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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를 기뻐해서는 안되는 사랑
2000년 03월 01일 (수)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교회에 대한 주님의 명령이 세상 속에 교회를 심으라는 것이라면 세상에 대한 사탄의 명령은 교회 속에 세상을 심으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상 속에 교회도 많이 심어진 것을 보지만 반대로 교회 속에도 세상이 많이 심어진 것을 본다. 그런 점에서 교회 깊은 곳까지 세상의 추한 죄가 많이 나타난다. 예컨대 고린도 교회에는 파당과 싸움과 간음죄가 많았다.

  이렇게 죄는 날로 늘어나는데도 현대 교회는 그 죄를 묻고 치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무엇 때문인가? 소위 덕이란 이름으로, 사랑이란 이름으로 공의를 실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현대 교회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공의를 무너뜨리고, 또한 공의란 이름으로 사랑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말해야 할 때 공의를 말고 공의를 말해야 할 때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공의는 서로 반대 개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상식적으로 쉽게 보면 사랑을 강조하면 공의는 약해지고, 공의를 강조하면 사랑이 약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니다. 사랑이 많아서 공의가 약해지거나 무너지고, 공의가 많아서 사랑이 약해지거나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이다. 공의가 없다면 사랑이 없기 때문이, 사랑이 없다면 공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커질수록 공의도 커지고 공의가 커질수록 사랑도 커지며, 사랑이 작아질수록 공의도 작아지고 공의가 작아질수록 역시 사랑도 작아진다.

  사랑으로 하면 어떤 죄를 지어도 정죄하거나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도둑놈을 잡았어도 이 세상에는 그보다 더 큰 도둑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고, 또 우리 모두 다 도둑질의 본질인 탐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 도둑들이다. 간음죄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는 도둑질만큼이나 많은 죄가 간음죄다. 간음죄의 본질인 음욕으로 하면 간음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렇게 본다면 아무도 죄를 정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죄를 짓고 난 후에 치리를 하려 하면 주님이 간음죄를 짓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위하여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셨던 말씀을 이용하여 자기를 방어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이용하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참 사랑에는 불의가 함께 있을 수 없다. 참 사랑은 오히려 의를 이루고 참 사랑은 그의 위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의가 없는 사랑은 절대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의를 거슬리는 것은 사랑이 많아서가 아니라 사랑이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사랑 자체가 타락한 것이다.

우리는 사랑 자체가 타락했다는 것을 모르면 참 사랑을 알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 원래의 사랑의 시작은 조건 없는 아가페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우리 타락한 인간은 조건 없는 행위가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조건이 있는 사랑을 말해야 감동도 받고 이해도 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조건 없는 사랑을 말하면 그나마 하던 사랑마저 포기해 버리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조건 없는 사랑마저도 조건적인 사랑으로 설명해야 이해가 될 만큼 인간의 사랑은 계산된 사랑이요 이기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대부분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하여 너를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말로는 불의를 기뻐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말로는 불의를 미워한다고 한다. 말로는 불의에 대하여 분노도 한다. 그러나 행동 속에서 불의를 슬퍼하고 아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역사를 돌아보면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이 반민족적이요 반도덕적인 사건에 개입한 경우가 많다. 5.18 사건이나 12.12 사건 같은 일에 개입하고 심지어 고문 사건에 개입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믿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불의를 기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용기가 없어서 어쩌다 불의와 싸우지는 못했고 불의한 역사에 가담했다고 하더라도 잘못이지만, 그러나 그 불의한 일에 개입하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많은 이익을 누리고 살면서 그것을 복이라고 기뻐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교계 지도자들 중에 불의하게 태어난 정권을 지지해 주고 그들을 위해 조찬기도회까지 열어 독재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행위도 회개해야 할 일이다.

  불의한 정권이나 불의한 제도가 악한 것임을 알면서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것들을 계속 지속시키는 논리적 근거가 있다면 두 가지다. 먼저는 안정이요 다른 하나는 인정이다. 독재자들은 항상 경제적인 안정을 빌미로 정권을 유지해 왔다. 전직 대통령 중에 감옥에 가야할 죄를 지었어도 어떻게 대통령을 감옥에 넣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말로는 의로운 대통령, 의로운 국회의원을 원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투표를 할 때는 당장 돈을 주는 사람이나 나를 이롭게 하는 사람을 찍는다는 점이다. 어떤 사회개혁주의자가 개혁 운동을 하여 사회에 개혁의 바람이 불어 국가가 안정을 잃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자기 형제가 불경기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니까 적당히 개혁을 끝내고 싶어지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에는 불의가 없다. 성도는 불의한 재물을 즐길 수 없다. 성도는 도박판에서 돈을 벌 수 없고, 남의 돈을 훔쳐 내 행복을 지킬 수 없고, 뇌물을 사용할 수 없다. 성도는 남의 남편 빼앗아 행복할 수 없다. 성도는 의로운 고난을 감사하고 의로운 가난을 부로 알고 의로운 핍박을 찬송하는 사람들이다. 공자(公子)는 삶과 의(義)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삶을 포기하고 의를 선택하라고 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로운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고 했다. 시편의 한 저자는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시 119:164)라고 하였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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