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희/ 고양 홍익교회 사모

단칸방 시절엔,

'방 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방 하나는 서재로 꾸미고, 손님이 오셔도 묵을 방이 있으   니......'

 그 바람대로 지하이긴 해도 방 두 칸짜리 연립을 전세로 얻어서 이사하게 되었을 때에는 너무 기뻐서 잠이 오질 않았다. 부엌 겸 거실까지 있어서 일부러 이리 뒹굴 저리 뒹굴어 보면서 집이 이렇게 넓다고 좋아하였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그 집에 길이 들어 버렸는지 첫날의 그 감격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곳에서 얼마를 살다보니 이번엔 슬그머니 지상에 창문이 달린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면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집에서 비가 오는 것도 감상하고 바람 부는 날엔 떨어지는 낙엽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속으로 그런 마음만 먹고 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사방이 창문으로 둘러쳐질 만큼 창문이 많이 달린 집으로 이사를 하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했던지.

 그런데 그 집으로 이사하고 보니 이층 양옥이었던 그곳은 수도관이 작아서 늘 물이 시원찮게 나오는 것이다. 종일토록 졸졸 나오는 수돗물 때문에 세탁기가 그만 고장이 나고 말았다. 그 집에서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라 늘 빨랫감이 쌓여서 세탁할 때마다 애를 먹곤 하였다. 세탁기를 고쳐 놓으면 얼마 안 가 또 고장이 나버렸다. 그래서 밤새 욕조에 가득 물을 받아 둔 뒤에 직접 손빨래를 할 때가 많았다.

 창문이 많은 것은 좋은데 이번엔 수도가 말썽이었다.

 그 집에서 1년을 다 못 살고 다시 남편의 사역지를 따라 또 한 번의 이사를 해야 했다. 그곳은 평수도 작고, 창문도 많이 달리진 않았지만 대신 물은 콸콸 잘도 나왔다.

 이곳저곳을 이사하는 동안 어느새 남편과 나의 주민등록증 주소란은 이미 수년 전에 꽉 차 버리고 말았다. 결혼 13년째인 지금 8번의 이사를 했고 올 6월이면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이 매매가 되면서 또 이사를 해야 한다.

 목회자는 이삿짐 싸는 걸 잘해야 한다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들은 듯한데 우리는 그 점에서 누구보다 이사 가는 일에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중학교 시절 서울로 유학을 온 뒤로 결혼하기 전까지 열 번이 훨씬 넘는 이사 경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이사였지만) 그래서 농담으로 앞으로 얼마나 이사할 일이 많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사하는 연습을 시키실까 했는데 그것은 쓸데없는 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솔직히 신혼 초부터 지금까지 '집 없는 설움'이란 걸 많이 겪어 보았다. 아직까지 교회로부터 사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사 때마다 사택 전세금을 해결하느라 전전긍긍했던 기억도 많다.

 갑작스런 전세금 인상으로 돈을 마련할 길이 없던 신학생이었던 남편은 주인의 마음에 호소하는 장문의 편지를 써보기도 하였지만 주인의 대답은 냉담하기만 하였다. 늘 적은 전세금을 들고 마음에 맞는 집을 고르기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일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맘으로 여러 군데 부동산을 들른 끝에 그나마 조건을 어느 정도 만족시킬 집을 찾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하였다.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큰 아이는 목사 아빠를 둔 덕분에 세 곳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학교를 옮기다 보니 친구들을 잘 사귀지도 못하고 자신감이 없는 성격인 탓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가끔은 아이들이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한 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언젠가 한 번은 모델 하우스라는 곳엘 가 본 일이 있었다. 견물생심이라고 새로 단장된 모델 하우스의 내부는 얼마나 좋아 보이던지, 적은 평수에서 대형평수까지, 기본형에서 옵션형까지 모두 둘러보았을 때, 우리 부부에게는 <화중지병>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고 군침을 삼키다가 돌아온 일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이 여러 가지 우리를 살만한 곳으로 인도하셨다는 점이다. 우리 주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탄식하셨건만 주의 백성된 우리들은 비록 우리 소유의 장막은 없을지라도 처음 시작과는 달리 보다 더 좋은 거처를 우리 가정에 그때그때 예비해 두셨음에 감사를 드린다. 또한 집 없는 설움을 겪어 봄으로 성도 가운데 전세 시즌만 되면 속앓이를 하는 성도들의 고통에도 함께 동참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올해는 더욱이 전세값의 급등으로 집 없는 성도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헤아리니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감사한 일은 이사하는 일을 통해 우리가 사는 이곳이 영원한 곳이 아니며 결국은 나그네처럼 이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니 감사한 일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