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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히 행하여도 될 사람이 있나?
1999년 08월 01일 (일)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자신도 모르게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는 온갖 예의를 다하여 대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는 무례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랑은 무례해서는 안 된다. 그가 누구였든지 무례하게 대한다는 말은 영혼의 가치를 모르거나 영혼의 가치를 보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행위이다.

 한 신학자가 마약과 성개방에 대하여 비판하는 강연을 하고 있었을 때에 한 마약환자가 폭언을 하며 야유를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학자와 마약환자가 복도에서 만났을 때 그 신학자는 따뜻한 말로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마약환자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야유를 보낸 사람인데 당신은 왜 나에게 그렇게 따뜻한 인사를 하십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신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이오"라고 말입니다. 사랑은, 대상이 누구든 무례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이요, 사랑의 영혼의 가치를 아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보다 많든 적든, 신분이 높든 낮든, 부자든 가난하든 다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윗사람에게는 예의 바르게 하는데 동료에게 예의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데 집에 와서는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다. 또는 반대로 종종 아래 사람에게는 비교적 너그러운데 윗사람에게는 무조건 반항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도 안 된다. 구원은 가난한 자만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오, 천한 자만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오, 고상한 자만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 받아야 할 대상인 것처럼 모든 사람이 사랑의 대상이요 그러기에 모든 사람에게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례하게 대하기 가장 쉬운 대상은 소자들이다. 특히 하급 직원이나, 아이들이나, 노동자들이나, 걸인이나, 음식점이나 다방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에게 무례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이들에게 반말로 해서는 안 된다. 필자가 언젠가 차장에게 반말을 하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회개했다. 이런 현상이 어디에서 오느냐?

소유와 인격을 혼돈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 여겨졌다. 어른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고 존댓말을 쓰는 어린 아이는, 부모가 그 아이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며 가르친 아이다. 그래서 자녀에게도 존댓말을 써야 한다. 시어머니들도 며느리를 존귀하게 대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존귀한 대접을 받는다.

성경은 윗사람에게 예의 있게 행동하기를 가르친다. 장로에게 순종하라고 했고(벧전 5:5)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라고 했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라고 했다(딤전 5:1-2). 윗사람 중에 윗사람은 부모다. 부모에게 무례히 행해서는 안 된다. 만일 부모에게 "왜 나를 낳았느냐"고 말하는 자식이 있다면 이는 불효 중에 불효다. 며느리는 사랑으로 시어머니에게 예의 있게 대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동료에게 예의 있게 행동해야 한다. 친구라고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친구를 서로 '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예의를 잃어버리기 쉬운 관계가 동료이다. 동료는 경쟁관계가 되기 쉽기 때문에 속으로는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동료를 사랑할 수 있으면 사랑이 큰 사람이다. 동료 관계는 경쟁적 요소가 더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 그래서 친한 사이에도 더 예의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동료 중에 동료는 부부다. 부부를 동반자라고 한다. 부부끼리 서로 반말로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특히 남자들이 여자에게 반말을 하는데 인격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결혼 초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무례하게 행하고 부부 싸움을 하거나 심지어 이혼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가나의 혼인집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예수님에 대하여 예의를 잃지 않고 행동했다.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는 예수님에게 "길렀더니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느냐"느니, "자식은 믿을 것이 못된다"느니, "내가 저를 어떻게 임신하여 어떻게 길렀는데‥‥"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예수님도 효도와 진리문제를 잘 구별하여 실천한 것처럼 마리아도 예수님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였다. 아름다운 모자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성경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예수님에게 한 것이라고 했고 또한 소자에게 준 냉수 한 그릇도 기억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다음으로 신앙의 유무를 떠나서 예의 있게 대해야 한다. 교회 내에서 무례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교인들이란 사실 영적으로 형제라고 믿기 때문에 더 쉽게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요소가 있다. 그러다 보니 쉽게 예의를 잃어버리고 그러다가 서로 상처를 입히고 입을 수 있다. 특히 교인들끼리 지나친 농담을 많이 하는 것은 좋지 않다. 더욱이 농담이란 남을 헐뜯고 찌르고 할 때 재미가 있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특히 외인에게도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믿음이 좋은 사람의 경우 그는 대부분 교회 안에서 인간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교회 밖에 있는 사람과는 인간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과는 대화도 안 되기 때문에 불신자를 소홀하게 하기 쉽다. 성도들이 불신자들을 목적으로 인간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수단으로 인간관계만 가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흑인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대하여 폭동을 일으킨 이유도 그랬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흑인들 속에서 돈을 벌고 흑인을 무시하고 한국인끼리만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얄밉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는 크리스천도 비슷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예의를 다하여 대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 상한 일이 너무 자주 생긴다. 그 이유는 무례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다가 마음 상하고, 관공서에 들어갔다가 마음 상하고, 운전을 하다가 경적을 울리며 인상을 쓰고 욕설을 하며, 주택가에서 새벽 두세 시까지 술 먹고 노래하고, 아무 곳이나 침 뱉고, 새벽에 전화를 잘못 걸고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잠21:24)고, "너희는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롬 12:10)고 말이다(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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