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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는 다른 기도보다 차원이 높다
2005년 09월 10일 (토)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갈망하는 자의 기도>중에서
토미 테니 / 윤종석
두란노 펴냄

폭력과 몰상식한 고문의 시대를 열어젖힌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은 이 중보 기도를 하셨다. 죽을 만큼 잔혹한 고초였다. 이 놀라운 기도는 에어컨이 켜진 강당이나 야외 원형 극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중남미 산자락의 커피 농장에 자리한 얼기설기 엮은 예배당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 중보 기도는, 몇 분 후면 죽을 사람의 터지고 피 묻은 입술을 열고 절박한 신음에 섞여 나왔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가장 위대한 중보 기도를 올리셨다. 이유도 없이 자신을 비난하고 때리고 학대한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하늘 아버지께 기도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처형한 로마의 세력자들만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다. 그분을 죽이라고 선동한 유대교 지도자들, 야유하는 유대인들, 구경하는 이방인들, 그리고 에덴동산 이후 태어난 모든 인간을 위해 기도하셨다.

주님의 중보의 심연에 들어가 인류의 모든 죄짐과 고통을 친히 지고 십자가로 가져가 영원히 도말하셨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높고 위대한 중보 행위였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모본이 되셨다. 그분의 제자요 중보자인 우리는 세상에서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

최근 당신은 당신을 이용하고 학대하거나 배척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거룩한 귀띔을 받은 적이 있는가? 그 때 당신은 성령의 재촉에 순종했는가? 아니면 무시한 채 다른 일이나 스케줄로 넘어갔는가?

중보 기도에는 다른 모든 종류의 기도를 능가하는 순결함이 있다. 중보 기도는 그 특유의 덕-나 자신의 요구와 소원보다 다른 이들에게 이타적 관심을 보이는 특성-으로 인해 다른 어떤 기도보다 차원이 높다.

내 영혼의 사랑이신 예수님은 마침내 하늘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 거기서도 우리를 위해 아버지께 중보하는 영원한 직무를 맡으셨다.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은 무너진다. 천국에 가신 그분은 직함도 많고 직무와 권한 영역도 많으실 텐데. 그럼에도 중보 기도자라는 대제사장 역할을 굳이 맨 앞에 두셨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앞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말로 표현은 안 해도, 중보 기도는 부질없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보 기도는 인간사에 대한 적극적 개입과 행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가장 적극적 존재요 신적 중보자로 지상에 거하셨던 주님이 다시 아버지 우편에 앉을 기회가 왔을 때 굳이 중보 기도자의 직함을 택하신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뭔가 ‘부질없는’ 일을 하시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1세기 이후 위대한 교회 지도자들 중에는 노련하고 꾸준한 중보자들이 많았다. 하나님은 미국의 영적 판도를 바꿔 놓은 일차 대각성 운동의 불씨로 존 웨슬리를 사용하셨다. 불같은 이 전도자는 기도의 능력을 명확히 인식했고 부흥과 관련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는 이렇게 선포했다. “죄밖에 두려울 것이 없고 하나님밖에 바랄 것이 없는 100명의 설교자를 내게 달라. 성직자든 평신도든 전혀 상관없다. 그들만 있으면 지옥문을 흔들고 이 땅에 천국을 세울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하시지 않는다.”

존 맥스웰의 책 <기도 동역자>에 보면 한 복음주의 목사가 기도 없는 교회의 빈약한 수확을 이렇게 설파한다. “사도행전 2장의 그들은 열흘 기도하고 베드로가 10번 설교하여 3천 명이 구원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들은 10분 기도하고 열흘 간 설교하여 세 명이 구원받는다.”

하나님 임재를 추구하는 것과 중보 기도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분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분 뜻을 행하고 그분의 요구를 다 들어드리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 그분을 따르기 위해 당신이 중보자가 돼야만 한다면 거기서 중보자가 태어날 것이다. 중보 기도는 계절을 탈 때도 있다. 하지만 기도가 응답되거나 짐이 벗겨졌다고 해서 기도를 멈춰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하신다. 이 명령은 자신의 자질구레한 소원과 필요를 놓고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가 지침이 되어 중보 기도는 목록의 맨 윗부분, 감사와 찬양과 예배 바로 밑을 차지한다. 성령은 우리를 위해, 우리를 통해 이 땅에 ‘기도로 아버지 뜻을’이루시며 기뻐하신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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