 잘못되었고 직장상사에게 빌려 준 돈도 받지 못해 삼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와중에 교회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실직을 했기에 시간이 충분히 있었고, 그 자유로운 시간에 열심히 출석을 하며, 성경을 읽고 묵상했다. 고통이 큰 만큼 새벽기도회에도 참석하여 부르짖었다.

그의 믿음이 곧 교인들의 눈에 띌 정도가 되었으며 교회의 신문에 간증이 실리기도 했다. 실직의 고통과 암담함과 실직으로 인한 충분한 시간의 여유가 믿음을 갖게 된 좋은 조건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청년에게 앞으로 어떤 인생 길을 걷게 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쁨과 승리와 구원의 길인 것은 충분히 짐작된다. 실직의 시련이 이 청년에게 생명의 아름다운 믿음을 갖게 했다. 앞으로 그 청년에게 이처럼 충분히 교회에 출석하며 성경 읽고 묵상하며 새벽기도회에 나올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또 있을까? 그 청년은 절망의 상황을 영적으로 잘 활용했다. 혹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이 좋은 기간을 고통의 신음과 원망과 좌절로 허비하지 않고 믿음의 훈련을 했다. 실직이 그 쳥년에게는 복이다. 생명을 얻었다.

 목사에게 비밀스러운 기쁨이 있다. 이 고통스러운 IMF 상황을 목사는 그 누구보다 통감하며 동정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목사에게는 이 IMF가 암담하지 않다. 많은 교회에서 성도의 수가 늘었으며 결석률도 줄었다 한다. 그것이 목사는 좋은 것이다. 목사의 바람은 성도들이 풍요로워지는 것이지만 더욱 간절한 소망은 성도들의 믿음이며 구원이다. 이전에는 성수주일 하는 교인들이 안쓰러웠었다. 화창한 날씨에 야외로 몰려가는 차량행렬과 대조적으로, 종일토록 수고하기 위해 교회로 오는 교인들의 모습이 마치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 같이 느껴져 측은하기조차 했었다. 그러나 이 경제적 위기상황에서는 오히려 주일성수하는 교인들의 발걸음이 힘차며 희망차게 느껴진다. 성도들의 교회로 향한 발걸음을 이렇게 한 이 IMF의 한파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불행이 아닌 복이다.

 쓰레기를 태운다. 그러나 비단 태우는 것은 쓰레기만이 아니다. 소중한 금도 태운다. 오히려 귀중한 금은 쓰레기를 태우는 불과 비교할 수 없는 더 뜨거운 불에 넣는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쓰레기는 재만 남고 금은 정금이 된다.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 - 쓰레기 같은 믿음은 불과 같은 연단 후에 원망, 좌절, 배도 같은 재만 남는다. 그러나 금과 같은 믿음은 용광로 같은 연단을 통해 오히려 정금같은 믿음이 남는다. 연단과 시련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쓰레기에는 저주일지 몰라도 금에게는 기회이며, 복이다.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약 1:12). - IMF는 금과 같은 믿음이 있는 성도와 교회에게는 복이다. 이제 교회와 성도는 정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IMF의 이 위기가 불행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교인은, 그 교회는 금과 같은 믿음이 아닐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하여 선교후원금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거나 단순히 교역자를 감원시키는 것으로 대처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회에서는 영적 논리는 크게, 경제논리는 작게 적용하여 운영해야 된다. 교회가 복음의 논리로 돌아서지 않는다면 도무지 소망이 없다. 오병이어 기적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배고픈 무리를 먹이라고 한 것은 경제논리가 아니었다.

또한 사르밧 과부에게 적용된 논리는 어떤 논리였던가? 교회의 선교는 여유있는 자의 사치와 과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교회는 사장이 경영하는 곳이 아니다. 믿음의 일은 믿음으로 해야 하며 물질로만 해서는 안 된다. 교회와 성도는 이렇게 경제가 어려울 때 더욱 빛을 내야 한다. 어두움은 불을 켜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시대의 어려움은 성도와 교회가 빛을 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빛을 꺼야 하는 때가 아니다.

 홍해바다가 가로막은 것은 갈라지기 위함이며, 사막에 물이 없음은 반석에서 물이 나기 위함인 것이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성도와 교회는 편안한 은혜보다도 고통스러운 연단으로 성숙된다. 이 불경기의 위기를 복이라고 생각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을 정련한다면 금과 같은 믿음이다. IMF의 시련은 하나님께서 성도와 교회를 사랑하셔서 주신 복이다.

 왜 성도는 환난을 당하면 정금과 같은 믿음이 될까? 그것은 금과 같은 믿음의 성도는 환난을 당하면 오히려 회개하며,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만을 의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어서 내가 시련을 당한 것이 아니라 내게 문제가 있어서 이런 어려움을 당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환난이 클수록, 오래될수록 더 회개하며, 하나님만을 의뢰하며 말씀을 충실히 배운다. 그러니 성도는 환난을 당하면 깨끗해지며 성숙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용광로의 뜨거운 불이 금에 있는 모든 불순물을 태우듯 시련 불 속에 있는 성도는 죄와 불신앙을 말씀과 기도와 회개의 불로 태운다. 그래서 정금 같은 믿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는 재만 남을 뿐이다.

 어느 해 초겨울에 교회로 오르는 언덕 자그마한 텃밭에 누군가가 무엇을 심었다. 그리고 파릇파릇하게 싹이 났다. 농사의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신기했다. 이 겨울에 무엇을 심었을까? 그래서 동행했던 교우에게 어떤 작물인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보리라고 한다. 그러면서 저 보리는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평소에 그 작은 텃밭에 농작물을 심는 사람은 수확을 목적으로 심지 않고 법적인 기득권을 목적으로 심곤 했기에 결과는 짐작이 되었다. 그리고 또한 겨울에 심었으니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도 당연히 얼어죽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농사에 경험이 있는 교우의 말에 의하면 겨울에 심었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밟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이다. 교회로 오르는 언덕에 심겨져 싹이 난 그 보리는 겨울에 심겨졌기에 죽는 것이 아니라 밟히지 않았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이다. 겨울에 심겨진 보리는 오히려 밟혀야 산다. 오히려 밟히는 것이 복이다. 그래야 살기 때문이며 봄날에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썩어야 맛이 들며, 때로는 밟혀야 살고 또한 열매를 맺는다.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5).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 4). - 시험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며, 환난은 소망을 이룬다.

겨울에 밝히지 않는 보리는 남들처럼 밟히지 않았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밟혔다고 좋아할 일이다. 농사에 경험이 없는 나는 겨울일수록 보리를 절대로 밟지 않을 것이다. 보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밝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과 동정은 오히려 보리를 죽이거나 결실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의 밭을 잘 가꾸시는 농부시다. 따라서 보리를 밟듯이 인생의 겨울에는 반드시 그 사랑하는 이들을 꾹꾹 밟으신다. 가차없이 밟으신다. 완전히 파묻힐 때까지 밝으신다.

그것은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기도 하며, 매정하게도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고, 살리기 위해서이며 봄날에 풍성한 결실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성경도 모르고 믿음의 깊이도 없는 이들에게는 인생의 겨울이라는 악조건에 또한 철저하게 밟히면 설상가상이라고 불행해 한다. 그리고 절망하며, 실망하고, 자포자기며, 믿음도 잃는다. 그러나 겨울보리가 밟히는 것은 복이다. 오히려 죽지 않고 살아나며 봄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썩고, 불과 같은 시련을 당하고, 무지막지하게 밟히는 지금의 상황은 성도와 교회에게 복이다. 이 인생의 겨울이 지나면 봄에 풍성한 열매가 있을 것이며, 이 불이 꺼진 후에 남는 정금이 될 것이다(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