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목회·신학 | 김만풍 목사 칼럼
       
분노의 절제
2001년 03월 01일 (목)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만풍 목사(워싱턴 지구촌교회 담임, 국제전도폭발 미주 한인본부 대표)


분노의 감정에 관해서는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그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인간의 분노 감정은 자연스런 것이다, 분노 감정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분노 감정을 바로 사용하면 유익이 있다, 그러나 분노 감정을 잘못 사용하면 해를 초래한다, 따라서 분노 감정은 잘 다스리고 절제할 필요가 있다는 등 그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몇 가지 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B.C.485-415)는 "분노는 무모함으로 시작해서 후회로 끝난다"하여 분노무용론을 펼쳤습니다. "원수를 태우겠다고 불지른 것이 오히려 자기를 태우는 경우가 허다하다"라고 한 중국 속담이나 "분노는 타인에게도 해롭지만 그 분노에 휩싸인 자신에게는 더욱 해롭다"라고 한 러시아 작가 레오 톨스토이(Leo N. Tolstoi 1828-1910), 그리고 "분노하는 것은 땅에 대한 저주의 결과로 생겨난 쓸모 없는 엉겅퀴와 같은 것으로서, 그것은 언제나 이웃을 분열시키고 이간시킨다"고 한 17세기  영국의 목회자였던 토마스 아담스(Thomas Adams) 등이 분노무용론에 동조하고 있습니다(이상은 슈퍼바이블 크리스천 문장보감 금언집에서 발췌하여 필자가 문장을 다듬어 놓은 인용문들임).

 그러나 비쳐(H. W. Beecher)는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선을 이룰 줄 모르는 사람이다. 악한 일들에 대해서 가슴에 의분을 품을 줄 모르는 사람은 곰팡이 아니면 악인일 것이다"(Michael P. Green, Illustration for Biblical Preaching, #20) 라고 말하여 의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이 수집한 예화 22번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가 분노에 대해서 한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한글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누구나 분노할 수 있다. 분노하기는 쉽다. 그러나 바른 대상에게, 바른 정도로, 바른 시간에, 바른 방법으로 분노하는 것은 쉽지 않다" 비쳐의 말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정리하면 의분을 정당하게 품고 정당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당한 분노라도 사랑으로 오래 참지 못하고 당장에 표현하면 덕을 세우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로마의 철학자요 시인이었던 세네카(B.C.4?-A.D.65)는 "분노를 치료하는 특효약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격언에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람은 성벽 없는 도시와 같다"고 했습니다. 독일 속담에 말하기를 "분노에 대한 최선의 답은 침묵이다"라고 했습니다. 옛 라틴어 속담에는 "화난채로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은 마귀와 동침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구약성경 잠언 12장 16절에 말씀하기를 "미련한 사람은 쉽게 화를 내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모욕을 참는다"(표준새번역) 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 1장 19절과 20절은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신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표준새번역)

 정당한 의분이라도 그것이 지나쳐서 악이 될 수 있고 지속되어서 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 4장 26절과 2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를 내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표준새번역)

 정당한 분노라 하더라도 우리가 정확한 이유 때문에, 정확한 대상에게, 정확한 정도로, 정확한 때에, 정확한 방법으로 표출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너무 지나치거나, 너무 소극적이거나, 대상이 달라지거나, 방법이 잘못되거나, 미리 화를 내거나, 너무 늦게 화를 내거나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노의 감정을 정확히 관리하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입니다. 분노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지혜일 것입니다.

 정당한 분노의 목적은 잘못을 바로 잡고, 악을 막고, 죄에서 떠나며,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데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분노가 이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송나라의 사상가 장자(B.C.365-290)는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러나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는 "한 때의 분한 감정을 참으면 백 날의 근심을 면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B.C.65-8)는 "노기는 일종의 광기이다. 그대가 분노를 제압하지 못하면 분노가 그대를 제압할 것이다" 라고 경고했습니다. 구약성경 잠언 16장 32에 말씀하기를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발명왕 에디슨의 여유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느 날 그가 자고 일어나니 자기 집 정원의 꽃밭이 엉망이었습니다.간 밤에 꽃 도둑이 줄기며 뿌리까지 짓밟아 놓고 간 것이었습니다.그것을 보고 화가 났을 텐데도 에디슨은 그날 밤에 꽃밭의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가위를 달아놓고 그 옆에 "꽃 도둑님, 다음에는 이 가위를 이용해 주세요!" 라고 쓴 메모지를 붙여 놓았습니다.다음 날 아침에 보니 거기 회답이 있었습니다: "주인님 가위가 잘 들지 않습니다. 다음엔 숫돌에 잘 갈아서 놓아두십시오" 애독자 여러분, 오늘도 분노를 절제하여 좋은 하루 만드십시오.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3월호).

교회와신앙의 다른기사 보기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이만희 교주 구속, 신천지 조직은
이만희 교주, 오늘(8/1) 새벽
“전능신교 가짜 난민들 추방하라”
신천지 피해호소와 전능신교 진단과
특별 기고/ 전광훈 목사를 한국교
기독 청년들이여! ‘연애는 이렇게
‘이단 예방’ 만화 보며 어렵지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 교회와신앙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이용약관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