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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청년부의 훈련에 대하여
2001년 12월 01일 (토)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대응 목사(전 서울침례교회 대학청년부·전도·교구 목사)

신앙 성장에서 훈련이라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 과정이다. 훈련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은 선택의 여지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통과해야 할 통과 의례인 것이다. 단순히 통과하는 과정으로 할 수 없이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형식으로 전락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훈련은 반드시 목표와 목적이 있기 때문에 통과의례에 담긴 의미를 알고 받은 사람에게는 그 이상의 성장이 있게 마련이다.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딤전 4:7~8).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경건에 이르는 데에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여기서의 연습은 곧 훈련을 의미한다. 몇 번의 연습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반복하는 과정의 인내와 숙달이 되어질 때까지의 연단에 의해서 훈련이 되어야 비로소 경건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훈련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을 수 있다 할지라도 어떠한 형태로든지 훈련은 반드시 신앙 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훈련이라는 것은 기능적인 것을 강조하는 측면이 강하다. 기능적인 면과 지식적인 면의 균형이 있는 배움이 있어야 하는데 대학청년부 시절에 배움은 훈련이라는 측면이 조금 더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먼저 훈련에 대하여 언급하고, 지식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Ⅰ. 대학청년부 시절의 신앙 훈련

대학청년부의 훈련은 평생을 사는 기초가 된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어린 시절에는 지식에 대한 습득이 먼저가 아니라 양육과 보호 그리고 훈련이다.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시절이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평생 바로잡을 수 없는 습관으로 고착화된다.

이 시기를 통하여 신앙의 기본기를 익히는데 주력을 해야 한다. 아직은 가치관이 유동성이 있는 시절이다. 추구하고자 하는 지적 욕구, 영적 욕구, 정신적 욕구가 강렬한 시기이다. 마음에 열정이 있는 것만큼이나 몸이 훈련이 되지 않아서 마음과 육체가 따로 놀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이 시기의 당연한 특징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 배움에 대한 왕성한 욕구, 지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왕성한 모험에 대한 것도 충분히 갖추고 있는 때이다. 이 때에 강조해야할 것을 바로 강조해서 훈련 즉 경건의 습관이 몸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신앙의 기초는 신앙 지식만이 아닌 신앙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가장 중요한 신앙의 기초를 형성해 주어야 한다. 이 기초석 위에서 다양한 응용 신앙이 제대로 설 수가 있다. 그 기초에 해당이 되는 것들 중에서 중요한 것이 구원관, 교회관이다.

구원관과 교회관이 바로 서게 되면 그리스도인의 국가관, 사회관, 윤리관, 직업관 등 다양한 사회생활에서 다가오는 문화적인 해석을 바로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지식적인 기반 위에서 그렇게 믿어질 수 있도록 한 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여 신앙의 확고부동한 체험으로 연결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원은 은혜로 받았지만, 신앙의 성장은 은혜로만 할 수 없는 것이다. 넓은 범주에서 보면 결국은 모든 것이 다 은혜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훈련의 필요성에 대하여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분명히 단언하기는 훈련이 없이는 신앙의 성장이 바르게 될 수 없다. 훌륭한 주님의 일꾼은 훈련의 강도가 높을수록 더 높이 쓰임을 받는다.

특히 교회에서 훈련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 선교단체에서 말하는 훈련의 개념과 같은 개념으로 생각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교회 안에서 선교 단체와 같은 훈련을 해서 교회와 갈등을 일으킨 대학청년들이 있는 교회는 더욱 민감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훈련이라고 하면 그것은 곧 선교 단체에서 강조하는 제자 훈련이 바로 연상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선교 단체에서 하는 훈련이 그만큼 교회에서 하는 신앙의 훈련보다 강도가 높고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훈련을 한다고 하면 또 하나의 교회 안의 별동대(?)를 만드는 것처럼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의 훈련은 선교 단체에서 하는 훈련보다 더욱 영적 욕구를 채워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인정을 한다고 할지라도 교회 안에서의 신앙의 훈련은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다. 선교 단체에서 하는 훈련의 내용보다 더 강도가 높고, 영혼들의 성장을 위하여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관심과 계획이 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를 않는다.

그러나 소수의 몇 몇 교회들의 경우 외에는 영혼들의 신앙 성장을 위한 계획은 일천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떤 경우는 계획만 있지 그것을 운영할 만한 능력이 있는 지도자가 없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는 아예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는 하다가 중간에 잘 안되니까 중도 포기를 하고서 그 프로그램 해 봤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하면서 마치 그 프로그램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치워버리는 경우도 있다.

선교 단체하면 생각나는 것이 곧 훈련일 정도로 특징이 지워진다. 특히 선교단체는 대학청년들이 중심이 되고 선후배, 또래가 공감대 안에서 끈끈하게 연결이 되는 관계의 영역 안에서 엮여 있다.

이들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자유와 해방, 추구와 성취, 목표와 목적이 확실하게 있으면 거기에 평생을 걸 수 있는 정열이 있다. 모든 것을 다 바쳐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 용기와 가능성이 충만하다. 이러한 신앙적인 욕구들을 선교 단체에서는 그래도 채워주기에 젊은이들이 모인다.

그러나 막상 지역 교회를 생각하면 신앙 훈련을 어떻게 적용을 해서 이끌어 가야할지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지역교회가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와 포용성의 한계는 의외로 좁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소위 교회 안에서 숨 쉴 수 있는 열린 장과 공간은 숨이 막힐 정도이다. 모든 것이 장년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에서 교회학교의 부서들은 요식 행위(?)로, 또는 동원부대(?)로 여겨질 정도이다. 지나친 말이라면 그렇지 않은 교회는 개의치 말았으면 하는 양해를 구한다.

특히 대학부가 있는 교회는 아주 위치가 애매모호하다. 만만한 것이 대학생이라고 몸으로 때울 수 있는 것은 다 시킨다. 그것은 청년부도 사정은 별 다르지 않다. 한창 신앙의 훈련을 받아야 할 시기에 교회학교 영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의 교사 아닌 교사로서 일을 시키게 된다. 그리고 대학부나 청년부의 일원으로서 참여를 하게 된다. 교회의 각종 행사가 있으면 이중 삼중으로 중복이 되면 당연히 양보를 대학청년들이 해야 되는 것으로 규정을 짓는다. 그리고 우선순위를 강조하게 되면 대학청년들은 자기네들 끼리 끼리만 똘똘 뭉친다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신앙 훈련은 젊은이들이 교회에 매일 모일 수 있도록 시공간적인 배려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장년부 모임과는 별도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교회의 각종 행사에서 노력 봉사하는 것은 대학청년들이 도맡아하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그 부서에 선교 단체적인 성향의 지도자가 있다가 어려움을 겪은 교회일수록 부정적이고 신경질적(?)인 증상은 더욱 심하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이 교회 안에서 정착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성장 발달 단계에서 이 시기는 비판력과 분별력이 아주 날카로운 때이다. 이들은 함께하며, 포용해 주며, 격려해 주며, 품어주면 그 교회에 그대로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러나 작은 일들에 너무 깊이 관여하여 이래라 저래라 하게 될 때 젊은이들은 마음을 닫고 세상으로나, 아니 교파를 초월하여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곳에 가서 정착을 하게 된다.

대학청년들이 지역 교회 안에서 신앙의 훈련을 제대로 받으려면 첫째는 그것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담임목회자의 가슴이 넓어야 한다. 둘째는 담임목회자와 대학청년담당목회자와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셋째는 대학청년담당목회자의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넷째는 대학청년담당목회자의 집과 교회 간의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다섯째는 대학청년담당목회자가 젊은이들과 함께하면서 경제적인 문제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물질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몇 가지를 나열한 것이다. 이것이 꼭 순서 대로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참고해 두기 바란다.

젊은이들이 교회에 매일 모일 수 있도록 시공간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 장년부 모임과는 별도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몇 몇 교회적인 큰 행사를 제외하고서는 ?동원부대?라는 인식이 젊은이들 마음 가운데에서 자리잡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이들과 더불어 함께 이끌어 가는 담당 목회자에 대한 배려는 조금 더 이해가 요구가 된다.
훈련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가르친 것을 실제적으로 함께 임상실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장년부의 행사와 대학 청년부의 행사 양자 사이에 다 끼어 있는 목회자의 고뇌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쉬운 일이 아니다. 무조건 믿음과 본을 강조하는 믿음 좋은(?), 대학청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전문성이 없는 장년 동역 목회자들의 이해 부족은 인간미까지 떨어지게 만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대학청년들을 담당하는 목회자이면서 자기는 적당히 하는 척만 하고, 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한다고 위임 아닌 부담을 지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담임 목회자의 말이라면 - 그것이 비록 대학청년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면 대학청년들의 복음진리의 사수가 아닌 방법론을 타율적으로 억제하는 것 - 꿈벅 죽고 아부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는 대학청년부 담당 목회자라는 것이 명목상으로만 될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는 대학청년들의 모임을 장년부 형태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는 대학청년부를 고등부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청년들은 새롭게 형성된 교회 안의 지체공동체로 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신앙 훈련을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신앙 훈련의 계획을 실시할 때 교회의 일꾼이 가장 빠르게 세워질 수 있다. 신앙 훈련으로만 지나치게 치우치면 단세포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균형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성경을 아는 지식이 필수적으로 동반이 되어야 한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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