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광 목사/ 열린문교회,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구정 설날을 지내면서 이 글을 씁니다. 사람들은 명절을 앞두고 고향을 찾아갈 마음에 들뜨게 됩니다. 그리고 고향의 부모님께는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합니다. 이렇듯이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살다가도 명절에는 모든 가족들이 고향집에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집니다. 이렇게 떠나 갔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모습은 참으로 즐겁고도 아름다워 보입니다.

어김없이 금년에도 고향가는 길은 ‘귀성전쟁‘이라는 말에 걸맞게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고향 길을 다녀왔습니다. 주요 철도역과 고속버스터미널 등에는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연인원 3천 340여 만 명으로 추산되는 글자 그대로의 ‘민족 대이동‘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설 연휴 기간에 모두 137만 4천여 대의 차량이 서울을 빠져나갔다 온 것으로 한국도로공사측은 추산했습니다. 많은 차량들이 그렇게 엄청난 연료를 소비하고 엄청난 시간을 길에서 허비하면서도 사람들은 고향에서의 즐거움에 젖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고향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타향살이에서 누릴 수 없는, 안식을 얻을 만한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우도 죽을 때는 제 집을 찾는다‘는 속담이 있지요. 사람이나 동물이나 죽을 때는 제 난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속담입니다. 모든 동물이 멀리 갔다가도 제 집에 돌아오는 본성이 있는데 이를 귀소성이라 합니다. 본래 났던 곳으로 돌아오는 귀소본능이 강한 물고기로 연어를 듭니다. 강에서 산란된 알들은 곧  부화돼 바다로 가고 자라면서 온 대양을 누비고 삽니다. 7년쯤 지나 알을 낳기 위해 자기가 난 곳으로 돌아온 연어는 색깔이 변하고 많은 알을 낳은 후 죽습니다.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자기 희생이지만 여기에는 단지 본능이라고만 여겨선 안될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명절에 고향 가는 생각에 들떠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고향 가는 길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향 가는 길은 영적인 의미에서 여러 의미를 묵상하게 합니다. 고향에 가듯이 인간은 영원한 세계로의 회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회귀가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심각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길이 막혀도 고향가는 길이 즐거운 것처럼 천국을 향해 가는 인생 길은 힘들어도 즐겁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향에서 부모 형제를 만나듯 천국에서는 하나님과 믿음 안에서의 형제들을 만나게 될 테니까요. 고향에 가면 안식과 평화가 있듯이 천국에는 영원한 복락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 땅에서도 마음의 천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마치 귀성차표를 마련한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5~16)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믿음의 선진들은 지상의 고향이 아닌 하늘나라의 고향을 사모하여 이 땅을 나그네 같이 살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교부 터툴리안은 “그리스도인은 이 땅 위에서는 순례자이며, 자신을 확보하는 지위는 천국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고향을 찾아가고 있을까요?가끔 저는 성경의 탕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할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온갖 재산을 탕진한 탕자에게도 돌아갈 고향이 있고 매일 같이 기다리시며 맞아주시는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실패한 듯한 삶을 살았지만 자기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께 돌아옴으로 탕자는 모든 것을 회복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 땅에서 살되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아니하고, 나그네와 행인같이 살며 그 시선은 언제나 하늘에 두고, 그 나라에 계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진정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추위도, 배고픔도, 외로움도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참 고향인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핍박도, 조롱도, 죽음도 두려움의 대상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감당하시고 앞서 걸어가셨던 사랑하는 예수님의 기다리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비에 젖어 춥고 허기진 날이 있어도 어딘가 돌아갈 고향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기대했던 일들이 산산이 부서지고 사람들에게 철저히 실망한 날이 있어도 반가이 나를 맞아 주실 그리운 분이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배부르고 따뜻하여도 돌아가 쉴 만한 고향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나그네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성공하고 명성이 높아져도 그것과는 관계없이 진실한 사랑으로 반가이 맞아 주실 그리운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를 본향 삼고 오늘의 삶을 주님을 위해 사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십니까?
(월간 <교회와신앙> 2002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