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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절제한 분노
2000년 05월 01일 (월)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만풍 목사(워싱턴 지구촌교회 담임, 국제전도폭발 미주 한인본부 대표)

 마이클 그린이 수집한 예화 중에 알렉산더 대왕의 분노에 관한 일화가 있습니다(Michael P. Green, Illustrations for Biblical Preaching, #21). 알렉산더(Alexander the Great, B.C.356-323)는 우리가 아는 대로 주전 336년부터 323년까지 13년 동안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왕위에 있으면서 부왕 필립(Philip)보다 더 큰 야심을 품고 당시의 알려진 세계를 정복한 인물이었습니다. 20세에 왕위에 오른 그는 힘있고, 재주 많고, 머리 좋은 위인이었으나 불행히도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는 분노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성품으로 미루어 누구를 특별히 증오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의 짧은 생애 동안 분노 때문에 몇 차례 비극적인 실수를 범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 번은 그의 총애를 받는 장군 하나가 술에 만취한 가운데 많은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른 분노가 머리 꼭대기로 올라가면서 그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그는 번개처럼 빠른 동작으로 곁에 있던 병사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장군을 향해 던졌습니다. 그의 의도는 술 취한 장군을 좀 겁주려 한 것뿐이었으나 그의 손에서 빠져나간 창은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오던 사랑하는 친구에게 명중하여 목숨을 잃게 했습니다.

 불같은 분노 뒤에는 막심한 후회가 뒤따랐습니다. 죄책감에 압도된 알렉산더 대제는 친구를 죽인 그 창을 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신하들이 달려들어 막았습니다. 그는 여러 날 병석에 누워 죽은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 자신을 살인자라고 자책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제는 수많은 도성들을 무너뜨리고 여러 나라들을 정복했으나 자기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는 데에는 비참한 실패한 역사의 인물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무절제한 분노 때문에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 인물은 알렉산더 한 사람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 사는 우리 자신은 어떤지요?

 분노란 무엇인가요? 인간이라면 다 갖고 있는 감정의 일부가 아니던가요? 분노 감정 자체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중에 하나입니다. 분노는 기쁨, 슬픔, 애정, 즐거움 등과 함께 인간의 정서에 속합니다. 분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분노의 감정은 바른 대상에게 적절한 때 정확한 양을 바람직한 방법으로 정당하게 표현하면 분노하는 사람, 분노의 대상, 주위 사람 모두에게 유익이 됩니다. 정당한 분노는 불의한 일, 그릇된 일, 억울한 일, 잘못된 일,
죄악 등을 바로잡는 기능을 합니다.

 마땅히 분노를 느껴야 할 상황에서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분노의 정서가 마비된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선과 악, 의와 불의, 질서와 무질서를 분별하는 지식이 없거나 자기도 악에 속하여 양심이 마비된 사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땅히 분노를 표현해야 할 자리에서 분노를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겁이 많거나, 약하거나, 비굴한 사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땅히 분노해야 할 대상에게는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고 자기보다 더 연약한 사람이나 말 못하는 물건에게 대신 화풀이를 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죠. 이것은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정당한 대상에게 표현되는 분노라고 하더라도 그 분노의 양이 정확하지 않으면 불공평한 것이 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한 양의 분노를 표현하도록 절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될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우리의 인간관계에서는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표현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알렉산더의 무절제한 분노 감정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노할 자리에서 분노할 대상에게 정당한 분노를 정확한 양으로 바람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그러한 분노를 두려운 마음으로 그리고 감사한 태도로 받아들이고 잘못을 시정하는 사회가 참으로 복된 사회입니다. 우리의 인간관계가 그러한 방향으로 개선되어간다면 분노할 필요를 점차 느끼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진정 이상적인 사회는 분노감정이 살아 있으면서도 분노할 필요가 없는 사회입니다.

 사랑하는 애독자 여러분, 우리 함께 분노 감정을 정당하게 사용하십시다. 특히 무절제한 분노 감정으로 인한 화를 예방하십시다. 분노 감정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인간관계를 세워 나아가십시다. 오늘도 분노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좋은 하루 만들어 내십시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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