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목회·신학 | 최삼경 목사의 사랑론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는 것 Ⅰ
2000년 10월 01일 (일)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사랑의 속성 중 하나는 인내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다. 참아야 하고 또 견뎌야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 '모든 것'이란 말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는 것'에 한하여 넣었을까? 그만큼 이 네 가지가 사랑에서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사랑은 분명히 대상이 인간이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사랑의 뿌리가 하나님이란 사실이다. 사랑의 대상이 인간이라고 해서 인간의 능력과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사랑의 대상이 인간이지만 그 사랑의 지혜와 힘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만 가능하다. 그것은 태양 빛이 없이는 달빛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땅의 모든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실습장이요, 거울이요, 모형이다.

  사랑하려고 노력해본 사람이라면 이 점을 알고 고백해야 한다. 오히려 사랑을 모르고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하여 큰 소리를 치는 경우가 많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자신을 사랑의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랑을 해보려고 노력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5장 43절에서 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기를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고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된다고 하였다. 이 말은 우리에게 사실 큰 부담을 준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미운 사람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미워하는 사람이 없을 수 있어도 미워할 사람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려고 해본 일이 있다면 우리 노력과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용서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미움이 사무치는 것을 경험한다. 차라리 잊고 피하라고 하면 가능할 것 같은데 미움을 직시하면서 용서하라고 하면 더 미움의 함정에 깊이 빠져 들어간다. 결국 길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밖에 없다. 진정한 사랑, 절대적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은 우리에게는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먼저, 사랑에서 인내가 차지하는 위치부터 알아야 한다.
  사랑에서 인내란 거의 절대적인 것이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즉 사랑장에서는 인내를 세 번이나 반복하였다. 믿음과 소망은 두 번 반복되었다. 그러나 인내 말고 다른 어떤 것도 세 번 반복하여 말한 적이 없다. 4절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말이 나왔고 더욱이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그만큼 사랑에서 인내가 소중하다는 것이다. 아니 인내는 사랑에 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에서 중요하고 나아가 삶 자체에서 소중한 것이다. 성도가 인내 없이는 기독교의 아무런 덕을 이룰 수가 없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다. 인내는 삶과 신앙의 필수과목이다. 이것을 배우고 실천하지 못하면 인생도 사랑도 낙제생이 되고 만다.

  일본 춘추전국 시대에 천하를 주름잡던 세 사람이 있었는데 '오다노부나가'와, '도요도미히데요시'와, '도구가와이에야쓰'이다. 그런데 이들이 앵무새를 두고 한 말이 있다. '오다노부나가'는 앵무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했고, '도구가와이에야쓰'는 앵무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려 보겠다고 했고, '도요도미히데요시'는 앵무새가 울지 않거든 울려보자고 했다는 것이다. 이들 세 사람이 다 천하를 다스린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도구가와이에야쓰'만이 태평천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서도 인내하는 사람이 최고의 사람이란 말이다.

  기독교 최고의 덕 중에 하나는 인내이다. 하나님은 인내심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지 않으시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모든 일은 인내의 사랑이 아니면 이루어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인내하지 못하는 이유를 자신의 성격 때문이라고 한다. 아니다. 베드로를 보라. 분명히 그는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인내를 아는 사도가 되었다. 베드로후서 1장 5절에서 7절에서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하였다. 8가지 덕을 열거하였는데 인내가 다섯 번째로 나왔다. 비교적 상위의 덕이다.

  하나 더 예를 들어보자. 요한은 얼마나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으면 별명이 '우뢰의 아들'이었다. 베드로도 그런 별명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요한이 깨달은 인내의 진리는 얼마나 큰지 모른다.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보이는 말세의 성도는 모두 인내와 관계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 인내에 대하여 칭찬을 들었던 교회는 3교회였다. 에베소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였다. 에베소 교회에 말하기를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치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계 2:2)라고 하였다.

또한 두아디라 교회에서도 "내가 네게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 2:19)고 하였고, 그리고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하여는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 3:10)고 하였다.

두 짐승 환상에서는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 13:10)라고 하였고 끝으로 보좌 앞에 서 있는 성도들을 가리켜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라고 하였다. 이처럼 성도에게 인내는 중요한 것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10월호)

최삼경 목사의 다른기사 보기  
<교회와신앙>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607301-01-412365 (예금주 교회와신앙)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한기총, 경매 처분 위기 어쩌다.
신천지 10만 집회, 이태원·코로
“목회자 설교 준비 모임, ‘프로
“캠퍼스와 군 선교는 하나입니다”
목회자 건강, 일반 국민 대비 낮
‘기독사학’ 생존과 발전 방안은.
통합 107회기 총예산, 약 41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 교회와신앙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이용약관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