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광 목사/ 열린문교회,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어느 날 아침에 저는 저희 교회 앞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운전자가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이를 적발한 교통 경찰관에게 다른 사람은 적발하지 않고 왜 자신만 적발하느냐고 하면서 몹시 큰 소리로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며 항의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최고(?)라는 이상한 의식구조가 자리잡고 있어서 웬만하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요즘의 행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가 교회에 들어갔다가 얼마 후 다시 나오는데 아까 그렇게 큰 목소리로 항의하던 그 운전자가 이번에는 어찌된 일인지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이 오가는 그 길가에서 무릎을 꿇고 않아 두 손 모아 싹싹 빌면서 경찰관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경찰차로 연행 당할 뻔하다가 빌고 또 빈 후에 경찰관으로부터 일장 훈시를 들으며 부끄러움을 당한 후 범칙금 스티커를 떼이고서야 그는 겨우 제 갈 길로 갈 수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무스를 바르고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그 사람은 겉보기에는 그렇게 무릎꿇고 길거리에서 경찰관에게 빌어야 할만큼 그런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러한 광경을 목격하면서 문득 그 사람처럼 그렇게 무릎꿇고 빌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나도 얼마나 많이 내가 옳다고 자기 주장만을 하며 큰 소리를 쳤는지를 모릅니다. 때로는 가족들에게, 때로는 성도들에게, 그리고 심지어는 하나님에게까지도 말입니다. 그리고서도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큰 소리 치는 내 자신이 아니라 소리치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내 자신의 모습입니다.

 총회에서와 노회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그리고 성도들이 거룩한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각종 회의 등과 같은 모임에서 어느덧 또 다시 목소리를 드높이기 시작합니다. 내 목소리가 가장 크니까 내가 가장 옳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온갖 불법이 난무하는 것을 봅니다. 거짓이 판치는 것을 봅니다. 때로는 폭력이 난무하기도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교회가 병들어 갑니다. 성도들이 병들어 갑니다.

 우리 사회는 또 어떻습니까? 정치인들의 식언은 이제 당연한 것처럼 되었습니다. 의사와 약사들이 거짓 청구서를 써서 의료비를 타내고 있다지요? 심지어는 지난 입시에서 고교 졸업생들의 내신 성적표 가운데 83%가 거짓이라는 충격적인 보도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이 사회가 큰 목소리만이 난무할 뿐 자신의 소리를 죽이고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자신의 모습을 겸허이 바라볼 줄 아는 참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것은 그러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중성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러한 이중성은 국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즈음 또 다시 일본의 교과서 왜곡으로 인하여 주변국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외교채널을 통해 강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하고  전국 인민 대표자 대회에서 그 대응책을 논의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합니다. 일본인들의 역사왜곡은 우리 정치권에도 충격을 주어 여야 의원 100여 명이 당적을 초월하여 일본의 역사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마련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그렇게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각 국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채택된 역사 교과서를 바꿀 뜻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작년에 일본의 한 거물급 고고학자가 일본의 구석기시대를 70만년 전으로 조작하려고 유물을 몰래 파묻은 사건까지 일어난 것을 보면 그러한 교과서를 집필한 일본 역사학자들의 양식과 일본 정부의 양식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외식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외식이란 가면을 썼다는 뜻입니다. 거짓된 것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꾸미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의 외식이라는 것은 질적으로 나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속이려고 하는 외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외식하는 사람, 이중성을 가진 대표적인 사람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비난하며 말하는 우리 자신은 어떤가요?

 '내가 곧 진리요'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언제나 진실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이것은 본래 인간이 거짓됨을 암시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만일 사람이 진실하다면 굳이 예수님께서 '진실로' 말한다거나 '참으로' 말한다거나 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는 로마서 8장 23절에서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외쳤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내가 저지르는 죄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해결될 수 있다고 바울 사도께서는 로마서 8장 1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결국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겉과 속이 같지 않고,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한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