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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음악 그리고 거짓말
2001년 08월 01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조덕영  목사/ 참기쁜교회, 한국 창조과학회 전 대표 간사

진화론자들은 음악도 모든 생물처럼 진화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생각한다. 즉 음악은 인류가 고등동물로의 진화 과정중 습득한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어떤 생물도 사람과 같은 음악적 창작력을 가진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인류가 진화의 과정을 거친 생물이라면 다른 생물들에게서도 어떤 식으로든 음악적 진보의 흔적이 남아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동물에게도 음악성의 진화를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무속음악을 연구한 마리우스 슈나이더(Marius Schuneider)조차 "세상은 소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소리가 태초에 빛이 되었고 이 빛의 부분이 물질이 되었다"는 과감한 주장을 폈다. 인간이 음악을 가졌다는 것은 신비이다.

성경은 음악이 진화적 산물이 아니라 모든 음악은 신적(神的) 기원을 갖고 있음을 일관되게 기술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찬송(신 10:21)이라 하셨고 찬송 받기를 기뻐하시며 이스라엘의 찬송 가운데 거하시는 분(시 22:3)으로 묘사된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이 찬송이 되기를 원하신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사 43:21)고 하였다. 하나님은 재물보다 찬송을 더 기뻐하신다(시 69:30-31; 습 3:17).

그러기에 교회가 음악과 함께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성경에 나타난 공식적인 교회 음악의 기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무사히 건넌 후 모세와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미리암과 다른 여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른 것에 두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여전히 음악은 있었다는 증거이다.

사실 음악은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기 이전부터 있었다(욥 38:4-19). 음악적 질서의 기초가 하나님의 창조의 선포인 창세기 1장 1절에 모두 들어있음을 증거한 젠킨스(Vernon Jenkins)의 충격적인 논문도 있다(CEN Tech. J., vol. 7(2), CSF LTD., 1993, pp. 184-196). 하나님은 과학을 만드신 과학의 하나님이다. 질서의 하나님인 것이다. 음악에도 음악적 질서가 있다. 화음(Harmony)과 조화(Ensenble)가 있다. 화음과 조화가 조금만 무너져도 금새 음악의 질서는 무너져내린다. 음악은 그 무엇보다 창조주께서 질서와 과학의 하나님이심을 웅변한다.

사도 요한이 보니 교회 시대가 끝나고 하늘 문이 열리는데 천국도 예배와 찬양의 장소였다. 요한 계시록은 천국이 음악이 풍성한 장소임을 나타낸다. 세상에 있던 모든 것이 새하늘과 새땅에서 새롭게 되나 오직 찬양은 우리가 세상에서 듣던 그대로일 것이라고 고백한 어느 음악인의 말은 일리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렇게 음악은 태초 이래 음악을 주신 하나님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음악이란 근본적으로 사랑과 쾌락과 넉두리 타령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주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인류가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 이래로 음악도 인류와 함께 방황과 변질의 길을 걸어왔다. 사단은 음악의 중요성을 인류보다 훨씬 더 잘 알았던 듯하다. 신적 기원을 가지며 하나님의 주목 대상인 음악을 통해 사람의 영혼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특히 젊은이들의 영혼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을 마귀는 잘 알고 있었다. 육체의 현저한 일(갈 5:19-21절)을 담는 데 음악보다 더 강렬한 도구는 없다는 것을 사단은 일찍이 포착한 것이다.

오늘날 음악은 하나님의 경배의 도구가 아니라 보다 더 자극적이고 강렬한 어둠의 영성을 가지고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음악에 폭력과 섹스와 광기와 죽음의 기운이 더 강렬하게 담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제작자에게는 돈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마귀는 음악을 도구로 제작자들에게는 엄청난 부(富)를 제공하고, 대중들에게는 육체의 현저한 일을 제공하는 대신 사람들을 어둠속으로 불러들인다. 이러한 어둠 속 불덩이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한 것 중의 하나가 아마 뮤직비디오의 유행이 아닐까 한다.

1999년 종합유선방송위원회가 케이블 TV에서 방영된 국내 뮤직비디오를 분석 조사한 결과, 가장 폭력성이 강한 뮤직비디오는 뜻밖에도 모범 기독교인이라고 소문난 Y군의 비디오가 '폭력 지수'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었다. 늘 공개 석상에서 기도하는 모습과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던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업적 이중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최근의 대중 음악의 모습이 오죽하랴!(이에 대한 전문가적 보고서로 강인중님의 「대중 음악 볼륨을 낮춰라」를 참조할 것).

이런 가운데 최근 기독교 배경을 가진 환경 가운데 성장한 한 댄스 가수가 자신의 음악 앨범을 내면서 파격적인 주장을 들고나와 사회의 이슈가 되어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 젊은이의 섹스 찬양 음악이다.

"섹스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제가 워낙 섹스를 좋아해요. 인생의 에센스인 것 같아요. 섹스에서 많은 에너지와 영감을 얻어요... 우린 성을 너무 고귀한 것으로, 또는 '의무'처럼 생각하죠. 사실 생활 속의 '놀이'인데 말이죠. 부부끼리 환자와 간호원, 선생과 학생 역할을 하면서 '놀이하듯' 섹스를 하면 '변태'라고 하죠. 그렇다면 결혼 몇 년만에 부부관계 횟수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과 술집 접대부가 100만 명이나 되는 건 어떻게 설명하죠? 도대체 어느 쪽이 변태인가요?"(조선일보 2001. 6. 13.)

"섹스는 최근 내 생활의 모든 것입니다. 음반 작업 내내 섹스만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이번 음악은 모두 섹스가 주제랍니다. 솔직하고 순수하지 않습니까?"(스포츠서울 2001. 6. 18.)

섹스자유론이요 섹스놀이문화론이요 섹스체험개방론이다. 음악과 섹스에 대해 자신의 나름대로는 꽤나 전문가(?)라는 주장을 펼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박한 세상에 자신을 던지고 있다. 이불 속의 일이란 부부든 불륜이든 세상으로 들고 나오는 순간 아주 천박해져 버린다. 클린턴의 지퍼게이트가 왜 세상을 부끄럽고 시끄럽게 하였는가! 더군다나 한술 더 떠서 지퍼를 열고 다니겠다는 것인가! 그것을 자유라고 하겠다는 것인가! 그것을 자유요 즐기는 놀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다. 섹스가 자유일지는 모르나 그 본질에는 질서가 담겨있다. 섹스는 결혼과 가정이라는 거룩한 놀이터 안에 주신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다. 지퍼를 열고 세상에다가 자랑하고 떠벌리라고 주신 게 아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다.

하나는 가정의 소중함을 지키려는 의도요. 또 하나는 섹스가 본래 즐거운 놀이인 줄은 모르나 섹스를 즐길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미성년자, 독신자, 홀로된 자, 장애자, 노약자들에게까지 지퍼를 열어대고 섹스는 놀이라고 외치고 혹 자신이 성적 장애자가 되어도 그렇게 떠벌리고 다닐 수 있겠는가. 참으로 섹스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고맙고 아름다운 것이기는 하나 절제와 분별과 구분이 필요한 것이다. 집밖으로 들고 나올 게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 귀한 것을 어찌 지퍼를 열어대고 용비어천가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성경은 그런 자들을 누추한(아이스크로테스; 엡 5:4) 자라고 한다. 창피한 것을 전혀 모르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보기를 든다면 예비군 훈련장에 가면 이런 부류의 아이스크로테스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예비군의 목표가 적이 아니라 마치 아내가 아닌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무찌르는 데 있는 듯 섹스 무용담을 적나라하게 털어놓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된다. 이번에 섹스 찬양 앨범을 낸 젊은이의 발상이 바로 이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이 무슨 이기적이고 분별없는 해괴망칙한 주장이란 말인가!

음악은 결코 자기의 만족과 쾌락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음악은 여호와께 새노래로(시 96:1) 즐거움을 노래하며 나아가기 위한 신비한 도구이다. 음악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대한 피조물의 감사가 담겨있어야 한다(시 100:1-5). 음악에 대한 거짓 정보가 만연되어 있는 시대이다. 음악을 사단에게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 사단은 분명 이 시대를 음악을 통해 흔들어대고 있다. 음악의 질서, 음악의 거룩성에 대해 거짓말을 해대고 있다. 그걸 우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변장술에 능할 뿐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문화 전쟁에 대해 너무 무지하거나 게으른 것은 아닌가! 음악에 대해 너무 안이한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거짓 음악에 대한 전쟁을 선포해야 될 때가 아닌가! 혹시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섹스와 음악이 하나되어 더불어 노골화되는 시대는 정말 갈 데까지 다 간 사단이 거짓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시대이다. 이제 마돈나(대중음악)와 공룡(영화산업)의 힘에 대해 안이한 태도만이라도 버리자. 영화도 절반은 음악이 지배하는 시대이다. 아니 영적으로는 영화보다 영화음악의 힘은 더 대단하다. 영화는 한두 번 보고 끝나지만 영화음악은 늘 우리 주변을 맴도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섹스와 음악을 거짓으로 포장하는 마귀의 힘은 보기보다 노련하다.

이제 이 귀한 것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회복시킬 때가 되었다.

악한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것은 그의 이름이 찬송이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하나님은 얼마나 찬송을 좋아하시길래 유다가 찬송이 되었는가. 크리소스톰(Chrysostomus)은 "좋은 음악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나쁜 음악이 있는 곳에 악마가 역사한다"고 하였다. 루터는 복음적인 찬송들로 종교개혁의 큰 힘을 얻었다. 그의 곁에는 마귀의 권세를 뚫는 10만여 곡의 아름답고 힘찬 찬송들이 있었다.

음악의 거룩과 힘을 회복하자!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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