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목회·신학 | 최삼경 목사의 사랑론
       
성낼 수 없는 사랑
1999년 12월 01일 (수)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왜 사랑은 화를 낼 수 없으며 화를 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먼저 화란 겉으로는 의분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 동기와 목적이 대부분 이기적인 데 있다. 대부분 자기 이익을 위해서 화를 낸다. 내 명예에 피해가 있다고 생각할 때, 내가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할 때, 특히 내 자존심이 상했을 때 거의 다 화를 낸다. 주님은 이런 이기적 분노를 금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분노심이 많을수록 반대로 거룩한 분노는 없다.

아벨에 대한 가인의 분노가 대표적인 실예다(창 4:6). 가인이 아벨에게 분노해야 할 이유나 권리가 하나도 없다. 아벨이 가인으로 바른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한 것도 아니오, 더욱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와 비교하여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도 아니다. 전적으로 가인의 잘못이었다. 그런데도 바른 제사를 드린 것 외에 아무 죄도 없는 동생에게 분노하고 그 분노심은 결국 살인죄까지 범하게 하였다. 예수님은 의에 대하여 분노하신 일은 있지만 자신을 위해서 분노하신 일이 없다. 예수님은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셨다(벧전 2:23).

  다음으로 상대방을 저주하는 끈질긴 분노도 반드시 금해야 한다. 인간이란 한 번 복수심에 사로잡히면 그가 죽을 때까지 그 복수심을 버리지 못한다. 내가 복수하지 못하면 자식 손자에게 유언을 하여 원한을 대물림해서라도 복수하기를 원한다. 나 버리고 간 남자를 미워하며 일평생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누가 그 여인에게 사랑을 강요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그 여인의 가슴에서 미움마저 제해 버리면 삶 자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땅히 미워할 자격이 있다고 해도 그 미움의 결과는 미움을 받는 자도 하는 자도 모두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분노는 사실 상대방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전제된 분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하신 것이다.

  다음으로 교만과 불신앙에 의한 분노도 있어서는 안 된다. 분노가 가장 나쁜 것은 그 바닥에는 교만과 불신앙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다혈질적인 사람은 비교적 화를 잘 내는데 물론 이것도 성령의 도움으로 고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교만의 분노와 불신앙의 분노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런 분노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분노는 바로 교만과 불신앙의 분노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가장 나쁜 분노는 위의 네 가지가 합해진 분노라고 생각한다. 즉 불신앙과 이기심과 악의와 교만이 합해진 분노가 그것이다. 이런 분노는 수소 폭탄보다 무서운 것이다. 바울은 권고하기를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골3:8)고 하였다.

  그렇다면, 왜 화를 내는 것이 사랑의 법칙에 어긋날까?
  첫째, 화는 비교적 어리석은 동기에서 내게 되어 있고 따라서 그 결과도 어리석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사람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정확한 판단에 의해서 내기보다 감정이 앞설 때 내는 경우가 많고, 또는 화를 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가능성보다 화를 내서 문제가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지혜로운 사람보다 미련한 사람이 더 화를 잘 낸다.

화를 내면 그 결과가 유익하지 못하다. 그것은 우리 인간은 성경이 요구하는 분노보다 성경이 금하는 분노를 더 많이 내고 살기 때문이다. 대부분 멀리보고 화를 내기보다는 한 순간의 자존심과 한 순간의 자존심 때문에 화를 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화를 내고 나면 후회가 뒤따른다. 비록 내가 옳았을지라도 화를 내면 그것으로 나의 의도 희석되고 또 내가 오히려 옳지 못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논쟁을 할 때에 옳아도 화를 먼저 내면 형식적으로 진 것처럼 되고 만다. 특히 화를 내어도 하나님의 의를 전혀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야고보는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1:20)고 하였다. 그러니 화를 내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요, 그 결과 더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화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한다. 첫째는 화를 내는 당사자 자신에게 해롭다. 분노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을 보면 첫째 건강하지 못하다. 울화가 치민다고 하는데 울화병이란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는 화의 대상이 되는 사람도 해롭다. 미움은 미움을 일으키듯이 화는 화를 불러온다. 그리고 나아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에까지 그 화가 미치게 된다. 화란 원자 폭탄이나 수소 폭탄 같아서 이를 터트리면 주변에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준다.

  셋째, 자기 인격의 손해를 많이 본다. 화를 참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인격의 훈련과 수양이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다. 화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최고의 인격을 쌓은 사람이다. 잠언 16장 32절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다.

 넷째, 화는 내면 사랑을 잃게 하기 때문에 화를 내서는 안 된다. 화를 내는 것은 긍휼을 잃었을 때 내게 됨으로 사랑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신혼의 꿈에 사로 잡혀 살다가 처음 싸우는 경우는 대부분 화를 내지 않아야 할 때 화를 냈을 때이다. 그런데 화를 내면 상대는 애정이 변했다고 느낀다. 에베소서에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라고 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긍휼 있는 사랑임을 말하고 있다.

 방울뱀을 화나게 만들면 자기를 물어뜯는다고 한다. 개를 때려서 화나게 만들고 그 독을 빼서 다른 개에게 넣으면 100여 마리를 죽일 수 있는 독이 나온다고 한다. 인간에게서도 화난 사람의 피를 빼서 독사에게 넣으면 독사가 바로 죽는다고 한다. 화가 났을 때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지 말라고 한다. 그런 상태에서 젖을 먹이면 아이에게 해롭다고 한다. 이처럼 화는 사랑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랑 실천하시기 바란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12월호)

최삼경 목사의 다른기사 보기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김삼환 목사, “지철이가 철이 없
<크투>와 황규학이 제기한 광성교
페루 지부, “이재록 신뢰하지 않
“신천지, 안상홍, JMS 등 교
명성교회 세습철회를 위한 향후 대
제104회 총회 결의의 목회적 의
텍사스 주지사 "하반신 마비로 하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한국교회문화사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제호 : 교회와신앙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