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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백터
1998년 10월 01일 (목)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인간이 사랑의 존재라면 인간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사랑의 말이 참 사랑의 말일 수 있을까? 사랑을 모르고 부르는 사랑의 노래가 진정한 사랑의 노래일 수 있을까? 아니다. 진정한 사랑의 말과 노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사랑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한다. 사랑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왔다. 즉 모든 사랑의 모델이 하나님의 사랑이란 말이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심지어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말했다(요일 4:8).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아는 자의 고백일 것이다.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사랑은 하나님께 속했다'고 말하고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안다'고 말했다(7-8절). 즉 이 땅의 모든 사랑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은 나아가 더욱 사랑의 원형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확실히 해주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하였다(10-12절). 즉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형으로 그곳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요, 그 사랑만이 참 사랑이란 말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만큼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운 만큼 사랑을 가르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바로 사랑의 원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장으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살펴보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며 사랑에 대하여 변증적인 자세로 "사랑이 없으면"이란 부정적인 말로 사랑을 설명하고 있다. 즉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했고(1절), '비록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2절). 사람의 방언, 천사의 말, 예언하는 능,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아는 것,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은 그 가치를 설명하기 어려울만큼 귀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있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더 중요하다. 바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밝히 보여주는 말씀이다. 즉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3절)라고 했다.
사랑은 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랑(visible love)이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랑(invisible love)이다. 인간에게는 마음을 보는 눈이 없으면서도 마음을 보려고 한다. 이것은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눈에 보이는 사랑으로 사랑을 주고받고 살고 있으면서도 또 그것으로 마음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비록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랑의 큰 행위가 있더라도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난 진정한 사랑이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큰 사랑의 행위가 있어도 진정한 사랑이 아닐 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단지 흥정이요 거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랑의 행위 중에 제일로 큰 사랑이 있다면 무엇인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내가 소유한 모든 재산으로 구제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내 몸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는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이라고 하였다. 무슨 뜻인가? 이 세상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의 행위는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는 것'과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는 것'이다. 전 재산으로 구제하고 또 몸을 내어주었다면 더 이상 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 주었기 때문이다. 더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의 행위는 분명히 내 전 소유와 목숨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었어도 "사랑이 없으면"이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인간의 눈으로 가장 큰 사랑의 행위인 전 재산으로 구제하고 목숨까지 내어 주고도 사랑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는 말이다. 아무리 큰 사랑의 행위가 있다고 해도 사랑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랑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은 외적 행위가 아니라 내적인 것이란 뜻이다. 우리 인간은 외적으로 사랑을 확인하려고 하고 그렇게 확인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사랑의 본질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란 말이다.

그레암 그린(Graham Green)이란 사람이 쓴 <권력과 영광>에 나오는 내용이다. 한 신부가 나오는데 그는 술을 너무 잘 먹어 위스키란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사생아를 낳을 만큼 경건하지 못한 신부이다. 아니 하나님을 믿는 신부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바로 그가 살던 도시에 공산당이 쳐들어왔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신부는 그 도시를 떠나지 않는다.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말이다. 그가 그 도시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교회를 사랑해서도, 그렇다고 영혼들을 돌보기 위함도, 더욱이 순교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직 자만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결국 공산당원에게 잡혀 죽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순교자라고 할 것이다. 아니다. 내적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외적으로 순교를 낳는 것이 순교의 원리이다. 그러나 비록 순교를 했다고 해도 그것이 내적인 사랑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신학자는 자기를 위해 죽는 순교자도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사랑은 외적인 것이 아니다. 내적인 것이다. 내적 사랑이 외적으로 흘려 나와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든, 인간을 사랑하든, 교회를 사랑하든, 아니면 자연을 사랑하든 그 사랑이 내적인 데서 외적인 데로 흘러 나와야 진정한 사랑이다. 그것이 비록 바늘처럼 적은 행위라도 내적인 데서 나와야 진정한 사랑이다. 주님께서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 과부의  엽전 한 잎을 칭찬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면 내적 사랑을 살펴야 할 것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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