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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교만하지 않다
1999년 05월 01일 (토)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어떤 사람이 가짜 예언가 친구를 만나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내가 보니까 자네는 분명히 가짜인데 어떻게 그렇게 소문난 예언가가 되었는지 모르겠네. 내가 들어보니 천하의 높고 낮은 사람들이 자네만 만나면 다 무릎을 꿇는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사람을 속일 수 있는 비밀이 있는가?"
그러자 이 가짜 예언가가 말했다.

"아주 쉬운 일이라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누구든지 처음에 '교만하구나!' '교만하니까 병들었어!' 그렇게 하면 다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거든. 그러면 모두 내 앞에 엎드려 진다구. 모든 사람이 다 교만하거든"

인간은 누구나 교만하다는 말이요, 그리고 자기 교만은 어느 정도 느끼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교만이 있다. 지식, 가문, 물질, 직위, 얼굴 등 현재는 물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하여 심지어 미래의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까지 교만하다. 사람에게 겉으로 겸손해 보여도 속에는 교만이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고, 교만할 것이 전혀 없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조차도 교만하다. 교만하다, 교만하다 못해 교만할 거리가 없으면 겸손하다고 교만한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분명히 사랑의 존재이다. 사랑을 알아야 하고, 사랑을 말해야 하고, 사랑을 노래해야 하고,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런 점에서 사랑이 없다면 성도가 아니다. 그런데 그 사랑과 교만은 함께할 수 없다. 교만은 사랑과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과 교만은 절대로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교만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다 교만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발견할 때 겸손을 배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아시고 반드시 징계하신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나이다"(시 138:6)라고 하였고, '교만한 자의 발이 자신에게 미치지 못하게 해 달라고, 악인의 손이 자신을 쫓아 내지 못하게 해 달라고'(시 36:11) 기도 하였다.

교만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시 119:21). 훌륭한 히스기야 왕도 교만하다가 하나님께 책망을 들었고, 모압은 교만 때문에 저주를 받았으며(사 16:6) 에돔도 바로 교만 때문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 오바댜서의 주제가 모압의 교만에 대한 징계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바로를 치신 이유까지도 교만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음을(느 9:10) 알아야 한다. 천사는 얼마나 특별한 존재로 피조 되었는가? 그런데 그 천사가 다름 아닌 교만 때문에 사탄이 되지 않았는가?. 결국 교만한 자는 넘어지고 깨지고 부서지고 쫓겨나고 마지막엔 죽고 만다. 한 번 죽나 안 죽나 시험해보려면 교만해보면 알 수 있다.

왜 그렇게 교만이 나쁜 것일까?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교만한 자를 싫어하실까? 교만은 모든 죄의 시작이요, 뿌리이기 때문이요, 믿음과 사랑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온갖 죄악은 교만의 뿌리로부터 나오고 인간의 온갖 더러운 냄새는 교만의 안방에서 피어나 온 집안에 퍼져 가는 것이다. 모든 죄악의 뿌리를 찾아가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교만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교만의 대상은 누구인가?

먼저, 교만의 첫 번째 대상은 하나님이다.
대부분 우리는 누구를 교만하다고 할 때 사람을 중심해서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교만의 시작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어떤 사람이 교만하다고 할 때 하나님에게는 겸손한데 사람에게만 교만한 것이 아니다. 그의 교만의 뿌리는 하나님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기에 교만은 곳 불신앙이다. 성경은 불신자와 교만한 자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일이다. 성경은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신 8:14)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한 자의 마음에는 두 가지가 없다. 먼저 믿음이 없고,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 극단적으로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만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다. 바로 믿음이 없는 자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또한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 10:4)라고 했다.

그리고 교만한 자는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교만의 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수가 없다. 그것은 빛과 어두움이 함께 있을 수 없음과 같고 미움과 사랑이 함께 있을 수 없음과 같다. 예수님께서도 이 점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성경은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눅 10:21)라고 말한다.

이처럼 진리는 어린아이처럼 겸손한 자에게 주어진다. 교만한 자는 말씀을 배우지도 않지만 배워도 순종하지 않는다. 배우지 않으니 진리도 없고 깨달음도 없고, 진리도 깨달음도 없으니 은혜도 헌신도 능력도 없다. 배우는 성도는 하나님과 가까운 성도요 배우는 성도는 겸손한 성도이다. 성도는 이 깨달음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 말씀 보고 깨닫고, 설교 듣고 깨닫고, 기도하고 깨닫고, 성공하고도 깨닫고 실패하고도 깨닫는다. 유대인은 1학년을 현자라 하고 2학년을 철학자라 하고 졸업반인 3학년을 학생이라 한다고 한다. 이처럼 학생이 제일 높은 것이다.

다음으로, 교만의 대상은 인간이다.
먼저 하나님에 대한 교만으로 시작되지만 다음으로 그 교만은 인간에게 나타난다. 우리가 누구를 교만하다 할 때 나에게 겸손했느냐 아니냐를 따라 평가한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교만도 먼저는 마음이요 그리고 다음으로는 말이다.

제일 먼저 교만은 마음이 그 시작이다. 교만한 자는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을 높인다. 나는 너보다 낫고 너는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에서부터 교만이 시작된다. 그러기 때문에 교만한 자는 마음이 높고 눈이 높다. 그리고 그 마음의 교만이 말의 교만으로 나타난다. 성도는 눈을 높은 곳에 두어서는 안 된다. 시편의 저자는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시 131:1)라고 말하였다. 잠언에서도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잠 21:4)고 하였다. 또한 성경은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시 75:5)라고 말한다(199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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