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희 / 고양 홍익교회 사모

지난 여름 이웃에 살고 있는 친구 가족이 휴가를 떠나면서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잠시 맡아달라는 전화가 왔다.

 배 시간을 맞추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동물 병원 문여는 시간은 9시가 넘어야 하니까 1 시간 가량만 데리고 있다가 동물 병원에 맡겨 달라는 것이었다. 잠결에 무심코 그러마고 대답을 했지만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게 아닌가. 사실 그 강아지는 길이 잘든 강아지가 아니었다.

어쩌다 아이들을 데리고 그 집을 방문하다보면 애완견치고는 결코 덩치가 작은 편이 아닌 푸들종인 그 강아지가 현관에서부터 사정없이 짖어대기 시작할 뿐 아니라 낯선 방문자인 우리에게 달려들어 발바닥을 핥아대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달려드는 통에 한 동안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특히 초등학생인 아들은 덩치가 작다고 만만한 상대로 보이는지 아이에게는 유독 심하게 달려들곤 하였다. 그래서 늘 그 강아지 주인에게 처음부터 강아지 교육을 제대로 안 시켜서 버릇이 없다고 하면 평상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강아지 편을 드는 것이다.

 '한 시간 가량이라지만 그것도 이른 아침에 자기 집에서도 그 모양인데 낯선 우리 집에서야 얼마나 더 짖어대고 이리저리 날 뛸까?' 괜한 대답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랴. 곧이어 강아지 주인이 강아지를 안고 나타났다. 그 강아지는 주인이 자신을 놔두고 현관을 나서자 낑낑거리며 주인을 따라나섰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주인으로부터 떨어진 그 강아지는 한 동안 현관문을 긁어대며 슬픈 듯이 낑낑거렸다.

 그러나 그후 1시간이 훨씬 넘도록 우리가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방학이라 늦잠을 자던 아이들도 강아지가 온다는 소리에 모두 잠이 깨어 온통 강아지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데 제 집에서는 만만하게 보고는 달려들고 물곤 했던 아들아이에게 그 녀석은 웬일인지 순한 양이 되어서는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두 아이들이 관심을 사기 위해 먹을 것을 주자 얌전히 받아먹고는 아들 옆에 착 붙어 앉아 있을 뿐 아니라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아이를 주인인 냥 따라다니는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1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아이들의 간청에 조금 더 지체하며 강아지와 시간을 보냈다. 결국은 그 친구의 부탁대로 동물 병원에 강아지를 맡겼지만 짧은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강아지와 정이 든 느낌이어서 아이들도 헤어지는 걸 무척 아쉬워하였다.
 
 강아지 사건을 보면서 깨달은 사실은 강아지에게도 상황 파악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홈 그라운드에서는 그렇게 버릇없고 무례하기만 했던 그 녀석이었건만 진짜 주인이 떠나고 찬밥 신세가 된 자신의 처지를 알아차리고는 꼬리를 내리고 그렇게 얕잡아 보던 아들 아이에게 달라붙어서는 고분고분하게 구는 걸 보니 한편으로는 동물이지만 사람보다도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 개구쟁이 녀석들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개척교회를 시작했을 때, 사모인 내가 예배 시간에 하는 일은 예배를 드리면서 안내와 계수는 물론 문지기 역할까지 도맡아 해야했다. 그런데 문제는 예배시간이면 자모실이 있음에도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한 성도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예배실에 들어오다 보면 여기저기서 떠들거나 울어대는 일이 생기곤 한다.

유난히 좁은 공간이다보니 설교자인 남편의 신경이 거슬리는 것은 물론이고 회중들 또한 그 소리에 뒤를 돌아다보기도 하고 신경을 쓰다 보면 자연히 예배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기다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중에는 상가 복도를 질주하듯이 달려와서 미처 손을 쓸 겨를도 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마치 자신의 집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했던 것처럼) "엄마" 하고는 큰소리로 부르면서 자신의 부모가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버리는 일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문지기로서 늘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황당할 수밖에! 그리고 나서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으면 좋으련만 어떤 아이들은 예배 분위기에는 아랑곳없이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통에 나의 신경은 온통 그쪽으로만 쏠리게 된다. 혹시라도 오늘 처음 우리 교회를 방문한 성도가 예배 분위기가 엉망이라며 시험이라도 들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에서 그 아이에게도 조용히 다가가서 조용히 하라고 손을 입에 대보지만 그것 역시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개척교회를 시작한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예배시간이면 나의 신경은 아이들에게 쏠리는 경우가 많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예배 자리에 나는 개척교회 사모인 탓에 참된 예배자로 서기보다는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들에 신경을 쓰다가 마치는 경우들이 많다.

 제 집에서는 천방지축이던 강아지도 분위기 파악을 하는 것 보면서 아이들에게도 분위기 파악하는 눈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