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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자료
1999년 08월 01일 (일)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장두만 목사(강서침례교회 담임,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 교수)

보조 자료란 설교를 보다 명쾌하고 흥미 있고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가지 자료들을 통칭한다. 이를 대개 예화(例話)라고 일컫지만, 엄밀히 말하면 예화는 여러 가지 보조 자료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우리 주님은 설교하실 때 보조 자료를 참으로 효과적으로 잘 사용하셨다. 주님은 여러 종류의 보조 자료를 통해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진리, 다소 추상적인 진리들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셨다. 하늘의 진리를 땅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예로 들어 설명하셨던 것이다. 반석 위의 집과 모래 위의 집(마 7:24-27), 탕자(눅 15:11-32), 열 처녀(마 25:1-13), 포도원의 품꾼(마 20:1-16) 등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것들인데, 이것들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내용들이었다.

보조 자료는 건물의 창문에 비유할 수 있다.1) 집에 창문이 없다고 해서 집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가 결여된 상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집에서도 사람이 생활을 할 수야 있겠지만, 무언가 막힌 것 같고, 답답하고, 불편한 것은 분명하다. 마치 창고나 감옥 같은 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설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설교에서 보조 자료가 전혀 없다고 해서 설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설교는 지겹고 답답하며,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에 효과적인 설교와는 거리가 멀게 되고 만다.

                             I. 보조 자료의 가치

설교에서 보조 자료는 왜 사용해야 되나? 그것은 설교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첫째, 보조 자료는 설교를 명쾌하게 해 준다.
설교자가 강단에서 외치는 설교 내용 가운데 어떤 부분은 분명하기 때문에 더 자세히 부연(敷衍)하거나 사족(蛇足)을 달 필요가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설교자는 항상 명쾌한 내용이나 진리만을 전파할 수는 없다. 어떤 경우에는 추상적인 진리도 전파해야만 한다. 신약의 교훈문학 같은 것은 대개 내용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짤막한 예화나 예가 서사문학의 경우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전반적으로 설교가 상당히 무미 건조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추상적인 진리는 설교자에게 늘 두통거리가 되고 있다. 추상적인 진리는 대부분의 청중이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설사 이해한다 하더라도 마음속에 큰 감명을 주기가 어렵고, 따라서 청중의 뇌리에서 금새 사라지고 만다. 추상적인 것은 언제나 힘이 없다. 설교자는 진리를 전하되 그 진리를 실감나게 전해야 한다. 청중으로 하여금 "정말 그렇구나!" 하고 마음으로부터 공감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머리에만 전달되는 진리는 힘이 없고, 따라서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거나 가져오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특별히 추상적인 진리를 전할 때에는 그 진리를 명쾌하고 구체적인 진리로 바꾸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적절한 보조 자료를 사용하는 것이다.2)

예를 들면, 사랑, 충성, 헌신, 믿음 등은 참으로 중요한 개념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분명하지 못하다. "믿음으로 삽시다"라는 말을 수십 번 되풀이하는 것 보다 믿음으로 산 사람의 예를 하나 드는 것이 훨씬 더 진리를 분명하게 전해 준다.

둘째, 보조 자료는 청중의 흥미를 돋구어 준다.
우리가 어떤 책이나 잡지를 읽을 경우에 만일 그것이 아주 지리하고 졸린 내용이라면 일단 그것을 접어 두고 다음에 읽기로 작정한다든지 아니면 심한 경우에는 아예 읽기를 포기하고 말 것이다.

만일 동일한 상황이 설교에서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설교가 너무 지리하고 흥미가 없을 경우 어떤 사람은 염치 불구하고 졸 것이고, 어떤 사람은 계속 하품을 하면서 시계만 들여다 볼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졸거나 하품하는 식의 무례는 범치 않겠지만 마음 문은 완전히 닫아 버리고 다른 생각에 탐닉하게 될 것이다. 이쯤 되면 설교는 귓가를 올리는 메아리에 불과하게 되어서 영혼을 변화시키는 역사는 거의 나타나지 않게 될 것이요. 이런 설교가 계속 강단에서 전파된다면 청중의 수는 감소 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때에 갑자기 설교의 흐름을 변화시켜서 예화를 끄집어 내면 정신이 다소 흐리멍덩해지기 시작하던 사람들의 귀가 번쩍 뜨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다 이야기를 좋아한다. 성(性)의 남녀나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설교자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청중의 주의나 관심을 끌려는 특별한 노력이 없이도 청중은 자동적으로 설교자에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야기는 사람의 주의를 끄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참으로 재미있고 유익하면 청중은 긴장이 풀어지게 되고, 그 결과 예화 다음에 이어서 나오는 진리에 더욱 주의를 집중하게 된다.3) 설교자는 청중의 주의력 지속 기간에 한계가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유치부 어린이의 경우 주의력 지속 기간은 길어야 10분이고 짧은 경우는 2분에 불과하다. 초등 학생의 경우는 주의력 지속 기간이 길어야 15분이고 짧으면 7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성인의 경우는 지속 기간이 대개 30분 내외이다. 그러나 30분이란 것도 설교자가 전파하는 내용에 무엇인가 들을 만한 것이 있을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설교의 내용이 지리하기 짝이 없다면 단 10분도 청중의 주의를 사로잡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가 청중의 주의력을 가능하면 오랫동안 붙잡아 놓기 위해서는 설교를 재미있게 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고, 재미있게 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재미있는 예화를 설교 중에 가끔씩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예화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반드시 터득해야 할 것이다.

셋째, 보조 자료는 진리를 생생하고 실감나게 해 준다.
옛말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百聞不如一見)는 말이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에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은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이라는 말을 누누이 들어 왔지만, 필자가 실제로 뉴욕에 가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 올라가서 뉴욕 시가지를 내려다 보기 전에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필자가 고등 학교에 다닐 때에는 국어 교과서에 <기차는 원의 중심을 달린다>는 제목의 미국 기행문이 실려 있었다. 우리 나라같이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나라에서 살던 필자는 도대체 미국 땅이 얼마나 크기에 사면을 둘러 보아도 지평선만 보일 정도로 그렇게 크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필자는 텍사스주의 달라스에서만도 6년을 살면서 여기 저기를 자동차로 여행할 때 <기차는 원의 중심을 달린다>는 말이 참으로 실감나는 표현임을 절실히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말의 힘은 위대하지만 동시에 말은 많은 제약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펭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아무리 많은 말로 펭귄을 묘사하더라도 단 한 번 실제로 펭귄을 보여 주는 것만 같지는 못하다.

설교도 어차피 언어를 매체로 하기 때문에 언어가 갖는 일반적 한계성을 초극(超克)할 수는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한계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조차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언어의 한계성을 극복해서 언어에 회화적(繪畵的) 요소를 가미해 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좋은 예화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설교는 생기를 띄게 되고 실감이 나게 되는 것이다.

현대인은 예외 없이 회화적 감각이 발달해 있다. 어린 시절부터 TV나 영화는 물론 그림책 같은 것을 늘 가까이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회화적 요소가 전혀 없이 논리적 관계로만 일관하고 있는 설교를 30분 정도 듣는다는 것은 엄청난 정신적 피로를 초래하고 만다.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만 그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에서도 역시 그림을 원한다.4) 그래서 설교자는 좋은 예화를 사용함으로 이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넷째, 보조 자료는 진리를 기억하게 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어떤 내용을 단순히 귀로만 들었을 경우 3일 후에는 그 내용의 10% 정도밖에 기억을 하지 못하고, 눈에 보여 주기만 할 경우에는 20%, 귀로 들려 주면서 동시에 눈으로 보게 할 경우에는 70%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설교에서 좋은 예화를 사용하는 것은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기 때문에 청중의 기억률을 훨씬 더 제고(提高)시켜 주게 되는 것이다.5) 설교를 듣는 청중은 많은 경우에 설교의 내용보다 설교자가 사용한 예화를 휠씬 더 오랫동안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머카트니 (Clarence E. Macartney)는 그의 저서 『노트 없는 설교』(Preaching Without Notes)에서 어떤 목사의 체험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목사는 자기 성도 20여 명에게 그가 몇 달 전에 한 어떤 설교의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응답자 가운데 설교의 아웃라인이나 그 밖의 중요한 내용을 기억한 성도는 한두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목사가 맨 마지막에 들려준 예화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기억하고 있었다.6)

청중은 설교 그 자체보다 예화를 더 오랫동안 기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설교자는 다음의 두 가지 문제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하나는, 설교자가 어떤 예화를 사용할 경우에, 그가 선포하는 진리와 그 진리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사용하는 예화가 각각 따로 놀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설교자의 입장에서는 청중이 예화는 잊어버리더라도 그가 선포한 진리는 기억했으면 하고 바랄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주객(主客)이 완전히 전도(顚倒)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실제적인 현상은 청중이 예화를 잘 기억한다는 사실이고, 설교자의 소망은 예화보다는 진리 자체를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乖離)는 많은 경우에 설교자에게 큰 고통이 되고 있다. 이 양자간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 설교자가 사용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그가 선포하는 진리와 예화를 잘 연결시키는 것이다. 설교자가 이 작업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 청중은 설교자의 예화는 기억하지만 그 예화가 무엇을 가르치는 것인지, 설교자가 그 예화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는 도무지 기억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설교자가 그 연결 작업을 효과적으로 잘 해내면 청중은 예화와 함께 설교자가 선포한 진리도 연상해 내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예화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청중이 예화를 오랫동안 기억하기 때문에 설교자가 주의해야 될 또 한 가지 사실은 같은 예화를 반복해서 사용하기를 피해야겠다는 것이다. 아주 좋은 예화라면 한 번쯤 더 사용해도 청중이 양해를 할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예화를 계속 반복해서 사용하는 습관을 갖게 되면 청중은, "피! 또 저 얘기야! 한 번 더 들으면 백 번째 듣는데!"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고, 따라서 설교자는 청중으로부터 신뢰감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청중에게 같은 예화를 재탕 삼탕해서 들려주지 않으려면 설교자는 새로운 예화의 발굴에 상당한 주의와 관심을 가져야 된다.

다섯째, 보조 자료는 진리를 증명해 준다.
설교자가 선포하는 진리가 다소 이해하기 힘들고 또 청중이 쉽게 수긍할 수 없는 경우라도 좋은 예를 들면 그 진리가 금방 이해되고 증명된다. 예를 들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까?"(눅 10:29)라는 율법사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누구든지 곤경에 처해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면 바로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에 율법에서 해방되었다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 진리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아내와 남편에 관한 예를 통해서 이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롬 7:1). 어떤 남자와 결혼한 여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남자의 지배하에 있게 되지만 남편이 죽어 버리면 더 이상 그 남편의 지배하에 있지 않게 되고, 결혼 관계는 해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죽는 것은 사실상 남편이 아니라 (왜냐하면 율법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으므로) 아내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었더라도 법이 무덤 저편에까지 살아서 쫓아올 수는 없는 것이다. 죽음은 땅 위에서의 모든 관계를 해소시켜 버리고 만다.

이 여인은 죽음을 통해서 첫 남편, 즉 율법에서 해방되어서 둘째 남편, 즉 예수님께 시집가서 편안히 살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에서 해방되었다는 어려운 진리가 짤막한 하나의 예를 통해서 설득력 있게 증명이 된 것이다.

여섯째, 보조 자료는 청중이 진리를 적용하기에 쉽게 해 준다.
설교의 목적은 청중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데 청중은 구두 논증 (verbal argumentation)보다 시각적이고 흥미 있는 예화를 통해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훨씬 더 강하다. 예화는 단순히 설교를 흥미 있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채플 (Bryan Chapell)의 말대로, "예화는 설득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사람의 의지를 움직이고, 마음에 감동을 주고, 설명해 주고, 결정을 내리게 한다."7)  좋은 예화는 말 보다 더 빠르게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Ⅱ. 보조 자료 사용의 원칙
보조 자료가 설교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만큼 사용할 때에도 지켜야 될 몇 가지 원칙 내지는 주의 사항이 있다.

첫째, 보조 자료는 어디까지나 핵심적 진리에 대한 보조 역할을 해야 한다.
예화를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청중의 관심은 설교자가 선포하는 진리에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예화 쪽으로 향하게 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본(本)과 말(末)이 완전히 뒤바뀌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데이비스 (H. Grady Davis)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화는 예화 그 자체에가 아니라 설교자의 주장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한에서만 가치가 있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예화, 즉 그 자신에게가 아니라 진리에게로 관심을 모으는 예화야말로 가장 가치가 있는 예화이다. 만약 예화가 그 자신에게로 관심을 모으게 되면, 그 예화는 사고의 전달을 도와주는 대신 오히려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8)

만일 어두운 방에 명화가 걸려 있고 그 명화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촛불을 켠다면, 그 촛불을 명화의 한 가운데 놓아서 사람들이 명화를 감상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한쪽 옆으로 옮겨 놓아야만 명화를 밝게 해서 사람들이 감상하는 것을 돕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9)  설교에서 사용하는 예화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둘째, 보조 자료는 적절해야 한다.
보조 자료는 설교자의 어떤 주장이나 가르침을 더 잘 이해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항상 어떤 주장이나 가르침과 관련 있는 것이라야만 된다. 어떤 설교자는 단순히 청중의 긴장을 풀기 위한 목적으로, 그저 한 번 웃겨 보기 위해서, 말하자면 예화 그 자체를 위한 예화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공연한 시간 낭비에 불과하고 설교 자체에는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만 끼치게 되고 만다. 설교자가 선포하는 진리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보조 자료는 그 존재 가치가 없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예화를 제대로 사용하면 그것은 수십 마디의 설명보다도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가령 마태 복음 25:14-30을 본문으로 해서 충성에 관해서 설교한다면 다음과 같은 예화가 상당히 적절할 것으로 본다:

A.D.79년에 인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큰 비극적인 사건이 이탈리아에서 발생했다. 베수비우스산(Mt.Vesuvius)에서 화산이 폭발해 그 산 아래에 있던  폼페이(Pompeii)시 전체가 완전히 매몰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이  매몰된 폼페이 시에 대한 발굴 작업을 전개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화산재와 용암에서부터 살아남아 보려고 높은 다락방으로 피신했다가 거기서 죽어 있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깊은 지하실에서 용암의 습격을 받아 꼼짝 못한 채 죽은 모습도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화산의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가지 모양으로 여기 저기 피신을 한 흔적이 역력히 보였다. 이 가운데 발굴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모습이 하나 발굴되었는데, 그것은 로마 군대의 보초병이었다. 그는 그 도시의 성문 앞에 무기를 손에 든 채 부동 자세로 서서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도시 전체는 서로 살아 남겠다고 아비규환의 지옥이었고, 시커먼 화산재가 하늘을 새까맣게 덮었고, 용암이 홍수같이 밀어닥치던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최후까지 임무를 수행하다가 순직한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 보초와 똑같은 정도의 충성을 요구하시고 기대하신다.

셋째, 보조 자료는 분명해야 한다.
보조 자료는 선포된 진리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명을 필요로 하는 예화는 전혀 무가치한 것이다.10)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예화를 사용하고 싶으면 그 예화의 내용이 분명한지 안 한지를 사전에 점검해서, 분명하지 못한 예화는 아무리 좋아 보여도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보조 자료는 분명해야 된다는 말은 또 다른 한 가지 의미를 갖는다. 어떤 경우에는 설교자가 그의 주장이나 가르침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어떤 예화를 사용하지만, 설교자가 선포하는 진리와 그가 사용하는 예화가 어떤 관계인지 분명하지 않을 경우가 있다.

어떤 예화는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선포된 진리와 연관시키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예화만으로 끝을 맺어서는 안되고, 예화가 끝난 다음에 그 예화가 선포된 진리를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몇 문장으로 간단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예로 든 로마 보초병의 경우, 맨 끝 부분에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 보초와 똑같은 정도의 충성을 요구하시고 기대하신다?는 것이 바로 연결 문장에 해당되는 것이다.

넷째, 보조 자료는 믿을 만해야 된다.
현실성이 너무 없는 예화는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 설교자가 현실성이 희박한 예화를 너무 자주 사용하면 청중은 설교자가 너무 과장되게 말한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현실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을 정도로 너무 나이브(naive)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현실성이 희박한 예화도 사용해야 될 경우가 있다. 특별히 예화가 어떤 과학적 사실이나 자연 관찰에서 나온 것이거나, 어떤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신앙 체험에서 나온 것일 때에는 현실성이 희박하더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보조 자료의 신빙성 문제를 논할 때 한 가지 더 언급해야 될 것은 남의 경험을 나의 것인 양 표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표절은 남의 글을 내 것인 양 사용하는 것은 물론 남의 말을 나의 말인 양 마구 사용하는 것도 역시 포함하고 있다. 남의 경험을 나의 경험인 것 같이 표절하다가 봉변을 당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의 경험을 표절하다가 성도 가운데 혹시라도 그 문제가 직접 관련된 사람이 있다면 설교자에 대한 신뢰감은 완전히 실추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경험을 사용할 때에는 그것이 남의 경험이라고 솔직히 시인하고 사용하는 것이 표절하다가 발각되는 것 보다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다섯째, 보조 자료는 그 길이가 적절해야 한다.
보조 자료는 어디까지나 보조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령 30분 설교에서 20분 정도를 보조 자료에 할애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말은 설교가 예화만을 연결한 것으로 형성되어서 성경은 중간중간에 양념으로 끼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하나하나의 예화의 길이가 적절해야 된다는 뜻이다. 예화 하나가 10분이나 그 이상 걸릴 정도로 길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간혹 어떤 예화는 예외적으로 길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는 다른 예화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도록 특별히 배려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설교자가 보조 자료를 사용할 경우에는  완전히 소화한 후에 해야 한다.
설교자가 어떤 책에서 좋은 보조 자료를 발견했을 경우 그 책을 강단으로 가지고 가서 그 내용을 그대로 읽어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설교자는 그 보조 자료의 내용을 자기 자신의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소화한 후에 그것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메모해서 가끔씩 보아 가면서 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없을 것이나, 그대로 읽어 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

                       Ⅲ. 보조 자료의 종류
보조 자료라고 하면 곧 예화를 생각하지만, 보조 자료에는 예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여기서는 그 중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보도록 하겠다.

A. 예화 (illustration)
예화는 여러 가지 보조 자료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데, 예화는 대체로 서사문의 형태를 취한다. 다시 말하면, 예화는 설교를 돕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종류의 이야기를 가리킨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일 수도 있고, 어느 개인의 일화(逸話)일 수도 있고, 농담이나 해학일 수도 있고, 어느 개인의 전기(傳記)에서 나올 수도 있다.

 예화는 대체로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11) 첫째는 가상적(假想的) 예화 (hypothetical illustration)이다.
가상적 예화라는 것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를 말한다. 가상적 예화는 물론 상상적인 이야기지만, 현재까지의 우리의 경험과 일치하는 것이라야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사실보다 더 사실에 가까운 허구(虛構)라야 된다는 말이다.
둘째는 사실적(事實的) 예화 (factual illustration)이다.
사실적 예화란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를 가리킨다. 사실적 예화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취급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예화를 효과적으로 잘 사용하면 굉장히 설득력을 갖게 된다.

   B. 통계 자료 (statistics)
통계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숫자로 된 것은 모두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숫자가 다 통계인 것은 아니다. 통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어떤 대상에 있어서 그 개체 상호간의 관계를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숫자를 말한다. 이 숫자는 주어진 대상에 속한 각 개체에 양적인 증감 관계를 보여 주기도 하고, 크기의 대소 관계를 보여 주기도 하고, 한 현상이 다른 현상에 대해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어떤 대상을 선택해 그에 관한 여러 가지 자료를 적절한 방법으로 수집?분석?정리하면 그 결과는 객관적인 사실이 되어 버리고, 이 사실은 청중을 설득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12)

그러나 설교자가 통계 자료를 설교에 사용할 때 몇 가지 유의해야 될 사실이 있다.13)
첫째,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개략적 수치(數値)만 언급해야 한다. 예를 들면, 2,002,913 같은 수를 말할 때 약 2백만이라고 말하면 족할 것이다. 청중이 수치를 정확히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개략적 수치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다.

둘째, 통계는 많은 내용을 간략하게 압축한 것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통계 자료를 제시하지 말아야 한다. 한 설교에 부득이 통계 자료를 여러 번 사용해야 될 상황이라면 한꺼번에 다 언급하는 것보다는 가능하면 여기 저기 분산시켜서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통계 자료는 일견(一見) 숫자의 나열 같이 보이기 때문에 청중이 그 의미를 즉각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통계 자료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반드시 해석도 해야만 된다. 또 필요하다면 일반 청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로 쉽게 풀어서 설명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가상적인 통계를 한 번 보자.
이 통계를 설교에 사용을 한다면 설교자가 각 연도별로 결혼한 쌍의 수와 이혼한 쌍의 수를 천 자리 정도까지는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것으로 끝나 버리면, 이 통계 자료는 설교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이 통계에 의하면 1999년의 경우 이혼율이 약 50%라는 것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두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은 이혼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1999년도의 경우 매일 이혼한 수가 418쌍에 이르고, 이것은 매 시간마다 약 17쌍이 이혼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식으로, 청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해석할 필요가 있다.

넷째, 통계 자료를 특별히 설득의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숫자가 정확하고 신빙성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수치를 다소 변경시켜서라도 설득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자는 자료의 정확성에 최우선을 두어야 할 것이다. 설교자는 자료의 정확성과 그것의 개략화(槪略化)를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72,325인데 이를 82,325라고 하는 것은 부정확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약 72,000이라고 하는 것은 개략화이다. 설교자는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통계 숫자를 개략화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임의로 조작해서는 안될 것이다.

설교자가 정확한 통계 숫자는 물론 그 통계 숫자를 발표한 단체까지 언급하면 자료의 신빙성을 더 한층 제고(提高)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1999년 6월 1일자 뉴욕 타임즈 (New York Times)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이라는 식으로 통계 자료를 발표한 공신력(公信力)이 있는 단체 명을 통계 자료와 함께 언급하면 청중은 설교자가 제시하는 통계 자료에 대해 훨씬 더 큰 신뢰감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C. 인용 (quotations)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인용하는 것도 설교를 뒷받침하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가 설교할 때나 글을 쓸 때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이다. 첫째는 설교자가 하고 싶은 말을 어떤 저자가 아주 적절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 저자의 표현이 너무 멋있고, 적확(的確)하고,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 저자의 말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는 충분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때 설교자는 다른 저자를 인용하게 된다. 둘째는 그 저자가 갖는 권위 때문에 인용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권위 있는 저자를 인용함으로 그 저자의 권위를 빌어서 설교자의 어떤 주장에 대한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담배의 해독을 말하려면 대한 의학 협회의 보고를 인용한다든지 어떤 권위 있는 연구소나 학자의 말을 인용하면 족할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아무런 원칙이 없이 인용하면 그 효과가 감소될 수 있으므로 인용 시에 반드시 주의해야 될 사항이 몇 가지 있다.14)

첫째, 어떤 저자를 인용할 경우 반드시 그 소재(所在)를 밝혀야 한다. 그 저자에 관한 설명이 길면 그 중에서 청중에게 꼭 필요한 부분만 언급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누구의 저서에서 인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반드시 밝혀야 한다.

둘째, 인용은 가능하면 간결해야 한다. 너무 길게 인용하면 청중이 곧 싫증을 내게 된다. 긴 내용을 반드시 인용해야 될 경우에도 군데군데 설교자가 원저자의 말을 의역한다든지 해서 짧은 글을 여러 개 인용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셋째, 어떤 저자의 권위에 호소하기 위해서 인용한다면, 그 저자가 청중에게 반드시 존경받는 인물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완용이나 송병준 같은 민족반역자라든지, 전두환이나 노태우 같은 작자가 아무리 권위 있는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런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인간들의 말은 인용하지 않아야 될 것이다.

넷째, 한 설교에 너무 많은 인용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브룩스 (Phillips Brooks)는, "설교에 있어서 끊임없이 인용을 하는 것은 조악성(粗惡性)의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15)  설교라는 것이 여러 저자들의 글을 꿰어 놓은 것 같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D. 설명 (explanations)
설교자가 흔히 사용하는 보조 자료 가운데에는 설명이 있다. 설명이란 것은 본문에 나타난 어떤 단어나, 구(句)나,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서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설교자들은 설명이란 것이 무슨 보조 자료가 되겠느냐고 생각할는지도 모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4:3-9을 본문으로 해서 설교할 경우, 본문에 나오는 단어나 개념 가운데 설명을 필요로 하는 것이 많이 있지만, 300 데나리온이 무엇을 뜻하는지 현대의 청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반드시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한 데나리온은 그 당시 일꾼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300 데나리온은 약 300일 분의 품삯이요, 여기에다 약 60일 정도의 공휴일을 감안한다면 300 데나리온은 1년분의 봉급에 해당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근로자의 한달 평균 급료를 약 100만원으로 계산한다면 300 데나리온은 약 1,200만원에 해당된다. 이런 식으로 300 데나리온의 의미를 설명한다면 설교가 훨씬 더 이해하기 쉽게 될 것이다.

   E. 유사어 반복 (restatement)
유사어 반복이란 단순한 반복 (repetition)과는 달리, 같은 말을 그대로 다시 한 번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내용을 다른 말로 다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설교자가 어떤 진리를 강조하고자 하거나, 어떤 진리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할 경우, 단 한 번 언급하고 지나쳐 버리면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청중의 기억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다른 표현으로 동일한 진리를 몇 차례 반복해서 말할 필요가 있을 경우가 종종 있다.16) 에스겔 선지자가 이스라엘 목자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할 때 유사어 반복을 통해 이스라엘 목자들의 죄악상과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찐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찐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 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도다"(겔34:1-6).

여기서 에스겔 선지자는 유사어 반복을 통해 목자 없는 이스라엘의 참상을 참으로 효과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의 설교자도 어떤 진리를 강조하고자 할 때 에스겔이 사용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하고, 내 생각이나 기분과는 상관없이 말씀의 약속을 그대로 믿고 살아야 합니다"와 같은 식으로 하면 될 것이다.

F. 유머 (humor)
설교자가 사용할 수 있는 보조 자료 가운데 아주 효과적이면서도 흔히 간과(看過)되고 있는 것은 유머이다. 어떤 설교자는 신성한 강단에서 저질 코미디 같은 언사(言辭)를 쓰는 것은 강단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유머 사용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유머의 효과를 제대로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필자의 은사 중 한 분으로서 달라스 신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에서 오랫동안 봉직하고 계시는 하워드 헨드릭스 교수(Howard Hendricks)같은 이는 효과적인 유머 사용을 통해 학교 강의실과 설교 강단을 빛내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유머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 그 중요한 가치 몇 가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7)
첫째, 유머는 우리의 정신과 육체에 유익을 준다.
유머는 정신과 육체의 긴장을 풀어준다. 그것은 마치 자깅 (jogging)과 같아서 신선함을 청중에게 줄 수 있다. 일단 긴장이 풀어지면 청중은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을 큰 어려움 없이 들을 수 있게 된다.

둘째, 유머는 마음을 부드럽게 해 준다.
적대적인 청중이나 무관심한 청중의 마음을 녹여서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갖게 하는 데 있어서 유머 이상의 좋은 약은 없다.

셋째, 유머는 청중으로 하여금 긍정적 반응을 하게 한다.
청중이 우스꽝스러운 진리를 듣고 한바탕 웃고 나면 더 이상 수동적인 청중이 아니라 설교자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적극적인 청중으로 바뀌게 된다.

넷째, 유머는 설교자에게 집중하게 한다.
유머는 산만하게 되어 있는 청중의 주의를 설교자에게 집중시켜서 설교를 듣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면 청중으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단순히 사실을 사실 그대로 말할 때 웃음을 자아내게 할 수 있다.18)
오늘날의 성도들이 TV를 사랑한다는 것을, "주일 저녁 시간에 예배에 안 올 경우 집에서 무엇을 합니까? 애들 하고 9번 돌려라 11번 돌려라는 식으로 '돌려라' 싸움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는 것은 청중으로 하여금 찔림이 있게 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사실로부터 오는 유머는 또한 위험 부담이 적다. 비록 청중이 웃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실은 사실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우스꽝스러운 과장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19)
대부분의 코미디가 이 형태를 취한다. 이런 유머는 재미있는 표현, 우스꽝스런 몸짓, 변조된 음성, 이상한 얼굴 표정 등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마태복음 7:21-23을 본문으로 해서 "누가 천국에 가나?"라는 제목으로 설교할 때 이 방법을 써서 좋은 효과를 본 적이 있다:
   오늘날 어떤 부흥회는 마치 "주여 주여" 부르기 시합장 같습니다. 먼저 "주여" 삼창을 하고 난 후에 본격적인 시합이 시작되는데, 그 형태를 분류해 보니 세 가지가 됩디다. 첫째는 참새형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여 주여" (숨가쁘게 몰아치는 식으로 말함) 하면서 부르짖는 것인데, 아마 이 사람들은 주님께서 주의가 산만하셔서 주님의 주의를 집중시키려고 그러나 봅니다. 둘째는 발악형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주여 주여" (발악하듯이 큰 소리로) 하면서 부르짖는데, 아마 이 사람들은 우리 주님이 귀먹은 분인 줄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또 한 가지는 신사형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주여"라고 한 번 크게 부르짖은 후에 한 참 있다가 또 "주여"라고 크게 부르짖는 사람들인데, 아마 이 사람들은 우리 주님께서 졸고 계신 줄로 생각이나 하는가 봅니다.

셋째, 시의적절(時宜適切)한 말이 웃음을 자아낸다.
필자가 어떤 교회의 선교 집회에 강사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주 강사는 따로 있었는데 벌써 간증과 다른 순서들로 인해 상당히 시간이 경과하여 청중이 딴전을 피우기 시작할 만한 때였다. 주 강사 바로 앞에 필자의 짧은 순서가 배당되어 있었다.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은 필자를 이렇게 소개했다: "장 두만 목사님은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항상 시간을 잘 지킬 것을 강조하시는 분입니다. 오늘은 정확히 20분 동안만 왜 신학교에 대해서 선교를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이어서 필자가 등단했다. 필자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김 목사님은 제가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셨는데, 이론과 실제 사이에는 항상 차이가 있는 법입니다." 여러분들은 청중이 어떻게 반응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청중석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필자는 유머 사용에는 크게 은사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개발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만일 독자들 중에 유머에 은사가 있는 분이 있으면 강단에서 적절하게 잘 사용하여 설교의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바란다. 

G. 기타
보조 자료는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 비교와 대조 (comparisons and contrasts), 시각 교재 (visual aids) 등이 있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만 잘 소화시켜서 설교에서 제대로 활용하면 설교는 놀라우리만큼 향상이 될 것이다.

                    Ⅳ. 보조 자료의 원천(源泉)
설교를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사람들은 고민이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어디서 새롭고도 적절한 예화를 늘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다. 예화는 한 번 사용하고 나면 다시 사용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늘 새로운 예화를 발굴해야 된다는 것은 큰 고민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좋은 예화 (또는 보조 자료)는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그 중요한 것 몇 가지만 여기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A. 성경
설교를 위한 보조 자료의 원천으로서는 무엇보다도 성경을 들 수 있다. 설교자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성도들은 성경의 내용을 이미 잘 알고 있으니 그것을 설교의 보조 자료로 써 보아야 별로 효과가 없지 않겠느냐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청중이 성경을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적절한 때에 적절한 성경의 예화를 사용하면 다른 예화 못지 않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성경은 흥미 있는 예화로 가득차 있다. 아브라함, 요셉, 삼손, 룻, 사무엘, 다윗, 골리앗, 나아만, 게하시, 압살롬 등에 관한 이야기는 수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유능한 설교자는 보조 자료의 보고(寶庫)로서의 성경을 결코 무시하거나 경시하지 않을 것이다.

   B. 광범위한 독서
광범위한 독서는 설교자의 필수적인 습관 가운데 하나여야 되고, 설교자는 독서하는 가운데 예화를 찾아서 모으는 버릇을 가져야 한다. 스투어트 (James S. Stewart) 같은 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설교 일화집(逸話集)을 잔뜩 쌓아 놓는 것은 파산된 지성의 마지막 도피처이다. 가장 좋은 예화란 독서와 관찰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얻어진 예화이다. …당신 자신이 바로 예화 편집자가 되어라."20)  설교자는 다른 사람들의 전기나 자서전, 다른 설교자의 설교집, 신앙 서적, 수필집, 소설, 신화집, 우화집 등의 책을 광범위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책을 읽을 때 좋은 예화가 발견되면 그 옆에다 표시를 하고 그 예화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간단히 몇 자 써 놓고 나서 나중에 그 책의 앞쪽이나 뒷쪽의 빈 페이지에 그 책에서 발견된 예화 전부를 일괄적으로 다 모아서 무슨 내용의 예화가 몇 페이지 있는지 정리해 두면 나중에 이용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좋고 영구적인 방법은 예화를 모으는 파일(file)을 만들어서 예화를 발견하는 대로 주제별로 분류해서 파일에 철해 놓는 것일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요즈음 같은 컴퓨터 시대에는 개인용 컴퓨터에 예화 전체를 주제별로 분류해 입력시켜 놓으면 필요할 때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를 잘 모르면 불편하기 그지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설교자들도 컴퓨터에 관해서 어느 정도는 조예 (造詣)가 있어야 할 것이다.

   C. 예화집
다른 설교자의 예화집을 통해서도 좋은 예화를 발견할 수 있다. 영어로 된 예화집 가운데에는 폴 탠(Paul Lee Tan)이 편집한 『15,000 예화집』(Encyclopedia of 15,000 Illustrations)이나, 그린 (Michael P. Green)의 예화집 (Illustrations for Biblical Preaching)이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한글로 된 것 가운데에는 윤영준 목사의 예화집 (『그 다음엔 어떻게』, 『잊을 수 없는 경례』)이 가장 좋은 것 같고, 한경직 목사나 조용기 목사, 최효섭 목사 등의 예화집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외의 다른 예화집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선도 목사의 설교집은 김 선도 목사의 예화집이라 할 만큼 예화가 풍부하기 때문에 예화 발굴의 목적으로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D. 개인의 체험
설교자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도 훌륭한 보조 자료가 될 수 있다. 어떤 장소를 방문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자기의 자녀들을 키우는 경험 등을 통해서 좋은 예화가 굉장히 많이 발견될 수 있다. 그리고 설교자 자신의 과거의 경험 가운데서 좋은 것을 정선(精選)해서 보조 자료로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설교자 자신의 경험 가운데서 예화를 끌어내면 설교자는 그것을 다른 어떤 예화보다 더 생생하고 실감나게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설교자는 자신의 개인적 체험에 너무 의존해 설교할 때마다 거의 예외없이 개인적 체험에서 예화를 끄집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은 마땅히 피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풍부한 체험을 가진 설교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체험만 계속 얘기한다면 청중은 식상(食傷)하고 말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E. 신문 . 잡지
훌륭한 설교자는 신문이나 잡지를 결코 경시하지 않을 것이다. 칼 바르트(Karl Barth)가 말한 바와 같이 설교자는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들어야 할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는 우리 주변의 여러 사건들, 갖가지 사회 문제 및 그에 관한 통계, 여러 가지 문화적 정보 등을 풍부하게 싣고 있기 때문에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서 설교자는 많은 보조 자료를 발굴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도 당시 그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예화의 목적으로 사용하셨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이나,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은 사건 등이 우리 주님에 의해서 예화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주님께서도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에서 예화를 발견하셨다면, 오늘날의 설교자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F. 자연 및 과학
동물, 식물, 자연 현상 등을 잘 관찰하면 풍부한 예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과학적 사실을 통해서도 유익한 자료를 발굴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현대인은 과학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과학에서 보조 자료를 끌어내면 청중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G. 상상
때때로 설교자는 예화를 창작할 수도 있다. 예화의 창작에 관해서 브라운 (H. C. Brown)과 클라이너드(H. Gordon Clinard) 와 노드컷(Jesse J. Northcutt)은 그들의 공저(共著)에서 이렇게 말한다:

   설교자는 그가 원하는 바를 적절하게 표현할 예화를 발견하지 못할 경우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예화를 창작할 수도 있다. 만일 설교자가 그러한 예화가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하지 않는다든지 그 예화가 예시하는 진리가 실제로 일어난 사실에 의존하고 있다고 하지 않으면 예화의 창작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한 예화를 도입할 경우에는 그것이 상상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 좋다. 설교자는 이 경우에 "가령" "....라고 상상해 보자"는 식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창작된 예화는 신빙성이 있어야 된다. 다시 말하면, 청중이 그러한 예화를 들을 경우, 그런 것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21)

 

                           주(註)
1) Albert P. Stauderman, Let Me Illustrate, p.7; James Braga, How to Prepare Bible Messages, p.191.
2) cf. George E. Sweazy, Preaching the Good News, pp.193-94.
3) Stauderman, p.7.
4) cf. H.C.Brown, H.G.Clinard and J.J.Northcutt, Steps to the Sermon, p. 69; John A. Broadus, On the Preparation and Delivery of Sermons, pp.179-80; Mark R. Littleton, "Raisin in the Oatmeal : The Art of Illustrating Sermon,?Leadership 4 (Spring 1983) : 67.
5) cf. C. Ronald Wilson, "Illustrations Make the Difference,?Pulpit Digest 57 (Sep-Oct 1977) :68.
6) Clarence E. Macartney, Preaching without Notes, p.33.
7) Bryan Chapell, Using Illustrations to Preach with Power, p.69.
8) H. Grady Davis, Design for Preaching, p.255; D. Martyn Lloyd-Jones, Preaching and Preachers, p.233; John R.W.Stott, Between  Two Worlds, pp. 240-41; Stauderman, p.8.
9) Broadus, p.193.
10) J.H.Jowett, The Preacher, His Life  and Work, p.141.
11) A.H.Monroe and Douglas Ehninger, Principles and Types of Speech, pp. 161-64; A. Duane Litfin, Public Speaking, p.200.
12) Monroe and Ehninger, p.202
13) Ibid., pp.166-69; Litfin, p.202.
14) Litfin, pp.207-208.
15) Sweazy, p.190.
16) H.Grady Davis, pp.259-60; Monroe and Ehninger, p.171; Litfin, pp.205-206.
17) Ken Davis, Secrets of Dynamic Communication, pp.118-22.
18) Ibid., pp.122-23.
19) Ibid., pp.123-24.
20) James S. Stewart, Preaching, p.126.
21) Brown, Clinard and Northcutt, p.77.
(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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