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목회·신학 | 최삼경 목사의 사랑론
       
온전한 사랑1
2001년 03월 01일 (목)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현대는 사랑의 말은 많아도 사랑의 행위가 적고, 사랑의 행위가 있어도 참 사랑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온 세상에 사랑의 노래 소리가 가득 차 있지만 정작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는 그보다 더 크다. 우리의 가슴은 사랑의 용광로가 되고, 우리 가정은 사랑의 학습장이 되고, 우리 교회는 사랑의 동산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사랑 잃은 가정에 사랑의 봄바람이 불고, 사랑 잃은 부부가 다시 땀나는 손을 잡고, 불효 자식들이 부모 앞에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남남처럼 지내는 형제가 다시 한 상에 앉고, 미워하던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순교하기까지 교회를 사랑하고, 그리고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을 그런 길은 없는 것일까?

 사랑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 하나는 온전성이다. 사랑이란 온전하기를 원하는 본성적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사랑한다고 하면서 온전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변질된 사랑이요 분명 거짓된 사랑임에 틀림이 없다. 무엇이든지 그것을 목적으로 하면 그것을 종교 내지는 종교적 단계로 끌어올리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예술이 영원하다'고 말할 때 바로 예술을 종교적 단계로 본다는 말이다.

진정한 '영원'이란 종교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녀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을 말하며 '끝없는 사랑', '무한한 사랑', '완전한 사랑', 또는 '영원한 사랑'이란 말을 많이 한다.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한다", "영원히 사랑하느냐?", "영원히 사랑할 것이냐?"고 묻고 그렇게 대답한다. 바로 사랑의 온전성 내지는 영원성을 말한다. 정작 영원을 믿고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남녀의 사랑에서 '영원히'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데, 오히려 영원을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영원히'란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사랑이 영원한 것인지 생각도 못해본 체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이나 희곡을 보면 마지막을 죽음으로 끝낸다는 것이다. <로미오와 쥴리엣>도, <러브 스토리>도 죽음으로 끝을 맺게 했다. 왜 그랬을까? 주인공을 죽여서라도 사랑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야 사랑이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결혼이란 현실 속에서 온전한 사랑을 이어갈 길이 없는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기저귀도 있고, 설거지도 있고, 질병도 있고, 늙음도 있다. 주인공을 죽여야 아름다운 사랑이 되고 그렇게 기억 속에 남길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남녀가 결혼을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한번 결혼하면 바꿀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양복처럼 쉽게 갈아입을 수 있는 것이 결혼이라면 그렇게 고민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우정의 경우도 그렇다. 어렸을 때에 친한 친구들과 영원히 변치 말자고 편지를 주고받은 일이 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친했다고 중학교 때까지 이어지는 친구가 별로 없으며, 중학교 때 친구가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런데도 초등학교 때는 초등학교대로, 중학교 때는 중학교대로, 고등학교 때는 고등학교대로 '영원한 우정'을 말한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도 고생만 하다가 죽은 부모 앞에서 "좋은 곳에서 영원히 쉬십시오", "천국에서 편히 쉬십시오"라고 말한다.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의 모든 사랑에는 영원성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랑이 순수하면 순수할 수록, 소중하면 소중할 수록 더욱 그렇다. 이처럼 온전하지 못한 인간들이 온전한 사랑을 말하고 온전한 사랑을 노래하며 온전한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왜 그런가? 사랑은 그것 자체가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사랑이 온전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비록 너와 내가 하는 사랑이지만 너와 나만으로서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나도 온전하지 못하고 사랑을 받는 너도 온전하지 못한데 어떻게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랑에는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랑이라도 영원한 사랑이기를 원한다면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뒷받침 될 때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결혼은 너와 내가 하는 것이지만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 진정한 애정도, 진정한 우정도, 진정한 효도도, 진정한 애국도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만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성도들은 행복한 부부가 되어야 하며, 다 부모에게 효자이어야 하며, 마찬가지로 애국자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는 참 사랑의 모형이요, 사랑의 근원이요, 사랑의 근본인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3월호)

최삼경 목사의 다른기사 보기  
<교회와신앙>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607301-01-412365 (예금주 교회와신앙)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목회자 설교 준비 모임, ‘프로
‘여자 아빠, 남자 엄마’...
목사 은퇴금, 신임 목사 권리금으
목회자 성범죄 매주 1건 발생 ‘
‘기독사학’ 생존과 발전 방안은.
목표의 재설정이 필요한 교회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현장을 가다(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 교회와신앙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이용약관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