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광 목사/ 열린문교회,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결국 미국이 지난 9월 11일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의 테러에 대하여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테러로 인하여 참혹한 희생을 당한 미국의 모습은 참으로 안쓰러울 정도였습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희생자의 수만 해도 6천명이 넘고 실종된 사람의 수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테러 사건 후에 미국은 그야말로 긴장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눈 여겨 보게된 것은 미국의 젊은이들 가운데 만약 전쟁이 나면 즉각 자원 입대하여 참전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미군에 입대하려고 줄지어 자원하는 젊은이들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중앙 정보부 같은 기관에는 국가를 위하여 일하려고 지원하는 이들이 7배 이상 늘어났다고 합니다. 전사(戰史)에 의하면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영국에서는 50세 이하의 귀족 가운데 20%가 참전하여 전사했다고 합니다.

또 1967년 6일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제 1차 중동전쟁이 일어났을 때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자기가 하던 모든 학업이나 직업을 버려 둔 채로 자신들의 조국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려고 급히 귀국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1967년 6월에 일어났던 이 6일 전쟁은 그래서 두고두고 교훈을 줍니다. 전체적인 전력은 이집트가 훨씬 앞섰는데 오히려 이스라엘이 6일만에 승리를 거둔 요인에 대해 유학생들의 반응에 얽힌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을 치르고 난 이후 또 한 가지 요인이 발견되었습니다.

전사자들을 비교해 보면 왜 이스라엘이 승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사상자는 대부분 사병이었던 반면에 이스라엘의 사상자는 거의 장교였습니다. 이집트의 장교들은 사병들을 앞세우고 뒤에서 명령만 했지만 이스라엘의 장교들은 전장의 최일선에 나서서 적과 맞서 싸웠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자기 나라 사랑이 얼마나 컸던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미국이 테러를 지원하고 있는 아프카니스탄을 공격하고 있다고 온 뉴스가 전쟁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군인들이 끝없는 전쟁에 참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칭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백성, 일꾼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외에 좀 특이한 것은 ‘하나님의 군병‘ 또는 ‘하나님의 군사‘라는 이름입니다. 대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자녀‘라는 말은 듣기 좋아하지만 ‘종‘이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당장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군인‘이라고 하면 아예 고개를 흔들어 버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먹고살기가 고달픈데 또 무슨 싸움을 하라는 말이냐?“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싸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2절을 보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은 영생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싸움은 선한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또 마태복음 10장 34절을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劒)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가는 사명의 길을 가로막는 세력과 싸울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중세시대의 그림들을 보면 마리아의 품속에 잠든 아기 예수의 그림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로마의 권력 속에서 평강을 누리는 지상교회와 교인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나 교인들이 이 세상과 조화를 이루고 협력함이 마땅하지만 교회와 교인들을 영적으로 변질시키려는 시도가 있을 때에는 교회는 맞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서 전쟁에 대한 새로운 각오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하면 우리는 직접적으로 싸우는 것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리스도인 자신이 마땅히 해야할 일, 즉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영적 전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식수를 주일마다 약수터에서 길어다 놓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집사님은 교회에서 물을 사서 먹는 것을 알고는 물 긷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길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그 집사님에게 수고로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더니 집사님은 자기가 이 일을 함으로 성도들이 물을 마실 때마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하면서 기꺼이 물 긷는 일을 하겠노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집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쟁은 그렇게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작은 것에서부터 감당하기 시작할 때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프로그램과 말들을 쏟아 내지만 정작 자신의 해야 할 일에는 등한히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교회가 건축을 하겠다고 발표하자 부담을 느낀 성도들이 많이 교회를 떠났다는 슬픈 이야기를 때때로 듣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자원하여 감당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말만 많이 하고 정작 어려운 일, 힘든 일이 주어지면 이리 저리 회피하는 사람이 진정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지금 전쟁터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자 참전하는 군인들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수 없는 것일까요?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