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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린 덕목, 헌신
2004년 11월 03일 (수)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 중에서
토미 테니/ 윤종석
두란노 펴냄

하나님과의 참된 친밀함에는 헌신이 따르는데 우리에게는 그 헌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 우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순결을 요한다. 교회에서 재미있게 장난치던 시절은 끝난다. ‘재미있게 장난하다’니, 무슨 뜻인가? 여기서 재미란 ‘짜릿한 흥분은 많고 헌신은 적은’ 상태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태까지 원해 온 것은 고작 ‘하나님과 데이트하는 사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분과 함께 차 뒷자리에 타면 그걸로 당신은 족했다. 그림을 그려 볼 수 있다. 하나님은 헌신의 반지는 끼지 않은 채 그분께 재미만 얻으려 하는 우리 모습에 지치셨다! 영광보다 짜릿한 전율에 더 매혹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기름부음에 중독됐다. 축복 받는 기분을 즐기고, 종교적 ‘금광’이랄 수 있는 ‘은사’ 받기를 좋아하며, 초콜릿과 꽃다발과 보석에 황홀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애인이 아니라 신부를 찾고 계신다. 그분과 백년해로 할 자를 찾고 계신다.

유감스럽게도 교회에는 내 쪽의 헌신은 전혀 없이 무조건, 그리고 최대한 받으려고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은 교회를 향해 말씀하신다. “나는 그것이 싫다. 나와 결혼하려거든 똑바로 하자. 서로 서약하자.” 우리는 헌신 없는 값싼 쾌감을 찾아다니지만 하나님은 ‘친밀함’을 말씀하신다. 가는 곳마다 그분의 주제는 친밀함이다. 그 친밀함에서 부흥이 나온다. ‘부흥’이라는 아기는 신랑에 대한 ‘신부의 헌신’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아기란 언제나 친밀함에서 태어나게 돼 있다. 지금은 가까이 갈 때다.

우리는 말보다 마차를 앞세울 때가 많다. 부흥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친밀함은 안중에도 없다. 그분을 구하지 않으면서 부흥을 구한다. 이것은 생판 처음 보는 이성이 다가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자식을 원해요. 당신은 어떤가요? 난 당신을 잘 몰라요. 당신이 좋은 지도 잘 몰라요. 물론 결혼에 따르는 헌신 따위는 원치 않아요. 다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자식이에요. 어때요?”

오늘날 교회 성장에 대한 책은 셀 수 없이 많은데 때로 그 저변에 깔린 메시지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교회를 성장시키는 법’이다. 우리는 ‘친밀함’에 따라오는 조건들을 피해 갈 지름길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애썼다. 왜? 교회 의자에 ‘자식들이 많이 앉아 있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기 때문이다. 다른 주변 교회들을 둘러보며 비교할 수 있도록 말이다.

가정이란 자녀들 자체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자녀란 부부간의 사랑과 친밀한 관계의 자연스런 부산물이다. 솔직히 오늘날 대다수 교회들은 종교 판 역기능 가정이다. ‘편모’인 사역자들만 있다. ‘아버지’는 어디로 갔는가? 우리가 정말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하나로 맺어졌을 때는 자녀가 생길 지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 자녀란 친밀해지는 과정의 당연한 산물이다.

지난 세기 동안, 역사적인 부흥 사건이 미국 땅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우리의 낮아진 헌신도와 함께 망가진 도덕성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진정 깊은 관계로 들어갈 수 있는지 여부는, 사회 현상 즉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이혼율과 가정 붕괴 추세가 정확히 나타낸다고 나는 믿는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하찮은 것으로 일축했거나 잊어버렸다. 그것은 잊혀진 기술이 되었다. 우리가 산 밑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외면하기로 선택한 뒤, 우리 삶의 모든 헌신도 힘을 잃고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투명한 순결의 자리에 진지한 부흥을 원하는 자들을 부르신다. 그분이 찾으시는 사람은 바로 ‘나’다. 그분은 우리가 가까이 오기 원하신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분은 반드시 우리를 만지신다. 그 의미는 이것이다. ‘우리는 죽어야 한다.’ 모세에게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지성소로 가기 전에 제사와 죄사함의 제단을 거치는 것을 잊지 말라. 지금은 우리의 자아를 십자가에 매달고, 우리의 의지를 십자가에 못박고, 우리의 계획을 버려야 할 때다.  하나님은 더 높은 헌신의 차원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나 혼자 만들어 낸 계획일랑 잊어버려라. 그분의 제단에 올라 자아에 대해 죽어라. 기도로 여쭈어라.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지금은 모든 것을 버리고 나 자신을 피로 적실 때다.
살아 있는 것은 그분의 임재 앞에 설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죽는다면 그분이 우리를 살리실 것이다. 그분의 임재 안에 진정 들어가기 원한다면 우리가 할 일은 죽는 것뿐이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사도 바울의 말은 곧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달아나지 말고 들어가라!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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