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신데렐라 신드롬’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여인에게 어느 날 백마탄 왕자님이 나타나고 그와 결혼해 단번에 인생역전을 이룬다는 스토리는 사실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오는 별로 특이할 것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 방송 3사가 약속이나 한 듯이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드라마를 연이어 방송하면서 여성들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최근 주말 시청률 50%를 넘기며 ‘국민 드라마’라는 칭호를 얻고 있는 SBS <파리의 연인>을 비롯해, KBS <풀하우스>, MBC <황태자의 첫사랑>에는 나란히 강태영(김정은 분), 한지은(송혜교 분), 김유빈(성유리 분)이라는 가난하지만 당당한 캔디형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씩씩한 이들에게 우연인지 필연인지 돈 많은 재벌과 잘생긴 영화배우가 나타나 완벽한(?) 남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다.

뜬금없이 ‘애기야’라는 닭살스러운 멘트를 날리는가 하면, 자신만을 바라보면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여자들이 가끔 상상 속에서나 꿈꾸는 로맨틱한 상황을 드라마에서는 마치 현실처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 변현정 씨는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가슴이 설레고 한없이 행복해진다”며 “현실 속에서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상황인 것을 알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시원한 청량제가 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식상한 구도의 드라마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남성에 의해 도움 받으려는 여성들의 ‘숨겨진’ 심리를 꼽는다.
최근 결혼정보업체들에서 20~30대 미혼 여성 회원들이 배우자감으로 꼽은 1순위는 <파리의 연인>에 등장하는 한기주(박신양 분)였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남성에 의해 완성되는 ‘신데렐라’를 꿈꾸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여성 관련 전문가들은 과거에 비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남성에 의존하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가진 것 하나 없지만 부와 권력을 지닌 사람들 앞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당당하게 행동한다.

그러나 곧 그들의 한계가 드러난다. 결정적 위기가 닥쳤을 때 도움의 손길을 뻗어 구해주는 이는 결국 남성의 몫이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이 이러한 드라마들이 여성의 나약함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회사원 이윤희 씨는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처럼 누군가 나타나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기왕이면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남자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학생상담실 박인영 상담사는 “이러한 종류의 드라마에 깊이 빠지기보다는 가볍게 즐기는 자세로 시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더불어 “여성들 스스로도 남성의 도움 없이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