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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넘치는 사랑에 당황스러운 우리
2005년 11월 09일 (수)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고통의 문제> 중에서
C.S.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홍성사 펴냄

사랑할 줄 아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일입니다. 최고로 좋은 대상이신 하나님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은 우리에게 최고로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구애하거나 하나님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또 우리가 하나님의 필요에 따르기에 앞서 하나님이 먼저 우리의 필요에 따르셔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 사랑을 사물의 이치에 어긋나게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들로서, 우리의 역할은 언제나 주체에 반응하는 객체, 남성에 반응하는 여성, 빛에 반응하는 거울, 소리에 반응하는 메아리의 역할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활동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반응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착각 속의 모습이 아니라 진정한 모습으로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그의 요구에 복종하며 그의 바람에 따르게 됩니다. 반대로 그가 우리의 요구에 복종하시며 우리의 바람에 따르신다는 것은 말하자면 존재의 문법을 위반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어떤 차원에서는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을 추구한다거나 하나님이 그 영혼의 사랑을 받아 주신다고 말할 수도 있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만,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그 영혼을 찾으신 결과로 나타난 하나의 양상 내지는 현상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고, 인간에게는 오직 좀더 나은 반응을 할 것인가 못한 반응을 할 것인가를 선택할 자유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사랑 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를 움직이는 것처럼, 하나님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우주를 움직인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보다 더 날카롭게 기독교와 이교적 유신론의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이와 다르게 말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이처럼 하나님께는 인간들이 이기적인 사랑이라고 부르는 사랑의 첫 번째 조건이 없습니다. 즉 그에게는 사랑하는 자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갈등을 일으킬 천성적인 필요나 열정이 없습니다. 혹 열정이나 필요 비슷하게 생각되는 것이 그 안에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뜻에 따라 우리를 위해 허용하신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는 두 번째 조건도 없습니다. 아이에게 진정으로 이로운 바와 아버지의 애정이 본능적으로 요구하는 바는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와 분리된 별개의 존재로서, 그의 본성은 자신만의 고유한 필요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오로지 아버지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완전해지는 것도 아니며 아버지가 그 본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그처럼 창조자와 분리된 존재가 아닐뿐더러 하나님이 그들을 잘못 이해시키는 일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전체 설계도 안에서 그들을 위해 정해 놓으신 자리가 곧 그들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도달할 때 비로소 그들의 본성은 완성되고 행복이 찾아옵니다. 즉 우주의 부러진 뼈가 제자리를 찾고 고뇌가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존재가 아닌 무언가가 되길 바라는 것은 사실상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듣기에는 연인의 소리가 아니라 전제군주의 소리처럼 들리는 하나님의 요구는, 실제로 우리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만 한다면 정말 가고 싶어할 곳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그 앞에 엎드려 예배하며 순종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엎드려 예배하며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무슨 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또는 밀턴의 코러스처럼 인간의 불경스러움이 “그의 영광을 감소”시킬까 봐 걱정이 됩니까? 어떤 정신병자가 병실 벽에 ‘어둠’이라고 갈겨쓴다고 해서 태양이 꺼지지 않는 것처럼, 인간이 예배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감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선을 바라시는데, 우리의 선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그를 안다면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지금 엎드리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고자 애쓰고 있는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 - 인간이 생각과 공상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근사치의 하나님일 수는 있지만 -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앞에 엎드려 경외하는 자리로만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현재 우리의 바람을 훨씬 뛰어넘는 자리. 피조물로서 신의 속성에 참여하며 신의 생명을 반사하는 자리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즉 하나님처럼 되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스스로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자 하십니다. 이번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황송할 정도로 극진한 대접에 당황하게 됩니다. 너무 조금 사랑하시는 데 당황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사랑하시는 데 당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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