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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는 모두 의롭다
2005년 09월 14일 (수)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하나님을 아는 지식>중에서
제임스 패커 / 정옥배
IVP 펴냄

 

우리가 달갑잖게 느끼는 근본 원인은 진노라는 개념이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다는 불안한 의심인 듯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노란 자제심의 상실, 전체적으로는 아니라 해도 부분적으로 불합리한 ‘격노’의 폭발을 연상시킨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식적인 무력감, 상처받은 자존심 혹은 단순히 못된 성질로 인한 격노를 연상시킨다. 분명 이러한 속성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실로 그렇게 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그런 속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성경의 신인동형론적 언어- 즉 하나님의 속성들과 감정들을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인간의 용어들로 묘사하는 성경의 습성-로 인한 오해가 있는 듯하다. 이러한 습성의 기초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셨으므로 인간의 개성과 성품은 우리가 아는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존재와 더 닮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을 신인동형론적으로 말할 때, 그것은 우리 죄된 피조물의 개인적 특성들의 한계와 불완전함이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특성들에도 해당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너무나 자주 우리를 이끄는 것과 같은 어리석고, 충동적이고, 부도덕한 행동으로는 결코 이끌지 않는다. 또한 마찬가지로, 성경에서의 하나님의 진노는 결코 인간의 분노가 종종 그런 것처럼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이고, 성마르고, 도덕적으로 비열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보다는 객관적인 도덕적 악에 대한 올바르고도 필요한 반응이다. 하나님은 분노가 필요한 곳에서만 분노하신다. 인간들에게, 아마도 아주 드물게 발견되는 것이지만 의로운 분노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분노는 모두 의로운 것이다. 선을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도 똑같이 즐긴다면 그 하나님이 선한 하나님이 될 수 있겠는가? 자신이 만드신 세상 안에 있는 악에 역반응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도덕적으로 완전할 수 있을까? 분명히 그렇지 않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말할 때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악에 대한 이러한 역반응이다. 그 역반응은 도덕적 완전함을 이루는 필수적인 부분이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라는 생각은 잔인함을 연상시킨다. 그들은 아마도 요나단 에드워드의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들’이라는 유명한 설교에 대해 들은 것을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이 설교를 사용하셔서 1741년에 뉴잉글랜드에 있는 엔필드 시를 각성시키셨다. 이 설교에서 에드워드는 ‘자연인들은 지옥의 구덩이 위에 있는 하나님의 손 안에 놓여 있다’는 주제에 대해 상술하면서, 아주 생생한 풀무의 비유를 사용해서 회중이 그들이 처한 위치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그럼으로써 다음과 같은 그의 결론이 더 효과적인 것이 되도록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모두 깨어 일어나 다가오는 진노에서 피해야 한다.” 누구든지 그 설교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위대한 침례교 신학자인 스트롱의 논평, 곧 에드워드의 말이 날카로운 것이긴 하지만 비유적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고- 다시 말해, 에드워드는 “지옥이 불과 유황으로 되어 있다고 간주하지 않고 그보다는 불과 유황이 상징하는 바 죄책을 느끼며 그것을 고발하는 양심의 비거룩성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로 되어 있다고 여겼다.”- 강조한 것이 옳았음을 알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 것이 곧 에드워드를 비판한 사람들의 요점에 전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요점은 이 같은 언어를 사용해서 묘사해야만 하는 그러한 벌을 가하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분명 흉포하고 잔인한 야수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인가? 성경에 나오는 두 가지 사항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성경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언제나 사법적인 것이다. 즉 그것은 정의를 시행하는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진노이다. 잔인함은 언제나 부도덕한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그리고 그 점에 관해서는 에드워드의 설교에서- 하나님의 충만하신 진노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발견하게 되는 명백한 전제는 각자가 바로 자신이 받아 마땅한 것을 받는 다는 것이다.

바울은 시편 62:12과 잠언 24:12을 되풀이하면서 “하나님의 진노의 날”은 또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실”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신약의 어떤 인물보다도 이 주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씀하셨던 예수님은 응보가 개개인의 공과에 비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셨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여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나라”(눅12:47-48)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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