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희 / 고양 홍익교회 사모

아침 시간이면 으레히 신문을 뒤적거리는 일이 하루 일과 중에 하나이다. 시간에 쫓기는 경우에는 대충, 건성으로 넘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꽤 열심히 신문을 열독하는 편이다.

 지난 월요일 아침에도 평소처럼 신문을 넘기다가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신문을 급히 되넘기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은 다름 아닌 20억원 상당의 복권 당첨 번호가 실리는 날이었다. 그 동안은 어느 면에 실리는지 전혀 관심 밖이었지만 그 날만은 분명 달랐다.

 2주일 전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전철역에 들렀다가 우연히 주택복권을 파는 곳에서 눈에 뜨인 <20억원 짜리 복권>이란 글자를 보고는 호기심과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안고 연식 복권 다섯 장을 만원 주고 샀다. 물론 그 동안 사은권 추첨이나 가벼운 생활용품을 나눠주던 행운의 추첨 시간에도 경품이나 당첨에는 통 재주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하는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복권을 사는 사람들의 심리를 요번 며칠의 경험을 통해 충실히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복권을 산 사람들은 마치 그것을 갖고 있는 동안은 그 복권 당첨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게 된다는 사실이다. 나 자신 역시 '자기 신화'에 빠지게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속으로 타협 아닌 타협을 하고, 기도 아닌 기도를 드렸다.

 '주님, 아시지요.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정말 물질이 필요합니다. 선한 곳에 사용하겠습니다. 이번 한번만 크게 밀어 주시면 안 될까요?'

 나의 복권 당첨을 통해 주님이 영광 받으실 수 있는 당위성을 헤아려 보기로 하였다. 만약 나에게 20억원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꿈을 꾸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실 내게 그 돈은 너무 큰돈인 것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한껏 기대를 부풀리며, 그 동안 숫자를 계산해 보며 고개를 저었던 일들도 마음속으로 그려보며 즐거워하였다.

 여유 돈이 생기면 내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혼자 바람처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운 생각이 들었던지. 만약 이번 기회에 내게 20억원의 행운이 주어진다면 맘껏 여행을 해 볼 수 있겠지! 그 일은 정말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 일이었다. 또한 교회 건축을 앞두고 재정적인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남편에게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복권 당첨은 이루어져야 했다.

 나는 제일 먼저 영순위로 해야 할 일부터 차례대로 순위를 정하며 돈의 사용처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맨 나중에는 나의 희망 사항인 여행 경비도 포함시키는 걸 잊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내게 20억원이라는 돈은 너무 크게 느껴지는 건 확실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신문을 펼치고 그 동안 책갈피에 끼워둔 그 희망 덩어리를 꺼내 놓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처음 숫자를 헤아려 보았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처음부터 숫자는 길을 달리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20억원의 꿈은 접었지만 남은 부스러기라도 줍겠다는 심정으로 마지막 숫자까지 훑어 내려갔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 모든 숫자 사이를 요리조리 비켜가며 맨 끝자리까지 단 한 숫자도 일치하는 것이 없었다. 한마디로 '꽝'이었다.

 그야말로 한 주 동안의 찬란한 꿈이 여지없이 깨지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 그 복권은 한낱 쓸모 없는 위조지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젠 그것으로 사탕하나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때서야 본전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바로 도박꾼의 심리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주님은 내게 일확천금의 요행수를 안겨 주시지 않았다.

그 일로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 주간 행복해지기 위해 복권을 사는 일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누군가는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한 달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이번 주일 참회의 기도 시간에는 주님보다 복권을 더 의지하며 살았던 지난 한 주 동안 나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여야 하리라.

 '그래도 주님, 때가 되면 내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파지도 아니한 우물과 심지도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실 거죠.'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