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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청년부의 봉사에 대하여
2002년 02월 01일 (금)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대응 목사(전 서울침례교회 대학청년부·전도·교구 목사)

대학청년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봉사는 필수가 된다. 대학청년이 무슨 봉사의 제물인가?

대학청년들에게 있어서 봉사는 교회 생활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신앙 성장의 정도에는 관계없이 청년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봉사할 부분이 생기면 언제든지 동원되는 것이 이들이다.

성장하고 나서 봉사를 하느냐? 봉사를 하면서 성장을 하는 것이냐? 성장도 하면서 봉사도 하는 것이냐? 라는 질문은 무엇이 먼저라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그래서 봉사하는 이야기만 나오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다가 어정쩡하게 힘이 있는 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즉, 봉사를 요청한 분이 누구냐에 따라 못할 형편인데도 그럴 수 없는 상황으로 마지못해 끌려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봉사는 해야될 것이 분명하지만 봉사와 신앙성장의 균형이 늘 갈등으로 다가온다. 봉사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해서 성경공부를 하다가 나가는 경우, 예배를 드리다가 불려나가는 경우, 기도모임을 하다가 불려나가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교회 현장에서 그런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봉사는 해야될 것이지만 신앙 성장이 먼저 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앙의 성장과 봉사는 정말로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 교회에 들어온 청년들에게 일을 맡기는 것도 좋지만 신앙이 바로 서지 않고, 교회가 무엇인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을 교회 봉사에 동원하다보면 그들의 신앙이 제대로 서지 못하게 된다. 봉사라는 것이 인간관계의 부딪힘을 통하여 한 번 관계가 되어지면 신앙적인 유대감보다도 인간적인 유대감으로 묶이게 된다. 그것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한 영혼이 교회에서 먼저 신앙으로 서야 하는데 순서가 바뀌면 신앙이 들어가기가 어렵다. 

봉사활동을 통하여 인간적인 유대감이 먼저 형성되면 항상 우선 순위에서 인간적인 교제권이 늘 우선 순위로 작용을 하게 된다. 이것이 습관이 들면 신앙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놓쳐 버리게 된다. 비록 나중에 알았다 할지라도 만회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신앙이 성장하지 않은 이들은 당분간 어느 정도의 신앙의 훈련기간을 통해 교회적으로 검증
받은 후에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순서다. 교회가 청년들이 많아지면 가장 많은 주문이 폭주하는 것이 봉사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들이다.

교회학교 유치부에 와서 봉사해 달라. 초등부에 와서 봉사해 달라. 중등부에 와서 봉사해 달라. 고등부에 와서 봉사해 달라. 각 교회학교마다 특별 프로그램이 있으면 자문역할과 도우미 역할, 직접 몸으로 때우면서 해 주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각 교회학교마다 수련회가 있으면 대학청년들은 교사가 아니라도 그곳에 가야 한다. 또 자신이 속해 있는 대학청년부서의 수련회에도 가야 된다. 찬양대에서도 봉사해야 한다. 남·여전도회의 노력 봉사하는 일이나, 교회 전체 야외 예배나, 교회 전체 체육 대회나, 전교인 수련회나, 교회에서 결혼식이 있으면 주방이나 식당에서 심부름하는 것 역시 청년들의 몫이다.  단기선교 여행이다, 교회 청소다 하여 한 사람이 이중 삼중으로 겹치기 봉사를 하다 보면 심신이 지쳐 정작 자신의 신앙 성장을 위한 훈련의 기회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리게 되는 일이 다반사이다. 

항상 활동이 많은 부서는 말도 많이 듣게 되어 있다. 봉사를 하면서 말을 많이 듣는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대학청년들을 향하여 봉사의 손길을 요청하여 오는 것은 정말로 많다. 요청하는 곳에서는 한 번이지만 당사자인 대학청년들은 그 이상이다. 항상 활동이 많은 부서는 말도 많이 듣게 되어 있다.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말도 듣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학청년들은 아무런 말을 듣지 않고 있다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많은 말을 듣더라도 이들의 봉사활동을 통하여 얻어지는 유익이 전 교회적으로 더 많다는 사실을 담임목회자와 각 부서 장들이 충분히 이해를 하고 오히려 격려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학청년부서에 대한 이해는 봉사의 영역에서 더욱 절실하다. 이들도 한창 배워야 할 때이다. 이들이 봉사하는 일에 습관적으로 동원 되다보면 이들이 제대로 성경공부나 신앙훈련을 통하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무의식적으로 박탈하고 있다는 것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대학청년부서는 늘 바람 잘날 없는 부서라는 것을 깊이 이해해 주지 않으면 이 부서에서 오래 사역하면서 남아날 목회자가 없다. 봉사하고 나면 늘 뒷말이 있게 마련이다. 잘했느니, 못했느니 말이다. 그 당시에 봉사를 시키는 어른들이 꼭 집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했으면 될 것을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내버려두어서 생긴 결과는 생각지 않는다.

봉사는 끝이 없이 찾아온다. 한 번 봉사를 한 사람은 그 봉사하는 일에서 나오기가 쉽지 않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지 간에 봉사할 일이 있으면 그 일에 한 번이라도 참여했던 사람을 또 찾게 된다. 봉사하는 일에 계속 참여하게 되면 차분히 자신이 성장을 할 수 있는 성경공부나 신앙훈련에 우선 순위가 밀리게 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신앙 성장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 할지라도 이미 지나온 시간을 만회할 수 없다.

봉사로 인하여 신앙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우선 순위가 바뀌지 않도록 꾸준한 배려가 요구된다.

대학청년들이 젊음이 있다 할지라도 교회에서 가장 먼저 배려해 주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들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받고, 훈련하는 일에 봉사보다도 더 우선 순위를 두도록 양보를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청년들은 대학청년들의 그 모임에서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도록 하고, 장년부들은 장년부들의 그 모임에서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들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을 기울여서 각 층의 자체 해결 능력을 향상시키는 노력보다 일단 손쉬우니까 청년들을 동원함으로 서로가 느끼는 부담이 가중된다. 아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 균형이 깨어진다는 것이다.

봉사하면 청년들에게 첫번째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몸으로 때우는 것이다. 교회에서 힘을 쓸만한 일이 있으면 전부 청년들에게 떨어진다. 행사가 많은 해이면 이중 삼중으로 동원이 된다. 실컷 일은 다 해 놓고 나중에 조금이라도 미진한 일이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 청년들에게 핀잔이 돌아간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구경꾼 역할만 하고 있던 사람들이 이것저것 그러니저러니 하는 말을 펼치게 된다. 그러면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것이 정말 그런가 보다하고 소문이 나고 또 담임목사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빙돌아서 대학청년부 담당목사에게 뒤통수치는 식으로 슬쩍 떠보게 되거나, 영문도 모르는 채 일을 잘못 처리했다고 섭섭한 소리를 듣게 된다.

나중에 알고 보면 전혀 그게 아닌데도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된다. 잘한 것은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발견이 되면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식으로 공격(?)을 당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아니 실제로 그러한 상황들이 경우마다 일일이 생기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소위 부려먹기 쉬운 부서가 대학청년부다. 가장 적게 예산을 투자하고 봉사는 많이 시키는 부서다. 어느 교회이든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청년들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넉넉하게 해 주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반드시 부흥을 하게 되어있다. 어느 대학부나 청년부가 부흥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면 둘 중에 하나이다. 담임목사의 이해부족이거나 담당목사의 능력부족이거나이다.

대학청년부서는 봉사 부서가 아니라 교육투자 부서로서 인재들을 양육하는 못자리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에 그 무게 중심이 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학청년들에 대한 이해가 어떤 관점에서 보여지고 있는가이다. 동원부대로 인식을 하고 있는가? 교육투자 부서로 인식을 하고 있는가? 이 차이는 엄청난 차이이다. 동원부대로 인식을 하고 있으면 임기응변 식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을 그때마다 요구한다. 그 부서의 상황과 관계없이 전체 교회 행사 속에서 늘 뒷전으로 밀려나는 어려움을 겪게된다.

교육 투자 부서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사전에 가장 좋은 상황들을 배려해 주게 된다. 그 부서는 그 부서대로 돌아가게 한다. 장년과 일체형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는다.

대학부나 청년부를 장년부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그 부서의 눈높이로 내려가서 한 번 더 이해를 하려고만 한다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들이 상당히 해소가 되어질 것이다. 이 부서들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교회를 사랑하고 노력 봉사하는 청년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다.

신앙이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봉사를 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그것은 영적 본능이기 때문이다.

봉사를 한다는 그 의미가 장년들이 하는 일들을 도와주는 봉사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현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장년들이 중심이 되는 교회 전체 행사에는 꼭 지원요청을 해온다. 장년들이 하는 곳에는 장년들 스스로 봉사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전체 야유회다, 전체 체육대회다, 무슨 일이다 하면 가장 동원하기 좋은 층이 이 부서로 생각을 하는 경향들이 일반적이다. 이 고정 관념이 깨뜨려져야 한다.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봉사보다 먼저 교회에서 바른 신앙으로 배움의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해 주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한 번의 봉사가 계속되는 봉사로 이어져 신앙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 신앙이 성장하면 당연히 그 사람은 교회의 봉사할 영역을 찾아가고 싶어한다. 신앙이 성장하면 할수록 봉사에 대한 욕구는 영적 본능으로 작용을 하게 되어있다. 신앙이 성장해 가면서 동시에 봉사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더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봉사보다는 신앙성장을 위한 배려를 먼저 해 주는 것이 한 영혼의 미래와 교회의 미래를 위하여 유익하다는 원리를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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