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희/ 고양 홍익교회 사모

 우리 집에는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와 2학년인 아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목사 아빠를 둔 덕분에 보이지 않는 큰 백그라운드가 있는 반면 실제로는 이런저런 손해를 보는 일이 많다.

 우리 부부는 대체로 아이들에게 엄격한 편이어서 아무 데서나 떼를 쓴다던가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을 그냥 넘기질 않았다. 어쩌면 아이들을 정말 생각해서라기보다는 혹시 아이들로 인해 우리 부부에게 화살이 미칠까봐 더욱 염려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교회의 어른들을 보면 그냥 쳐다만 보고 인사를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늘 교회에 가기 전에 아이에게 다짐을 하는 말이 있었다.

 "다혜야, 교회에 가면 꼭 어른들께 인사하는 거 잊지마!"

 그러나 아이는 어찌된 일인지 옆에서 조그만 소리로, "인사해야지"라고 속삭일 때까지 스스로 인사할 줄을 몰랐다. 그런 일이 있는 날은 반드시 꾸중을 듣곤 했다. 심하면 벌까지 세우면서 인사하는 버릇을 들이려고 애를 썼다.

 부교역자 시절 한 부목사님 댁 자녀들 중에 유난히 산만스럽고 장난이 심한 아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목사님 부부는 그 아이들을 자유롭게 내버려두셨다.

 아이들 편에서 보면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교회생활에 제약을 받으면서 자라왔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부모들이 자식에게 쩔쩔매는 시대에 우리 아이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작은아이가 다섯 살 때 개척교회를 시작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할 때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방치한 일이 많았다. 아직도 그런 가운데 있지만….

 둘째 아이는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남자아이인데도 아직까지 두발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아빠나 엄마가 시간을 내어 자전거를 타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늘 시간에 쫓겨 벼르기만 하지 좀처럼 실천을 못하고 있다. 그것을 일찍 터득해 버린 탓인지 우리집 아이들은 요구사항이 거의 없다. 굳이 떼를 쓰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면서 부모로서 늘 제대로 아이들에게 해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한가한 주말이 목회자들에게는 가장 예민하고 바쁜 시간이기 때문에 아빠가 집에서 설교를 준비하시는 날이면 집에 있는 식구들은 덩달아 긴장을 하고 혹시라도 아빠의 신경을 거스를세라 눈치를 보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주말의 가족 나들이나 가족과의 오붓한 시간은 거의 가져보지 못하고 아이들을 위한 시간도 제대로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다. 아빠가 쉬시는 월요일에는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오거나 학원을 가게 된다. 결국 엄마 아빠의 싸이클과 아이들의 싸이클이 서로 어긋나게 돌아가고, 간혹 집에서 쉬는 시간에도 따로국밥 신세가 되고 만다.

 저녁 시간까지 예배며 심방, 교회 행사나 모임들이 이어지다 보면 덩그러니 깊은 밤 두 아이만 집을 지키는 날이 허다하다. 저녁 심방 약속이 잡혀 있는 날에는 아이들의 저녁은 대충 때우게 하고 정작 우리 부부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대할 때 솔직히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또 한 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목회자 자녀들은 교회 일에 더욱 충성스런 부모님을 가질수록 늦은 밤까지 무서움과 싸우기도 하고 혼자 무료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세상의 부모들은 자식 교육에 열을 올리고 온갖 정보를 동원하여 오직 자식 잘 되기를 빌며 떠받드는 마당에 목회자 자녀들은 많은 경우 주의 은혜만을 의지하며 방치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요즘 같은 시절에도 주변에서 개척교회를 하시는 목사님의 자녀들은 절대적인 빈곤 속에 놓여있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학교에 급식비를 낼 형편이 못 되어 급식비 보조를 받는 목회자 자녀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아이들에겐 아빠가 목사라는 사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그런 가운데서도 목회자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점에서 모범적이기를 기대한다. 목회의 짐도 무겁겠지만 목회자 자녀와 사모의 짐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은 것임을 깨닫는다.

 나는 분명 사모로서의 소명감도 있지만 내 자녀들을 향한 엄마로서의 소명 또한 결코 놓치고 싶지 않다. 제대로 아이들과 함께 있어 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자랐을 때 목회자 자녀였음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자녀들로 키우고 싶은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목회에는 성공했지만 자식 농사는 망쳤다는 이야기들을 주변에서 더러 들을 때가 있다. 때로는 목회자 자녀로서 교회에 강한 반발을 갖거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이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을 충족시켜주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더 큰 은혜가 아이들의 삶속에 넘쳐나며 목회자 가정들을 회복시켜 달라고 또다시 기도하게 된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