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희/ 고양 홍익교회 사모

지난 어린이날 할인 매장에 들렀던 남편이 공짜로 나눠줘서 가져왔다면서 비닐 봉지에서 병아리 한 쌍을 꺼내 놓았다. 순간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금방 죽어 버릴 텐데, 무엇 하러 가져왔어요?" 하며 잔소리를 했다. 그러나 남편은 나의 잔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병아리 집을 찾으러 베란다로 향했다.

 그후 한 달이 가까워 오도록 금방 죽어버릴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두 마리의 병아리는 쌩쌩하게 살아 있다. 얼마나 열심히 먹어대는지 아침저녁으로 배추와 상추 등을 잘게 썰어 주고 물을 떠다 주느라 일이 하나 더 늘어버렸다.

 솔직히 주택이 아닌 아파트에서 무엇을 기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도 남편은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 필요하다면서 다람쥐를 사오기도 하고 개울이나 바닷가에 가면 어김없이 개구리 알이며 미꾸라지, 꽃게 등을 어린아이처럼 잡아오는 걸 즐긴다.

 처음엔 아이들도 좋아하고 관심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시들해지고 결국은 내게 돌보아야 하는 군식구만 하나 더 안겨 준 셈이 되고 만다. 그런 까닭에 다른 식구들은 몰라도 내게는 결코 반갑지 않은 손님들인 셈이다.

 몇 년 전엔 냄새가 유난히 심한 다람쥐 때문에 고생한 일이 있다. 얼핏 보면 귀여운 것처럼 보이지만 키워 보니 영 아니었다. 다람쥐는 설치류로서 일단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집 청소라도 한 번 해 줄라치면 자신의 체취를 잃어버린 데서 오는 불안감 때문인지 그 날카로운 이빨로 달려들기까지 하니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후 한 녀석이 죽자 홀로 남은 다람쥐를 위해서도 산에다 놓아주자고 남편을 설득한 끝에 겨우 다람쥐에게서 놓여졌다.

지금은 그 다람쥐 대신 햄스터 한 마리가 2년 넘게 우리와 함께 살고 있고 (한 집사님 가정에서 분양해 주었는데 한 마리는 지난 겨울에 죽고 홀로 남았다) 오 년이 넘은 비단 잉어 두 마리와 어린이날에 새 식구가 된 병아리까지 합치면 다섯 마리의 군식구가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사실 애완견을 키우는 가정을 보면 아기 하나 키우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듣는다. 애완견을 통해 정서적인 만족감을 누릴 수 있겠지만 그만큼의 돌봄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나의 경우 그것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분주하게 지내다 보면 집들을 수시로 청소해 주지 못해서 냄새가 나기도 하고 먹이를 제때제때 챙겨 주지 못해서 굶어 죽이는 경우도 있다. 특히 소리가 없는 금붕어나 햄스터 등은 무심히 지나치기가 쉽다. 그래도 이제껏 살아 남은 걸 보면 용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병아리를 키우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이 녀석들은 배가 고프면 잠시도 쉬지 않고 삐약거린다는 점이다. 베란다에 빨래라도 널려고 나가면 어느새 알아보고 사람 있는 쪽으로 달려들며 정신없이 삐약거린다. 그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먹을 것을 꼬박꼬박 챙겨 줘야 한다.

 어느새 그 노랑 병아리들은 아기 티를 벗고 날개짓을 해댄다. 제법 자란 그 모습이 기특하기만 하다. 두 마리의 병아리를 보노라면 꼭 우리 집 아이들을 보는 듯하다. 먹을 것을 주면 어찌 된 셈인지 많은 먹이를 놔두고 한 녀석이 물고 있는 배춧잎을 뺏으려고 쫓아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재미있는 장면은 물 한 모금을 부리로 찍고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드는 모습이다. 마치 물 한 모금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모습처럼.

 지난 가을 평소에 존경하던 K목사님께서 대장암으로 소천하셨다. 그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전 병 문안을 간 일이 있는데 그분께서 대수술을 받으시고 20일이 넘도록 중환자실에서 물 한 모금도 드시지 못하고 계시다가 21일째 처음으로 물 한 모금을 드셨는데 그 물 한 모
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는 말씀을 들었다.

 이제 조금 더 자라면 병아리들에게도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할텐데 어디로 이사를 보내야 할까?

'내 모습도 주님 앞에서
병아리처럼 삐약거리게 하소서.
비록 형제의 손에 들린 떡이 커 보여
그걸 뺏으려 하는 어리석음을 범할지라도
물 한 모금 마시고도 하늘 향해
감사기도 아뢸 줄 아는
날마다
물 한 모금의 감사로 살게 하소서'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