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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분 명상하다 감동받은 대로 '설교'
한국 퀘이커교를 진단한다 ① / 예배 참관기
2006년 05월 04일 (목) 00:00:00 전정희 기자 gasuri48@hanmail.net

30분 째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각자 눈을 감고 그대로 앉아 있다. 다리를 꼬고 앉은 사람, 쪼그리고 앉은 사람, 가부좌를 틀고 엄지와 검지로 동그랗게 원을 만들고 앉은 사람도 있다. 중간 중간 들어오는 사람도 어디엔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4월 23일 오전 11시. 한국 퀘이커교도들의 예배시간이다. 40분이 지나서야 한 참석자가 입을 열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남자는 계속 말했다. “지난 일주일 개인적인 일로 유럽을 여행하게 됐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 로마의 한 산에 올라 시내를 내려다보는 순간 그 말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그런 격언처럼 우리의 일도, 모임도, 가정도, 국가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짧은 말 뒤에 다시 긴 침묵이 흘렀다. 

   
 
   ▲ 퀘이커교도들의 주일 예배(명상)
 

퀘이커의 예배에선 누구나 침묵 중 나타난 영감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목사도, 설교도, 성경도 없는 이 모임에서 이렇게 화두처럼, 때론 시와 노래와 기도로 나타나는 이런 메시지가 설교를 대신한다. ‘감화’로 불리는 이런 메시지를 한 사람이 두 번 할 수 없고, 남의 말에 꼬투리를 잡거나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마침내 60분의 침묵 예배가 끝났다. 모두 눈을 뜨고 자유스런 분위기의 대화가 시작됐다. 오철근 서기(59)(퀘이커는 따로 조직이 없이 모임의 상징적인 대표이자 조정자 역할을 하는 서기가 있다)가 “이제껏 우리 안에 하나님을 만났다면 이제는 우리 밖의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퀘이커교’는 낯설다. 기독교인들도 퀘이커에 대해 모르기는 매한가지. 그러나 최근 현 고위공직자의 남편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가 퀘이커교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퀘이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자가 참석한 퀘이커 예배모임에는 10여명의 교도들이 참석했는데, 이날의 화제는 단연 박성준 교수에게 집중됐다. 안부를 묻는 참석자들에게 박 교수는 “아내에게 방해물이 되는 것 같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내가 ‘퀘이커=평화주의자’가 되어있는 사실 때문에 청문회를 잘 통과했다”고 답했다.

한 외국인 참석자는 “미국 후버 대통령은 퀘이커 모임에 잘 다니던 사람이었다”며 운을 뗐다. “그런데, 퀘이커 모임은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고, 발언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퀘이커에 찾아와 대통령에게 정치문제에 대해 발언하곤 했다”며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앞으로 조심해야 한다”고 하자 박 교수는 “걱정하지 말라 내 아내가 대통령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최근 언론을 통해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아내에 대해 박 교수는 “퀘이커 본부가 있는 미국의 펜들 힐에서 아내는 1년, 나는 2년 동안 있었다. 아침마다 침묵예배가 있었는데 아내가 아주 좋아했다”며 그러나 “아내는 종교 가운데서 퀘이커를 가장 좋아하고 신뢰하지만 퀘이커 멤버십 제도의 충족 요건인 2년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아내는 회원이 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2년의 자격이 돼서 퀘이커 회원이 되었지만 아내는 1년밖에 안됐기 때문에 회원이 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또, “한국의 보수 기독교 가운데는 퀘이커를 잘 몰라서 이단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며 “아내가 지역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가끔씩 절에도 가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회원이 되려고 안할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 정치를 그만두게 되면 아마도 퀘이커 회원이 되려고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서울 신촌에 소재한 한국퀘이커의 집
 

불교적 퀘이커가 존재하듯, 기독교적 퀘이커인 박성준 교수는 한신대를 졸업한 이후 1994년 일본 도쿄 릿쿄대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기장 소속의 목회자로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한백교회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동시에 박 교수는 ‘비폭력 평화의 물결’과 ‘아름다운 가게’ 등 시민단체의 공동대표도 맡고 있어 퀘이커 교도들의 사회참여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1979년도부터 이 모임에 나온 오철권 씨는 “퀘이커로 활동했던 함석헌 선생의 말처럼 ‘행함이 불을 지피지 않으면 믿음의 향기는 없다’고 믿기에 비폭력과 평화를 위한 사회참여를 아주 중시한다”고 말했다. 퀘이커들은 1, 2차 대전 피해자들을 도운 공로로 194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 모임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교도소에 수감된 형제를 돕고, 지뢰 피해자를 돕고 있다. 또, 각종 사회 참여운동과 함께 함석헌이 번역한 <말씀/퀘이커300년>이라는 책으로 스터디를 하고, ‘비폭력 평화 워크숍’ 등의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한다.

청년 참석자인 김 모 씨는 “어떻게 퀘이커에 참석하게 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퀘이커 참석자들은 대부분 기성 교회에 출석하다가 실망하고 나온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김 씨는 “학교의 기독동아리 애들한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교회가 뭔가 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전도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대답했다”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고, 지금은 퀘이커에서의 활동으로 마음이 너무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이어서 그런지 퀘이커에는 운동권이 많다”고 덧붙였다. 

   
 
   ▲ 한국퀘이커의 집 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민중신학과 여성신학 관련지
 

퀘이커교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하나님의 그것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종교다. 즉,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깊은 속에 ‘하나님의 씨앗’,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 ‘내면의 빛’을 지니고 있다며, 모든 사람이 성직자나 교회의 의식이나 어떤 다른 매개 없이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또, 역사적인 예수가 기름부음을 받아 신적인 ‘그리스도’가 되었듯이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으며, 계시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고 영속된다는 교리를 따른다. 이것은 퀘이커의 창시자인 영국인 죠지 폭스(George Fox)가 19세에 집을 나와 구도여행 4년 만에 펜들힐(Pendle Hill)이라는 산에서 환상을 보면서 깨달은 진리의 내용이다.  

교회사적인 배경지식으로 ‘신비주의자들’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찾아간 한국퀘이커 모임은 오히려 일종의 명상단체라는 느낌이다. 그러나 한편, ‘교회는 사실 너무 이기적’이라며 ‘교회의 재정을 교회 안에서 모두 소비하려고 한다’는 청년의 지적은 교회의 사회를 향한 빛과 소금의 역할이 무엇일까 새삼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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