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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야기, 진짜 신화가 맞는거야?
2006년 04월 05일 (수) 00:00:00 전정희 기자 gasuri48@hanmail.net

“태초에 나무가 있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나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민족의 시원인 신단수,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나무십자가가 그것이다. 이들 신화적 의미의 나무는 각기 사과나무, 고목, 느티나무, 가로수로 현재화된다.”
지난 3월 25일부터 KBS 1TV에서 방영한 테마 다큐, <나무 이야기>를 예고하는 내레이션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일종의 ‘신화’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구 소련의 백과사전은 예수가 초대 기독교인들에 의해 조작된 인물이라고 말한다. 또한 영국의 작가 웰스(George Albert Wells)는 <초기 기독교의 예수>, <예수는 존재하는가?>, <예수에 관한 역사적 증거>라는 삼부작에서 예수는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신화적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성경의 복음서가 증언하고 있는 예수를 후대의 신화적 각색으로 간주하는 주장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 서구 지성계에서 끊이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미국의 신학자 맥(Burton Mack)은 <기독교의 신화>에서 이런 주장을 반복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윌슨(A.N.Wilson)은 <예수>에서 신화적 예수상의 주범으로 바울을 지목했다. 윌슨의 주장에 따르면 바울은 당시 헬라의 신비종교인 미트라스(Mithras) 희생제의의 틀에서 예수의 죽음을 신화적으로 각색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최근 미국 소설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영지주의 복음서에 의존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전면 부인할 뿐만 아니라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으며 프랑스 메로빙거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는 5월 영화로 개봉되는 <다빈치 코드>에 대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상영금지가처분을 준비하며 강경 대응하고 있다. 우리의 실생활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 같은 문제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라는 과제를 끊임없이 안겨주고 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주장처럼 후대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적 인물인가? 그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은 각색되어 신학화되었을 뿐인가?

   
 
   ▲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진실성 논란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한 대형서점의 타종교 코너.
 

역사적 예수 연구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방법론과 질문으로 무장하며 신약학계의 가장 첨예한 쟁점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이다. 학자들은 이 시기의 연구 경향을 역사적 예수에 대한 ‘세 번째 질문 시기’라 부르며, 이전 시기 연구와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제 3시기’의 연구가 지니는 특징으로 학자들은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로마식 도시 세포리스(Sepphoris)의 발굴과 같은 팔레스타인 고고학의 발전, 쿰란 문서(Qumran document)와 나그함마디 문서(Nag Hammadi library)의 발견으로 예수가 살았던 1세기 팔레스타인의 사회사를 좀더 입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학제간 연구의 관심과 발전으로 비교 인류학, 갈등이론 그리고 고대 세계에 대한 사회 구성체 이론 같은 다양한 사회과학적 방법을 신약학에 채택함으로써 기존의 자료를 더 새롭고 다채롭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도마복음>과 같은 비정경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도마복음>은 2~3세기경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이 남긴 문서로서, <Q>자료와 마찬가지로 114개의 예수 어록만으로 구성된 문서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 예수 연구 경향의 선두에 서 있는 연구자 그룹이 북미에서 결성된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다. 이 그룹은 자유주의적인 성향의 신학자 74명이 웨스터연구소의 후원 아래 역사적 예수의 말씀을 연구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어록 중 후대 교회의 가필(加筆)과 역사적 예수의 것을 구별하기 위한 일곱 가지 학문적 전제에 기초하여 연구를 진행했다. 예를들어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는 구분되어야 한다”, “<요한복음>은 지나치게 신학화된 예수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하는 자료로 적절하지 않다”, “마태와 누가는 <마가복음>외에 <Q>문서를 참고해 자신들의 복음서를 기록했다”는 등과 같은 전제들이다.

이러한 학문적 전제 아래 예수 세미나의 회원들은 매번 예수의 비유나 산상설교, 주기도문 같은 예수의 특정 말씀을 연구 의제로 선택한 후, 집중 토론을 거쳐 그 말씀의 진정성을 최종 투표로 결정한다. 1993년, 그들의 독특한 투표 방식을 통해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어록의 진정성을 판별한 결과를 <다섯권의 복음서:예수의 진정한 말씀에 대한 탐구>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에 따르면 정경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 중에서 18%만이 역사적 예수의 말씀으로 간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에서, 역사적 예수의 진정한 말씀으로 인정할 만한 것이라고는 12장 17절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바쳐라”라는 구절뿐이다. 또 <마태복음> 6장에 등장하는 <주기도문>의 경우, 역사적 예수의 진정한 말씀에 해당하는 것은 ‘아버지’라는 호칭뿐이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인자의 도래나 종말 그리고 최후의 심판과 관련된 예수의 종말론적 말씀들이 대부분이 철저히 그 진정성이 의심받았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복음서 외적(外的) 증거들

비그리스도교 증거 자료 중에서 예수 당대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증언하는 역사적 기록으로, 학자들은 주저 없이 요세푸스의 책을 꼽는다. 요세푸스는 예수와 동시대를 산 제사장 가문 출신의 바리새인이다. 그는 67년 유대-로마 전쟁 당시, 예수의 고향인 갈릴리의 유대인 사령관이었다. 그러나 필연적 패배를 예상한 그는 당시 로마군 사령관이었던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에게 투항한다. 우연찮게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 황제로 등극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고, 이것이 현실이 되자 그는 곧 석방되어 로마로 송환된 뒤 플라비우스 황제들의 비호 아래 안락한 여생을 보냈다. 요세푸스는 로마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유대고대사>와 <유대전쟁사> 두 권을 집필한다. 이중 93년경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대고대사>에서 두 번에 걸쳐 예수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야고보라 불리는 소위 그리스도라는 예수의 동생이 62년 돌에 맞아 죽었다.”

학자들은 이 구절이 후대의 가필이 섞이지 않은 요세푸스 자신의 기록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유대고대사> 18장63~64절에 등장하는 예수에 관한 언급은 그 진정성에 대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요세푸스는 예수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즈음에, 굳이 그를 사람으로 부른다면, 예수라고 하는 현자한 사람이 살았다. 예수는 놀라운 일을 행했으며, 그의 진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선생이 되었다. 그는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 사이에 명성이 높았다. 그는 바로 메시아(그리스도)였다. 빌라도는 우리 유대인 중 고위층 사람들이 예수를 비난하는 소리를 듣고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명령했으나, 처음부터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예수가 죽은 지 사흘째 되는 날, 그는 다시 살아나 그들 앞에 나타났다. 이것은 하느님의 예언자들이 이미 예언했던 바, 예수에 대한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 중의 하나였다. 오늘날에도 그를 따라 이름을 붙인 족속, 즉 그리스도인이라는 족속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다.”

소위 ‘플라비우스의 증언’이라고 불리는 이 단락은 16세기 이래로 그 진정성이 논란이 된 부분이다. 비평학자들은 특별히 강조 표시된 구절들을 후대 기독교인의 가필로 추정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예수가 현자였고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당했으며, 그의 제자들이 그를 숭배하는 모임을 만들었다는 핵심적인 증언들을 요세푸스의 진정한 본문으로 간주하는 데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요세푸스의 진술은 비그리스도교 증거 자료 중에서 최초로 예수가 실재했던 역사적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편 로마의 문필가들과 정치가들도 기독교라는 종파를 만든 그리스도(예수)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들의 진술은 110년에서 12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타키투스(Tacitus), 플리니우스(Plinius), 수에토니우스(Suetonius)의 기록들이다.

타키투스는 로마의 원로원 출신으로 아시아 지역의 총독을 역임했다. 그는 기원후 115년에서 117년 사이에 쓴 <연대기>에서 64년 네로 황제가 로마의 화재를 기독교인 탓으로 돌렸다고 짤막하게 언급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명칭을 그리스도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그는 티베리우스(Tiberius) 통치 시절 본디오 빌라도 총독의 십자가형 언도로 처형되었다. 이 부패한 미신은 잠시 동안 억눌려 있었지만 후일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신앙이 처음 시작된 유대 지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혐오스러운 것과 흉악한 것들이 밀려 들어와 횡행하고 있는 로마에도 세력을 뻗쳤다.”

타키투스의 진술은 당시 예수 추종 집단에 대한 로마 사회 엘리트들의 편견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와 초기 기독교 운동에 관한 중요한 역사적 정보를 제공해준다. 요세푸스의 기록과 마찬가지로 타키투스도 예수가 유대의 총독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을 보도한다.

타키투스의 언급은 <신약성서>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사항과 일치한다. 첫째, 예수의 공적 활동이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통치 시절과 겹친다(눅 3:1). 둘째, 예수 처형 당시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의 총독이었다(마 27:2; 막 15:1; 요 18:29; 행 3:13, 13:28). 셋째, 그리스도는 죄인으로 처형당했다(눅 23:2). 넷째, 이 사건은 유대 지방에서 일어났다(막 11:16). 다섯째, 예수 운동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퍼져 나갔다(행 1:4; 28:14).

예수에 대한 또 다른 간접적인 증언을 남긴 플리니우스는 로마의 원로원 출신 변호사로 로마의 다양한 관직을 수행했으며, 서간문으로 문학적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111년경, 그는 당시의 로마 황제 트리야누스의 특사로서 총독의 권한을 지니고 비두니아와 폰투스 지방을 순회하게 되었다. 당시 그가 해결해야 할 정치적 과제 중 하나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처리 문제였다. 그는 이 문제를 황제에게 편지로 보고한다.

“그들은 어떤 정해진 날 해 뜨기 전에 모임을 갖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찬송을 번갈아 부르고, 그들끼리 범죄하지 않고, 훔치고, 빼앗고, 간음하고, 신뢰를 깨는 행위를 금하기로 맹세하여 결속했습니다.”

이 구절에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정보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신으로 숭배하며, 정기적인 모임과 일정한 예배 양식을 지닌 종교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1~2세기 그레코-로만 시대에 기록된 비그리스도교 증거 자료를 통해 예수가 역사적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를 신화적 인물로 간주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복음서 내적(內的) 증거들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가 이전의 연구와 차별성을 지니는 것은 바로 영지주의 문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 1945년 12월 이집트의 나그 함마디에서 모두 13권에 담긴 52개의 문서가 출토되었다. 다양한 콥틱어(고대 이집트 언어) 방언들로 기록된 이 문서는 2~3세기경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이 남긴 것이다. 이 문서의 발견은 1947년 사해 근처에서 쿰란 문서를 발굴한 것에 버금가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영지주의 문서들은 초대 교부들에 의해 이단적 견해를 표방하는 것으로 평가된 것이다. 이 영지주의 문서들은 정경복음서의 예수와 달리 죄와 회개에 대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허상과 깨달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즉 예수는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영적인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는 인도자로서 온 것이다.

앞서 언급한 예수 세미나는 영지주의 복음서를 대표하는 <도마복음>을 역사적 예수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로 취급했다. 그들은 <도마복음>에 기록된 비유들이 공관복음보다 짧고 간결하기 때문에 후대 교회의 가필이 덜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공관복음과 달리 <도마복음>에는 예수의 수난기사와 빈 무덤 이야기가 없다.

이처럼 비그리스도교 자료들이 전해주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정보는 매우 부족하다. 그의 가르침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사역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사적 예수의 구체적 윤곽을 그리기 위해서는 원시 그리스도교가 남긴 예수에 관한 신앙적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즉 신약성서에 남아 있는 복음서를 살펴보아야 한다. 복음서의 신약교회 초기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도적 선포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복음서에 의하면 아무도 예수의 부활을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그리스도의 부활이 일어났다. 고대 근동의 헬레니즘 신비주의에는 인간의 육체적 부활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사건으로 사람들의 기대에 반하여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를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를 반대하기 위한 아래와 같은 여러 반론을 제기한 바 있다.

△ 예수의 제자들에 의한 시체 도적설 △ 예수와 제자들이 연출한 기절설 △ 제자들이 죄책감으로 예수의 부활을 환상으로 목격했다는 환상설 △ 제자들에 의해 꾸며진 전설이라고 주장하는 전설설 △ 고대 근동의 여러 부활 신화의 영향으로 전승된 일종의 신화라는 신화설 △ 예수는 원래 영적인 존재로서 가현(假現)했기에 영적으로만 부활하였다는 영적 부활설 △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의한 시체 재매장설 △ 예수의 쌍둥이인 도마의 대리 처형설 △ 키레네 시몬의 대리 처형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소위 ‘도적설’로,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서 유기하고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는 견해다. 이 견해는 이미 신약에 기록된 바 있는 견해다. 마태는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도적질해 갔다는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마 28:15)고 기록하여 이 견해가 그가 마태복음을 기록할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서 일반적으로 회자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에 의하면 도적설은 예수의 부활이 실제로 발생한 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일부 군병들을 매수하여 유포시킨 유언비어(流言蜚語)다(마 28:12~14). 사실 그들은 이런 일을 미리 예상 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장사 후에 빌라도를 찾아가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 하며 후에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고 말한 것이다(마 27:64).

그러나 이렇게 무덤을 봉인하고 확실히 지키게 한 것이 오히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좋은 증거가 되었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가서 은닉(隱匿)한 후에 그가 부활했다고 선언했다면, 그것은 자신이 만든 거짓말에 근거한 선포가 된다. 만일 그랬다면 예수의 제자들은 거짓에 근거한 자신들의 선포에 대해 자신들의 생명을 무릅쓰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목숨과 관계된 일 앞에서는 진실을 드러내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 사건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외에 예수가 실제로 사망한 게 아니라 십자가에서 탈진하고 기절했다가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서늘한 ‘바위 속의 판 무덤’(마 27:60; 막 15:46)에서 원기를 회복하고 일어났다는 ‘기절설’이다. 예수는 단순히 갈증과 출혈로부터 인사불성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으나 후에 그는 소생했고, 제자들이 그것을 부활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의 십자가 처형 보도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실제로 죽었음을 분명히 얘기하고 있다. 그가 이미 죽었으므로 뼈를 꺾지 않은 것(요 19:33), 그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물과 피가 나온 것(요 19:33)은 모두가 예수의 죽음을 분명히 증언하는 것이다. 마가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장사(葬事) 장면 전후에서 예수의 시체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막 15:45), 누가복음에서는 죽은 자와 산 자를 대조시키는 말이 나오고(눅 24:5) 있다. 이 모두가 예수가 참으로 죽었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예수의 무덤에는 유대인들이 늘 그렇게 했듯이 심히 큰 돌을 굴려 막아 놓았다(막 15:46; 마 27:60; 막 16:4)). 만일 예수가 기진했다가 일어난 것이라면 그 큰 돌을 과연 누가 옮긴 것인가. 마태복음은 천사가 그 돌을 움직였음을 분명히 언급한다(마 28:2, 3).

실제 부활사건의 묘사를 보면, “큰 지진이 나고(마 28:2), 천사에 의해서(마 28:2) 무덤을 막아 놓았던 돌이 움직여졌으며(막 16:4; 눅 24:2; 요 20:1), 그 주변에 천사가 나타나고 있고(막 16:5~7; 눅 24:4~7), 그런 상황 가운데서 무덤을 지키는 자들은 천사를 무서워하며 떨며 죽은 자 같이 되었으나(마 28:4), 그 천사들에 의해서 여인들은 이미 주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 나셨다는 선언을 받고 있다(마 28:5~7; 막 16:5~7; 눅 24:5~7). 그러므로 부활한 주께서는 몸을 가지고 부활했으나, 마치 나사로가 무덤을 나오는 것 같이 그 무덤에서 나오거나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천사들이 돌을 옮긴 것은 부활한 예수가 나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무덤이 비었음을 목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자들이 무서워 문을 닫고 있을 때 그들 가운데 올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주의 부활체는 나사로와 같이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라, 이미 부활체로서 여인들(마 28:9~10)과 막달라 마리아에게 무덤 주위에서 보인 것이고(막 16:9~11; 요 20:11~18)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요 20:19~23)이라고 할 수 있다.

스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가 이야기 하듯 무덤에서 거의 죽은 채로 꺼내어져서 나약하고 병든 상태로 헤매면서 의학적 응급조치를 필요로 하는, 고통에 굴복하고만 그런 존재가 제자들에게 사망과 무덤의 정복자요, 인생의 주와 선교의 기초라는 인상을 주었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하다.

셋째로, 예수의 죽음 뒤에 그를 지나치게 그리워한 나머지 일종의 환상을 본 것이라는 ‘환상설’이다. 제자들은 기본적으로 예수의 부활을 기대하지 않고 있던 것으로 성경은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그를 붙잡고(마 28:9; 요 20:17,27), 경배하기도 하며(마 28:9), 만져 보라는 초청을 받기도 하며(눅 24:39), 그와 함께 음식을 들기도 한 것이다(눅 24:30, 41~43; 요 21:13,15). 그리고 예수는 개인적으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나타났으며,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기도 했으므로 이런 일을 환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넷째 예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한 게 여성들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예수의 부활을 반증한다. 당시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증거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만일 예수의 부활 이야기가 꾸며낸 사건이라면 남성들이 목격한 것으로 만들어야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외에 유대인의 핵심적인 신앙적, 사회적 규범이 부활 신앙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이 예수의 부활을 말해준다. 그토록 확고했던 유대인들의 신앙적, 사회적 규범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 일 때문에 박해를 넘어 순교까지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인가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가치에 대한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또, 도마와 사울 같은 많은 회의론자 및 반대자가 부활 체험을 통해 회심했다는 사실과 부활 체험을 계기로 교회가 출현했다는 사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증명하고 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신성이나 부활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진실이 아니거나 용납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주변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 증명은 그 사실에 의문을 가진 사람 앞에서 그 사건을 되풀이함으로써 어떤 일이 사실임을 보여 주는 데 기초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정한 환경이 필요한데, 거기서 관찰과 자료 수집, 그리고 경험적으로 다양한 가설을 실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학적 방법은 오로지 다시 반복할 수 있는 경우의 일에만 사용 가능하다. 그 방법은 역사상 한 인물이나 사건에 관한 수많은 문제들을 입증하거나 반증할 때는 적절치 못한 방법이다. 이것은 마치 “조지 워싱턴은 실존 인물이었는가?”라는 질문과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죽음에서 부활했는가?”와 같은 성격의 질문이다. 이런 물음은 과학적인 증명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가 이전의 연구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쿰란 문서나 나그 함마디 문서 같은 새로운 자료에 힘입었다기보다는 기존의 자료를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이 대두했다는 데 있다. 1940년대에 쿰란 문서와 나그 함마디 영지주의 문서가 발굴됨으로써 예수 시대의 사회 분위기와 어록 자료들을 좀더 면밀히 살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지만, 학계의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획기적인 기여를 못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과 십자가, 부활 사건에 대한 역사적 사실성은 그 확고한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참고도서

리 스트로벨, <예수는 역사다>, 두란노, 2006
조시 맥도웰, <예수는 누구인가>, 순출판사, 2004
라은성 외, <다빈치 코드의 족보>, 동이, 2005
정승우,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책세상, 2005
이승구,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의미", 국제신학4권, 2002
브리태니커백과사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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