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꽹과리사랑
1998년 10월 01일 (목)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현대인은 무너지고 부서져 가고 있다. 도처에서 깨어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가득 찼다. 고독으로 무너져 가고, 술과 마약으로 부서져 가고, 무정과 무관심으로 죽어가며, 그리고 재앙과 전쟁으로 깨어져 가고 있다. 물질과 지식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그 고독은 극에 달해 있고, 성숙한 시대라고 자처하지만 정신적 빈곤 또한 한계를 넘고 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부르짖고 있고, 몸부림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역시 사랑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며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증상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 원인은 하나의 병에서 기인한 것과 같다.

현대인들은 사자처럼 부르짖고 있고, 미친개처럼 광란의 춤을 추고 있다. 모두 사랑의 결핍과 빈곤이 낳은 결과들임에 틀림이 없다. 정신의학이란 "나를 사랑해 주세요"라는 한 마디 말로 요약된다고 한다. 인간은 사랑의 존재이다. 사랑하고 사랑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이 없으면 미쳐버리고 만다. 브라우닝은 "참된 삶을 사는 자는 누구나 참된 사랑을 원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현대인은 너무나 사랑의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랑을 모르고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점이 현대인의 모순 중에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을 할 줄도 모르고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른다. 사랑의 말이 있어도 진정한 사랑의 행위가 없고, 또 사랑의 행위가 있어도 진정한 사랑이 아닌 시대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다시 참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의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장 즉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배워보자. 왠지 사랑장에서 사랑을 서술하며 '사랑은 이런 것이다'라는 긍정적 서술로 시작하지 않고, '이것이 있어도 사랑이 없다면 사랑이 아니다'라는 부정적 서술로 시작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 더 강한 긍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 외에도, 사랑에 대한 오해가 사랑의 최대의 거침돌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다"를 가르치기 전에 "이것이 사랑이 아니다"부터 가르쳐야 했던 모양이다.

우선 사랑은 말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랑장의 첫 말은 무엇인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라고 말한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은 둘 다 '말'이다. 따지고 보면 사랑도 말이다. 말로 사랑을 고백한다. 말로 사랑을 듣는다. 그리고 말 하나로 사랑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랑은 말이 아니란 것이다. 말로 사랑을 했다고 참 사랑이 아니란 뜻이다.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 천사와 같이 말을 한다면 얼마나 유창하고, 설득력 있고, 특별히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 말이겠는가? 그런데 그런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요, 사랑이 없을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천사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짓된 사랑을 말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비록 천사가 하는 것 같은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구리와 꽹과리에 불과하다는 말로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분명 감언이설이 진실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이다. 유혹의 말이 진실보다 더 사치스럽고 더 호화스러우며, 아첨하는 말은 꿀보다 더 달다. 꾸며진 말에 미사어귀가 많고 더 듣기 좋다. 그러나 모두 사랑의 말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아주 귀한 진리를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이 1절에서는 '행위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고 3절에서는 '마음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방언을 언급하면서 천사의 말을 동의어적으로 사용한 것은 달콤한 천사의 말이 있어도 사랑의 행위가 없으면 무의미한 소리에 불과하고 하면서도(1절), 다음에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는 말로(3절) 마음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사랑은 말도 아니요, 그렇다고 사랑은 행위도 아니다. 사랑은 마음과 말과 행위 세 가지가 다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배를 타고 가다가 배가 전복되어 죽어 가는 사람이 있을 때 옆에서 말로 "수영을 해라" "수영을 미리 배워두지 왜 안 배웠느냐" "왜 그 배를 탔느냐" "구명 보트 곁에 있다가 그것을 타고 살아나면 될 것을 왜 멀리 있다가 그런 참변을 당했느냐"고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 소용이 없다. 옆에 있는 작은 줄 하나라도 던져주고, 아니면 들어가 건져주는 것 외에 그에게 사랑을 보여주고 사랑을 실천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사도 요한은 분명히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일서 3:18)라고 말했다. 꽹과리 치는 사랑으로 하지 말고 손과 발의 사랑으로 하자. 우리는 홍수가 날 때마다 꽹과리 치는 사랑은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라면 몇 상자 주고 사진 찍는 사랑 말이다. 그런 사랑은 하지 말자. 천사 같은 사랑의 말이 있어도 사랑의 행위가 없으면 꽹과리 소리와 같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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