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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든지, 죽든지 선택하라
2005년 08월 17일 (수)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중에서
유진 피터슨 / 이종태
IVP

흔히 다윗은 열정의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자기 앞에 무엇이 있든 간에 그는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져서 거기에 몰입했다. 노래든 전투든 기도든 혹은 사랑이든 하나님이든 말이다. 그러나 흔히 간과되긴 하지만, 다윗은 자비의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열정은 공동체적 열정, 즉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com) 따뜻한 정(passion)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의 정열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사람이었다.

다윗은 미리 규정된 틀에 잘 들어맞지 않는 인물이다. 우리는 다윗 이야기에서 사회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이나 말하는 소위 ‘역할 모델’을 발견하지 못한다. 사실 역할 모델이란, 인간이 되어 가는 데 따르는 고통을 스스로 감수하지 않고 자신을 끼워 맞출 수 있는 기성품 같은 것에 불과하다. 오로지 목숨을 연명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 속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삶으로 살아 냈다. 타인을 향한 그의 민감한 돌봄은 남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우리가 흔히 ‘동료의 압력’이라는 말로 합리화시키는 비겁함에 무릎 꿇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사회적 압력을 거스르면서까지 사람들을 돌보아 주었다. 그에게 오로지 나만을 위한 구원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었다. 함께 사는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안전을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 구원에만 함몰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그는 자비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돌봄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일이다.” 폰 휴겔(von Hugel)은 말했다. “기독교는 우리에게 타인을 돌보아 주라고 가르친다.” 한 세대 후에 시인 오든(W.H.Auden)은 세상을 향해 최후 통첩을 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든지 아니면 죽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감상(sentiment)이 자비를 대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감상은 실제 인간 관계로는 연결되지 않는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감상이란 허울뿐인 자비심에 불과하다. 감상은 마치 남을 돌보는 마음처럼 보이고 또 자비심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국기의 행렬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때 생겨나는 애국심 같은 것이 바로 감상이다. 결코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실제 애국으로는 연결되지 않는 단순한 감정 말이다. 감상은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것은 병든 친구를 찾아가 보는 일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동정을 느끼고 눈물을 조금 흘리고 자선 단체에 만 원 정도 보내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이토록 삭막하고 살벌한 세상에서 나는 아 얼마나 온정 많은 사람이란 말인가!’ 그러고 나서 우리는 집과 직장으로 돌아간다. 눈물만 흘렸을 뿐 그 외로운 사람들에게 편지 한 통이라도 쓸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그러고는 이중 자물쇠로 잠긴 집에 들어가 낯선 사람은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다.

우리 시대 최고의 아이러니 중 하나는, 우리 사회에 자아 성취에 대한 이야기와 책이 가장 많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자아 성취에 도달한 개인은 가장 적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기 계발에 가히 광적으로 집착했지만 결국은 일종의 종교가 된 이기적 자기 중심주의가 유행했을 뿐이다. 경제적 번영, 정치적 해방, 종교의 자유는 결국 비만과 불안과 저급함을 꽃피웠다. 물론 좋은 예도 역시 수없이 많지만 이런 일반적인 진술도 별 무리는 없다. 세상은 아직도 눈부시도록 영광스러운 것들과 영광스러운 복음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그것들을 경축하며 자비를 가지고 그것들을 나누는 사람은 지독히도 드물다. 이는 물론 지금 시대에만 국한된 모습은 아니다. 어거스틴은 당시 세상 사람들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형편없는 것보다 자신의 별장이 형편없는 것을 더 고통스럽게 여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흩어져 살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누구나 제사장이 되어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다. 다윗과 같은 구체적인 자비의 실천을 통해 모두가 서로 완전히 결합되어 그 어떤 전문가도 우리를 단순히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시키지 못하도록 말이다.

브솔 시내의 다윗은 예수님을 예기한다. “지쳤느냐? 힘이 없느냐? 종교에 대해 탈진했느냐? 나에게 오라. 그러면 생명을 회복하리라. 나는 너희에게 진정한 쉼을 보여 주겠다. 나와 함께 행하고 나와 함께 일하라. 내가 어떻게 행하고 일하는지를 보고 배우라. 자연스러운 은혜의 리듬을 배우라. 나는 너희에게 무겁고 억지스러운 짐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 나와 교제하라. 그러면 너희는 자유롭고 가볍게 사는 삶을 배울 것이다”(마 11:28~30)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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